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네댓 살만 차이가 나도 ‘세대 차이가 나서 대화가 안 통한다’ 이런 말을 합니다.
탈북 가정에서는 더 심한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남한에 와서 적응하는 속도가 다른 어른과 아이.
그래서 생기는 간극, 어떻게 해소하면 좋은지 알아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전진용: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네. 오늘은 탈북 손자와 함께 사는 할머니의 고민을 들어볼 텐데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마순희 선생님께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어떤 내용인지 먼저 들어보시죠.
마순희/대구에 사는 60대 할머니한테 전화가 왔어요. 북한에서 부모를 잃은 손자를 데려왔는데 14살이라 중학교에 가야하는데 학력 공백기가 있어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켰던 거예요. 나이도 많고 키도 크고 하니까 아이들과 어울리질 못했나 봐요. 또래와 소통도 못하고 잘 못 지내는 게 있어서 할머니가 너무 어렵대요. 할머니가 60대라 젊은이들과는 세대 차이가 많아 나잖아요. 잘 한다고 아이를 타일러도 아이가 잘 못 받아들이고, 학교 측과 통화를 해서 바로 잡아보려고 했더니 아이가 할머니 때문에 학교생활이 더 힘들어진다고 해서 할머니와 아이 사이가 더 나빠진대요. 아이 교육에 한계를 느낀다, 간섭을 해야 하는지, 아이 말대로 관심을 끊는 게 좋은지 할머니가 고민이 많더라고요.
이예진: 저희가 종종 탈북 가정의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마찰에 대해 얘기를 나눠본 적이 있는데요. 이번에는 할머니와 손자와의 사이에서 생기는 문젭니다.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와 함께 탈북한 어린 손자, 14살 아이의 마음부터 좀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직접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볼 순 없었지만 우선 정신적인 충격이 꽤 많았을 것 같아요.
전진용: 네. 일단 이 아이가 어린 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일반적인 돌봄을 받지 못했잖아요. 할머니의 많은 사랑을 받았더라도 부모님한테 받는 것과는 좀 다르기 때문에 애정이 충분히 충족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이고요. 또 탈북이라는 어른도 겪기 힘든 과정이 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어린 아이에겐 더 힘들었을 거고요. 또 14살이면 사춘기라 정체성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한사회에 대한 적응문제에 있어서도 남한의 또래 아이들과의 문화 적응에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예진: 특히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면 좋을 텐데, 또래 친구도 아닌 몇 살씩은 어린 아이들과 학교생활을 한다는 게 큰 부담이 될 것 같아요.
전진용: 네. 우선은 이 아이가 14살이긴 하지만 한국에서의 나이로 보면 갓난아이 수준이라고 봐야 할 수도 있거든요. 남한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요. 하지만 14살이라 사춘기고 어느 정도 성숙된 상태거든요. 그런데 주변의 아이들은 어리잖아요. 그래서 더 고립될 수 있거든요. 선생님이나 주변의 친구들이 돌봐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더 고립되거나 ‘왕따’를 당할 수 있죠. 북한에서 온 아이에 대한 주변의 이해와 할머니의 관심이 많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이예진: 그런데 주변의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 상황이 안 된다는 거죠. 또 앞서 말씀하셨지만 한국에서 흔히 따돌리는 현상을 ‘왕따’라고 말하죠. 성인이 된 후에도 인격형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요?
전진용: 이런 아이들이 소극적이고 계속 불만을 쌓아가기 때문에 자신감이 상실되고 위축되고 수동적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헤쳐 나가거나 받아들이기보다는 쌓아두다가 우울이 심해질 수 있고요. 더 심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예진: 그래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하죠. 그래서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더욱 집에서나 학교 측에서 따뜻한 관심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할머니 입장에서는 그런 아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고, 그래서 뭔가 나서보려고 했지만 아이가 반대하고 있다는 얘긴데요. 학교에 적응을 못 하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전진용: 일단 아이가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에서 억지로 도움을 주려고 하면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고요. 학교 당국과 이야기를 해서 상담 등을 병행하는 게 좋을 것 같고요. 할머니는 많은 애정을 주고 있겠지만 나이나 세대 차이 등에서 오는 벽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상담기관과 연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예진: 사실 탈북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겪고 한국 땅을 밟은 청소년들이 바로 사회에 적응한다는 건 큰 스트레스겠죠?
전진용: 네. 탈북 청소년들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거든요. 가족과 오래 떨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경우도 있고요. 정체성이 한창 형성될 시기에 탈북함으로써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 있고요. 탈북과정이 길고 북한에서의 상황 때문에 학력 결손이 있어서 학력의 차이가 생기거나 남한생활에 적응도 해야 하거든요. 이런 모든 문제를 하루아침에 확 바꿀 수는 없거든요. 배고프다고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체하잖아요. 그래서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가는 게 필요한데요. 대안학교나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고요. 또 아이가 단숨에 해결하고 싶어 할 때는 좀 도움을 줘야 하는데요. 저만 해도 일이 엄청나게 쌓였을 때 뭐부터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나거든요. 그러면 시간이 있는데도 고민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고 급하게 하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아이들은 마찬가지로 어떤 걸 먼저 해야 하는지 잘 모를 수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하나씩 단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이예진: 할머니도 여유를 가지고 같이 헤쳐나가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사실 할머니도 그런 조바심이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특히 탈북가정의 할머니와 손자 사이에 느끼는 세대차이도 다른 가정과는 달리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이 두 사람, 서로 이해하면서 잘 지낼 수 있는 방법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전진용: 서로 생각하는 것만큼 다르지 않은데도 으레 짐작을 해서 그렇다고 단정 짓는 경우들이 좀 있거든요. 예전에 제가 만났던 탈북 할머니 한 분이 있었는데 몸도 안 좋으시고 우울증도 좀 있으셨어요. 그런데 항상 이런 걸 걱정하셨어요. 내가 손자보다 먼저 죽는 건 아닌지, 손자는 따라가는데 나는 남한생활을 못 따라가서 아이를 못 돌보는 건 아닌지. 반면에 아이는 할머니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나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거죠. 할머니와 아이가 좀 더 대화를 한다면 할머니가 생각하는 게 지나친 걱정일 수도 있고 아이가 할머니를 너무 배려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서로 잘 모르고 평행선처럼 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대화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예진: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너무 커도 너무 작아도 문제죠. 특히 탈북 가정에서는 대화를 통한 서로에 대한 이해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 같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진용: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