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고소하고 싶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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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날, 부모님을 위한 날, 부부를 위한 날 등 유난히 가정의 화목을 도모하는 날이 많은 5월.

그래서 한국에선 가정의 달이라고 하지만 탈북자들에겐 오히려 좀 부담스러운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탈북 가정의 불화 원인을 진단해 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한국에선 5월에 특히 가족모임이 많아지죠. 어린이날에는 아이들 가고 싶어 하는 놀이공원이나 동물원 같은 곳도 가야하고, 아이들에게 선물도 해야 하고, 어버이날에는 부모님께 그동안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음식도 대접하고, 선물도 드리고요. 선생님 댁에서도 5월엔 가족모임이 좀 많아지나요?

마순희: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죠. 저희 집 같은 경우에는 세 딸이 다 서울에 살고 있다 보니 자주 만나는 편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역시 가정의 달이라 5월에는 더 자주 만나게 될 것 같기는 합니다. 사실 솔직한 말로 대한민국에서는 1년 365일 중에 무슨 기념일이 그리 많은지 일일이 챙기기는 쉽지가 않네요.

북한에서는 명절이 몇 번 안 되다보니 어려운 살림에서도 쌀 한 줌, 돈 한 푼이라도 아끼고 모아서 명절이면 그나마 명절음식도 하고 간단한 선물도 하면서 자라는 애들이 남들한테 뒤지지 않게 하려고 명절준비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어려울 때에는 명절이 돌아오는 것이 별로 반가운 것 같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공식적인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각자가 자신들만의 기념일도 만들어서 뜻 깊게 보내는 일이 참 많더라고요. 특히 가정의 달이라고 부르는 5월에는 물론 북한에서도 5. 1절이라고 근로자의 명절은 기념하기는 합니다만 어린이날, 부처님 오신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성인의 날, 등 기념일이 유난히 많더라고요.

이예진: 거기에 만난 지 100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개인적인 기념일도 있죠.

마순희: 빼빼로 데이도 있잖아요.

이예진: 막대 모양의 과자를 나눠주는 날이죠. 친구들이나 연인 사이에 챙겨주는 날도 참 많은 것 같아요. 챙기는 날이 많아 돈은 좀 들지만 사랑을 나누는 날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래서도 화목한 가정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탈북 가정 중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화목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서요?

마순희: 부모님께 효도하고 자식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등 화목한 가정을 바라는 것은 누구나 다 바라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얼마 전에 상담을 하다가 충격적인 상담사례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안동에 살고 있다는 27세 여성의 전화였습니다. 지원재단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지원하고 있다고 하여 전화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과 수요일 오후에 무료법률상담을 해드리고 있다고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주고 법률상담 받을 내용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상상밖에도 자기 어머니를 고소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예진: 엄마를 법적으로 고소하겠다고요?

마순희: 저도 처음에는 제 귀를 의심했지요. 그래서 자세한 내용에 대해 물어 보았는데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엄마가 먼저 탈북하여 중국에서 살면서 몇 년 후에 자신을 데려갔고 엄마와 함께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온지 3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경기도에 집을 받아서 미혼모로 키우고 있는 7세 딸과 세 식구가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엄마가 없이 북한에서 살다보니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 해서 검정고시로 공부하고 있는데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지금 현재 엄마는 재혼하여 새 아빠와 함께 안동으로 내려가서 살고 자기는 엄마와 함께 살던 집에 남아서 딸과 함께 살다가 여러 가지 어려운 일로 집을 반납하고 자기도 안동에 내려와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엄마를 고소하겠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엄마가 자기를 방치했기 때문에 엄마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엄마가 먼저 탈북해서 자기가 북한에서 공부를 할 수 없었다는 것, 지금도 자기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고 둘이 마주앉으면 싸우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를 고소하겠다는 것입니다. 엄마가 어떤 처벌을 받기를 원하느냐고 했더니 자기한테 잘못했다고 빌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예진: 그러니까 법적으로 처벌을 받기를 원한다는 게 아니라 화가 나서 그랬던 거군요.

마순희: 그렇죠. 아무리 그래도 미성년자도 아니고 27세의 성인인데 그리고 7세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인 그에게 어떻게 상담해주어야 할까 많이 난감했습니다. 한두 마디로 답변을 주거나 법률상담 예약해 줄 상담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상담전화가 많은 시간이었기에 전화가 뜸한 저녁시간에 다시 전화를 주기로 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녁에 다시 그 여성에게 전화를 해주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낮에 전화했을 때보다는 안정된 듯한 목소리였습니다. 지금도 엄마를 고소하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지를 물었더니 아무 대답도 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긴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나도 세 딸을 데리고 한국에 온 한 어머니로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엄마가 탈북한 것과 본인이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것은 그 당시 북한의 실정에서 어쩔 수 없는 사정이었다는 것, 그래도 엄마가 위험을 무릅쓰고 딸을 포기하지 않고 북한에서 중국으로, 또 중국에서 한국으로 데리고 올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이예진: 그렇죠. 딸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닌 거잖아요.

마순희: 그럼요. 지금도 7세 딸을 사랑하는 그 마음처럼 엄마도 자식을 사랑하고 있지만 지금의 실정에서는 서로가 힘들다보니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줄 알면서도 다투게 되는 것 같다, 엄마는 지금 배정받은 집에서 딸과 함께 살도록 배려하고 새 가정을 꾸려 나갔는데 그 집을 포기하고 새 아빠의 집에 얹혀산다는 것 자체가 엄마한테는 새 아빠 앞에 참 미안한 일일 것이다,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말들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미성년자도 아니고 더구나 애까지 함께 엄마 집에, 그것도 재가한 새 아빠 집에 함께 살기보다는 따로 집을 받아서 독립할 수 있도록 주택을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이나 취업준비를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내용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서로가 생사를 알 수 없어서 눈물로 그리워하는 가족들도 얼마나 많은데 오늘의 이 상황이 어렵더라도 그런 분들에 비하면 결코 불행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들을 사례를 들어가면서 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정의 화목을 되돌릴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았더니 잘 알겠다고,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상담을 끝마쳤습니다.

이예진: 어렸을 때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게 아직도 남아서 지금은 잘 지낼 수 있는 시간인데도 싸움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과거 북한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가족애를 나누지 못하다가 남한에 와서 안정을 되찾은 뒤 불화를 겪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고 하는데요. 다음 이 시간에 더 알아보겠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남북하나지원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