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국사회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평범하게 봐주길 바랍니다. 동정이나 의심 없이 말이죠. 장애인들도 마찬가집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그렇다면 탈북 장애인들은 어떻게 편견을 극복하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제가 아는 탈북 청년 중에 북한에서 석탄을 훔치다 열차에 치여 팔과 다리를 잃은 청년이 있는데, 장애인으로 북한에서 산다는 게 너무 비참해서 탈북한 뒤에 한국에서 대학도 졸업하고 지금은 청년단체를 이끌며 탈북자 구출사업과 인권활동에 앞장서고 있거든요. 이렇게 탈북하신 분들 중에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더 열심히 사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지방에 계시는 한 장애인 남성의 이야기인데요. 그 분은 북한에서 군사복무를 하다가 사고로 오른쪽 손목이 절단되어 어느 날 갑자기 장애가 된 겁니다. 한국에 와서 의수를 했지만 사실 한 손으로 무엇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워낙 성격이 밝고 열정적이었기에 처음 컴퓨터 학원에 등록하고 그 한 손으로도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면서부터 무엇이든지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한 손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부업도 하면서 지금은 대학도 다니고 있습니다. 사이버, 그러니까 인터넷으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부에서 심리상담 등을 배우고 있는데 지금 2학년이랍니다. 앞으로 복지관 같은 기관에서 근무하려면 상담 뿐 아니라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이 필수라는 생각으로 운전면허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예진: 한 손이 없어도 운전면허를 딸 수는 있군요.
마순희: 네. 그런데 복지관 같은 곳에서 근무하려면 대형면허가 필수라고 해서 대형면허증까지 어렵게 취득했답니다. 일반 승용차와는 달리 대형면허를 따려면 두 손으로 운전조작을 해야 하는데 그게 가장 어려웠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철사를 손목에 연결하여 수동손잡이들을 동작할 수 있게 하는 등 피나는 노력 끝에 대형면허도 취득했더라고요. 지금은 대학공부에 전념하면서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들의 대한민국 정착을 진심으로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원래 북한에서부터 몸이 날래기로 유명해서 달리기나 탁구, 배드민턴 등 체육종목들에서는 늘 1등을 놓치지 않았었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부단히 연습하여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받을 정도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이예진: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운동대회를 말하는 거죠?
마순희: 네. 이 분 뿐이 아니라 본인이 장애인이면서도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장애인 단체를 만들고 대표로 일하는 여성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그마한 장애를 가졌다고 집에서 놀 수는 없다고 지금도 아파트 경비나 미화원, 그리고 요양보호사 등 일을 하는 분들이 수없이 많답니다. 탈북 장애인들도 일을 못하시는 분들은 자신에게 맞는 쉬운 일들을 하기도 하시고 봉사도 하고 있답니다. 얼마 전에는 송파구에서 북한이탈주민장애인협회에서 어느 교회의 도움으로 지역의 한 장애인시설에 가셔서 거동이 어려운 그 분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했다는 소식도 인터넷으로 전해지더군요. 저의 친한 친구인 언니가 강서구에 살고 계시는데요. 제가 국립의료원에 근무할 때 두 무릎수술을 하신 분입니다. 지금은 아파트 청소를 하는 미화원으로 근무하고 계시는데 장애 4급입니다. 회사에서 급여 외에도 장애인이라고 10만원을 더 주고 있다면서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물론 무릎수술을 하고 아파트 청소를 하시는 게 쉽지는 않죠. 더구나 날씨라도 흐리면 통증이 있어서 늘 주머니에 진통제를 넣고 다니기는 하지만 언제나 밝게 사시는 분입니다.
남자친구도 항상 놀러 오시기에 일이 끝나거나 주말이면 대한민국의 명소를 찾아서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랍니다. 오후 3시면 일이 끝나니 그 이후 시간을 이용해도 서울이나 가까운 경기도 지역은 얼마든지 놀려 갈 수 있거든요. 오늘도 벚꽃이 지기 전에 석촌 호수로 함께 놀려 간다고 오후에 저랑 만나기로 했거든요. 장애인이라 일하는 것이 힘든 것도 있지만 여러 가지 편의를 봐 주는 것도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하시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저도 이 언니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깜박 잊기도 한답니다.
이예진: 그렇군요. 세계적으로 봐도 천재적인 예술가나 과학자 등이 꽤 많고 한국에서도 장애인들도 일을 하고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확산되고 있는데요. 그냥 탈북자 분들도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장애를 가지고 있는 탈북자분들은 취업활동 등에 더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싶어요.
마순희: 당연한 말씀입니다. 건강한 탈북민들이 정착하기에도 쉽지 않은데 장애가 있으시면 몸과 마음이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는 장애를 가진 분들이 살아 가시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도록 많은 면에서 편의를 봐주고 있더라고요. 장애가 심하면 취업을 하기 어려운 형편인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에는 기초생활수급비와 함께 장애인 수당도 드리고 있거든요. 그리고 밖에 나가기 불편한 점을 감안해서 장애인 전용 트럭이나 콜택시, 그러니까 휴대폰으로 부르는 차 등도 이용할 수 있게 모든 체계들이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저의 아파트 아래층에 시각장애인 분이 계시는데 어디로 외출 시에는 늘 곁에서 도와주는 도우미분이 차를 가지고 오시고 일과가 끝나면 모시고 오시더라고요.
얼마 전 출근시간에는 마을의 버스정류소에서 감동스러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삼륜차를 탄 장애인 여성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침 출근시간이라 정류소에는 여러 노선의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많았죠. 휠체어를 탄 여성이 버스에 오르려고 손을 들었는데 버스가 휠체어에서 직접 오를 수 있도록 정차해 주었습니다. 문이 열리고 내리는 사람들이 다 내린 후 버스에서 자동발판이 내려졌고 휠체어가 천천히 버스에 오르는 것입니다.
이예진: 바닥으로 경사지어져서 내려갈 수 있는 발판을 말하는 거죠.
마순희: 그렇죠. 기사님이 운전석에서 내려오시더니 휠체어를 안전하게 오르도록 도와주고 안전띠로 고정하더군요. 그 다음 자동발판을 올린 후 버스 문이 닫혔습니다. 모두가 바쁜 출근시간이었지만 뒤로 줄지은 버스들과 그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의 얼굴 그 어디에도 불평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장애인 여성이 무사히 버스에 오르고 자리 잡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면서 안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참 우리 대한민국은 정말 살만한 나라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이예진: 네. 장애를 가진 분들이 불편 없이 사는 나라가 진짜 살만한 나라일 겁니다. 아직은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탈북자들이 바라는 장애인 관련 개선방안은 어떤 게 있을까요?
마순희: 장애인이라 하면 아무래도 정상인들보다는 활동하기 불편한 분들이잖아요? 일자리와 취업문제가 어렵기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장애인 분들이 일할 수 있는 쉬운 일자리, 할 수 있는 일자리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실정에 맞는 맞춤형 일자리와 생활지원 서비스가 더 잘 되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기업들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잘 지키고 장애인 부양의무제 같은 것을 적용하는 데서도 좀 더 심사숙고하여 좋은 방법을 찾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실무적인 일들보다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장애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우리의 이웃이라는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야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탈북자들을, 그리고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평범해질 때, 그 때가 모두 행복해지는 때겠죠.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