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국에서 5월은 유난히 가족의 화합을 도모하는 기념일이 많습니다.
더구나 날씨도 좋고, 기념일과 휴일이 많아 나들이 가는 가족이 많아지는 5월이 되면 탈북자들이 느끼는 소외감도 커진다고 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들은 올해 5월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한국에서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해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을 기념하는데요. 한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은 명절 다음으로 5월이 되면 고향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이 많이 나지 않을까 싶어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1년 중에 한 달에 5월처럼 기념일이 많은 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근로자의 날인 5월 1일은 북한에서도 5.1절이라고 명절로 지정한 날이지만 그 밖의 기념일들은 한국에 와서 알게 된 기념일들입니다. 5월 5일 어린이 날, 5월 8일 어버이 날, 북한엔 이런 날이 없어요. 또 5월 15일은 스승의 날, 5월 18일은 성년의 날, 5월 21일은 둘이 하나가 된다는 부부의 날이랍니다. 금년에는 석가탄신일도 5월 25일이 되어서 정말 5월에 기념일이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5월이 가정의 달이다보니 우리 탈북자들에게는 두고 온 고향과 식구들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되는 달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많이 감동을 받은 것 중의 하나가 부모에 대한 효도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너무 잘 하고 있는 것이었는데요. 어버이날을 앞두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카네이션 꽃을 만들어 부모님께 달아드리면서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도록 하고 있더라고요.
이예진: 북한의 패랭이꽃과 비슷하다고는 하더라고요. 남한에서 이 카네이션은 감사와 사랑의 의미를 담은 꽃으로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 부모님, 선생님께 달아드리는 꽃이죠.
마순희: 네. 어린이들은 카네이션을 종이로 만들더라고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접어서 삐뚤삐뚤한 글씨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직접 써서 만든 카네이션을 받는 아빠,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감동이었을지는 정말 말로 표현을 못한답니다. 북한에서는 ‘수령님, 당’에 대하여 감사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할 줄만 알았고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께는 단 한 번도 사랑을 표현해보지 못한 일생을 후회하면서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는 가정의 달이기도 하답니다.
이예진: 선생님이나 다른 탈북자 분들, 어버이날에는 보통 어떻게 보내시나요?
마순희: 부모님이 함께 오신 분들은 당연히 한국의 일반 가정들처럼 어버이날에 부모님을 찾아뵙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맛나는 음식을 대접하는 등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고 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딸들이 꽃을 달아주면 기쁘기보다 어색하기도 하고 잘 적응이 안 되었는데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니 저도 많이 정착했다고 봐야 하나요.
부모님이 안 계신 분들도 친하게 지내시는 어르신들을 찾아뵙는 분들도 있지만 5월 8일이 법정휴일은 아니어서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퇴근하고 난 후에야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8일이나 그 즈음 주말이 되면 유명 맛집들은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갈 정도로 사람들이 붐비는 풍경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요. 저도 그럴 때마다 차라리 집에서 입에 맞는 음식을 해먹는 것이 여러 가지로 편하고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식들의 성의를 생각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즐기군 합니다.
이예진: 그런 날은 특별한 식사, 특별한 외식을 부모님과 함께 하고 싶다보니 맛집들이 붐비게 되죠. 고향에 가족이 있는 탈북자 분들, 또 홀로 한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 분들은 이럴 때 더 마음이 외로울 것 같은데요. 이런 탈북자들을 위한 모임이나 행사들도 좀 있나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각 지역마다 복지관이나 노인복지관들이 있는데요. 해마다 어버이날이 되면 어르신들을 위한 여러 가지 행사들을 많이 조직하군 합니다. 복지관들뿐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들과 단체들에서도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초청하여 맛있는 음식도 대접하고 효도관광도 하고 있답니다. 지역의 어르신들을 초청하여 어버이날 축하행사들을 하는데 축하공연도 하고 어르신들이 직접 참가하는 각종 문화행사들이 있습니다. 지역마다에서는 이런 행사들이 있을 때마다 혼자 사시는 북한이탈주민 어르신들은 꼭 챙겨서 외롭게 명절을 보내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즐거운 하루를 보내도록 마음을 써준다고 해도 고향의 식구들에 대한 그리움은 무슨 말로 다 위로가 되겠습니까?
이예진: 그렇죠. 그러다보니 혼자 탈북하신 분들은 북한의 가족들을 데려오는 경우도 있고, 한국에서 새로 가족을 형성하기도 하잖아요. 물론 그렇게 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분들도 계신데, 가끔 보면 북한에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것 같습니다. 고향을 떠나고 가족을 떠나면 못 살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지더라도 그래도 사람은 또 살아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함께 살면서 힘든 삶도 있고 헤어져서 서로 행복을 찾는 인생도 있는 것이니까요. 누구나 인생 살면서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는데 더욱이 우리 탈북자들인 경우에는 매 사람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떠밀려 본의 아니게 이별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혼자만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살리기 위해, 아니면 가족을 찾기 위해 또 다른 이별을 선택해야만 하는 우리 탈북자들에게 있어서 가족이라는 의미는 또 다른 아픔과 사연들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혼자서 탈북하신 경우에 남아있는 가족을 데려오는 경우도 있고 서로 헤어져서 북의 배우자는 북에서 또 다른 배우자를 만나고 남에 온 배우자는 남에서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서 살게 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물론 북에서부터 미혼이었던 경우에는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도 한국에 와서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탈북자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입국하면 하나원에 가기 전에 조사를 거친다는 것은 아시잖아요? 그 때 조사를 하면서 북한에서 결혼한 경우에는 가족관계등록부에 결혼한 남편이나 안해(아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배우자가 한국에 올 수 없는 경우에는 새로운 가정을 꾸려야 하는데 법적으로 중혼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있던 결혼관계를 이혼으로 하여야 새로 혼인등기를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이혼이란 상대방의 이혼의사가 확인되어야 하는데 북한에 있는 배우자를 상대로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시송달’이라는 방법으로 공시하게 됩니다.
이예진: 저희 시간에도 ‘공시송달’에 대해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남한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자 하는 탈북자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절차죠.
마순희: 맞습니다. 법원 홈페이지에 누가 어떤 사유로 누구에게 이혼을 신청했다는 내용을 게시하고 2개월 이후에는 이의가 없다는 것으로 추정하고 이혼판결을 해주는 방법으로 이혼을 하게 되는 거지요. 저에게 상담을 의뢰했던 40대의 한 남성의 경우에는 북한을 떠난 지 5년이 되었고, 처는 한국에 올 수 없기에 한국에서 다시 결혼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었습니다. 그래서 가정법원에 이혼사유서를 제출하고 어떤 절차를 거쳐서 이혼이 되는지를 자세히 설명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다시 전화가 왔는데 이혼신청이 기각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예진: 그 이유는 뭐였을까요? 다음 이 시간에 탈북자들이 이혼과 재혼에서 겪는 문제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