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국에서 5월 8일은 늘 곁에 있는 부모님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거나 감사함을 전하지 못하던 마음을 전하는 어버이날입니다.
어버이날이 되면 부모님 은혜에 감사드리는 의미로 카네이션 꽃을 드리고, 온가족이 모여 식사하며 마음의 선물을 드리기도 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마음과는 다르게 상처를 주는 말이 먼저 나오는 탈북 가정의 부모와 아이들의 사정을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선생님 보통 어버이날이라고 하는 5월 8일에는 탈북자들 마음이 명절만큼이나 고향에 두고 온 부모형제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아요.
마순희: 그렇지요. 고향생각은 언제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지만 명절이나 각종 기념일 때면 더 간절한 것 같습니다. 특히 어버이날이면 자식들이 카네이션을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리고 선물도 하고, 참 보기에도 가슴 따뜻한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자식들이 앞 다퉈 꽃을 달아주고 선물을 주고 할 때마다 정작 나는 돌아가신 부모님께 변변한 효도 한 번 못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아프답니다. 생활이 어려운 것도 있었겠지만 사회적으로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도록 기념일까지 정해서 효도를 권장할 정도의 사회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눈 덮인 산에서 진달래 가지를 꺾어다가 방안에서 물을 갈아주면서 철이 되기 전에 꽃을 피워서 2월 16일이나 4월15일에 학교의 초상화나 연구실에, 사적비 앞에 생화 꽃다발을 드리는 일은 해마다 연례행사로 하면서도 정작 키워준 부보님의 은혜에는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꽃 한 송이도 드릴 생각을 못했답니다.
지금도 어버이날만 되면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셨던 부모님의 은정을 생각하면서 사랑한다는, 고맙다는 인사 한 번 제대로 못 드린 것이 얼마나 한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인사도 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해 드리면서 효도한 번 제대로 하고 싶은데, 그래서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예진: 한국에 와서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커지기도 하지만, 지난 시간에 전해드린 사례처럼 그동안 사랑을 많이 못 받았다며 홧김에 엄마를 고소하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자녀와 부모의 사이가 좋지 않아 생기는 문제들, 상담하시면서 많이 접하시나요?
마순희: 네. 그 여성분의 경우는 엄마를 고소하고 싶다는 좀 충격적인 내용이어서 그렇지 가끔 가정적으로 문제가 많아서 상담하는 경우들도 종종 보게 됩니다. 물론 매개 사례마다 서로 다른 원인들도 많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이 정상적인 인성교육이 결여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흔히 인생의 매 단계마다 수행되어야 할 과업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서 너무나 심각하고 갑작스러운 경제적인 곤란 때문에 모든 정상적인 생활이 파탄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가정들에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족해체가 일어났다고 봐야죠.
부부사이에나 부모사이에, 혹은 형제사이에 원치 않은 생이별이 벌어지고 특히 아이들인 경우에는 고아 아닌 고아로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에 무방비상태로 내던져진 것입니다. 다행히 후에라도 자식을 데려오게 되면 형식적으로 가족이 모이기는 하지만 그 동안의 빈자리에 서로에 대한 고마움이나 사랑보다 원망과 미움, 불신 같은 것이 자리 잡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행복하기만 해도 모자랄 가정이지만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예진: 아무래도 그런 가정은 한국에 와서 정착하면서 안정이 되면 심리적으로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심리적인 어려움이라는 게 한 두 번의 상담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 여성분에게도 전문적인 상담프로그램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서울이나 수도권 뿐 아니라 지역에도 보건소마다 정신보건센터가 있기 때문에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 여성도 혼자 자녀를 키우고 있는 미혼모라서 수급자로서 무료로 정신과 상담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그 지역에 있는 북한이탈주민 전문상담사와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언제든지 상담이 필요하면 전화할 수 있도록 연락처도 알려드렸습니다.
이예진: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한국에 왔지만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녀들과의 불화가 생겨 얼굴도 보지 않는, 멀어지는 경우들이 좀 있다고 들었어요.
마순희: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런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사례들이 많았지만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함께 탈북한 경우에도 자녀들과 부모들 사이에 세대차이가 있잖아요. 그래서 정착에서의 세대차이, 속도 차이 뭐 이런 경우가 많지만 서로가 노력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거의 다 제대로 해결이 되기도 한답니다. 특히 부모와 헤어져 지낸 기간이 긴 경우에는 서로가 노력은 하지만 쉽지는 않더라고요.
이예진: 그럴 땐 시간이 더 오래 걸리겠네요.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먼저 들어야겠죠. 저희가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있습니다만, 물론 선생님처럼 대부분 탈북 가정이 화목하고 아이들과도 잘 지내잖아요. 하지만 아이들과 잘 지내는 방법을 몰라서 불화를 겪는 경우들이 있다는 거죠?
마순희: 그렇죠. 그런 건 서로가 어떻게 소통하는 것이 좋은지 잘 몰라서 그런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함께 일하던 동료가 있었는데, 10여 년 만에 북한에서 아들을 데려왔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가 그리웠던 마음에 정말 누가 보든 부러움의 대상이 될 정도로 잘 지내더니 몇 개월 후에 아들 때문에 너무 속상하다고 상담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 원인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집착으로 되어 하루 빨리 변하기를 바라는 조급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몇 년 적응했던 엄마의 눈에는 북한에서 금방 직행한 아들의 모든 행동이나 사고가 믿음이 안 가고 불안 불안하기만 한 거죠. 그래서 자주 잔소리도 하고 이것저것 참견도 하였더니 아들은 아예 시끄럽다고 대화도 안 하고 눈도 안 마주치고 입도 다물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가 너무 속상해 울었는데 제가 너무 속상해 하지도 말고 너무 조급한 변화를 바라지 말고 지켜봐 주면서 스스로 적응해 나가기를 기다려 주라고 조언했었죠. 사실 북한에서 직행해서 몇 개월 사이에 한국에 온 그 아들의 경우에 얼마나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겠습니까? 게다가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기대에는 못 미치고 그것을 이해 못하는 엄마가 자신이 그리던 사랑만 알던 엄마가 아닌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생각도 들었을 아들의 마음도 이해를 해야 한다, 아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냥 사랑으로 지켜봐주면 워낙 똑똑한 아들이니까 잘 적응할 거라고 너무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지금 그 아들은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엄마한테는 둘도 없는 효자로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듣군 한답니다.
저희들도 상담하면서 비슷비슷한 사연들이 많았지만 후에 전화를 해 보면 대부분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들을 듣게 되어 너무 다행입니다. 일시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역시 가족은 가족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은 짐이 아니라 축복이다’는 말이 있죠. 저도 5월 가정의 달에 이 말의 참뜻을 다시금 새기고 행복한 5월을 만들어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이예진: 부모에게, 자녀에게 바라는 게 너무 커서 이런 불화가 생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금만 욕심을 버리고 부모의 입장에서, 혹은 자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한다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남북하나지원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