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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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한국의 국제결혼 추세에 대한 기사를 실었는데요. 2020년에는 한국인구 5천만 명 중 150만여 명이 국제결혼으로 이뤄진 다문화 가족일 것으로 예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두 남녀의 결혼, 극복해야 할 갈등도 많다고 하는데요. 탈북자들의 고민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다른 문화, 다른 사회 속에서 살아온 두 남녀의 결혼은 말만 같을 뿐 국제결혼만큼이나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알아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탈북자들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겪는 문제 가운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죠. 그 중에서도 남녀사이의 문제, 이건 물론 탈북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우리 북한이탈주민들도 남한 사회에 정착하면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남한사회에서도 가족 간의 갈등이나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인 경우에는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같은 말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거의 70여 년을 갈라져 살다보니 남북 간의 경제적인 차이 뿐 아니라 문화적 차이도 무시할 수 없는 거잖아요? 많은 분들이 서로 이해하면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간혹 그렇지 못한 사례들도 적지 않더라고요.

며칠 전 50대 여성의 전화가 왔습니다. 남북하나재단의 종합상담센터 전화번호가 TV화면에 소개되기에 그동안 궁금하면서도 어디에 물어보아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던 문제를 문의한다는 겁니다. 무엇인지 물어 보았더니 40대 초반인 남동생이 북한이탈주민여성을 만나고 있는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결혼이야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 여성은 한국에 나온 지 3년이 되었다는데 나이는 30대 후반이더라고요. 자기는 만나보면서 본인이 하는 이야기와 사실이 너무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믿음이 안 가는데 남동생은 어쩌다 만난 그 여성에게 호감이 가서 사리분간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예진: 사랑에 빠진 거네요.

마순희: 네. 그러면서 남북하나재단에서 그 여성에 대하여 제대로 알려주기 바란다는 다소 황당한 요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남북하나재단에서 탈북자들의 정착을 도와드리는 것은 맞지만 탈북자들의 개별적인 신상정보를 다 알 수는 없고 알더라도 알려드릴 수도 없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설사 그 개인신상정보를 안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진술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에 그 외에 다른 자료들을 알 수는 없다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본인들이 서로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하고 알아가면서 관계를 형성해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예진: 남남북녀로 행복한 결혼을 이루는 경우도 많지만 자라온 환경이 달라 부딪치는 일도 많은 것 같은데요. 특히 남한남성이 탈북여성과의 결혼을 앞두고 지금 말씀하신 사례와 비슷한 걱정을 하시는 경우들이 있더라고요. 그 이유는 뭘까요?

마순희: 우리 탈북자들인 경우 북한이라는 폐쇄된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고 또 중국이나 러시아 등 3국을 거쳐서 오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보니 아마도 한 나라 안에서 살아오는 사람들과는 차이가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 것 같습니다. 더구나 결혼이라는 일생의 중대지사를 논한다면 그만큼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한 나라에서, 한 동네에서 함께 자라오던 사이에도 속마음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 예사로운 일인데 하물며 서로 갈라져서 다른 체제에서 살던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어떻게 쉽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보니 본인은 아니더라도 곁에서는 불신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그 중에는 별로 내세울 것도 없고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아서 과거를 숨기고 결혼하는 여성들도 분명히 있지만 현재에 충실하려고 열심히 잘 살려고 노력하는 여성들이 더 많다고 볼 수 있겠죠.

가정을 이루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탈북이라는 험한 과정을 겪은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고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더 한층 배려하면서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면 남편을 믿고 따르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아온 탈북여성들이기에 큰 문제없이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예진: 지금 가부장적인 북한 사회에 대해 언급하셨는데요. 그런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다가 많이 다른 한국에서 생기는 문제들도 있을 것 같아요.

마순희: 사실 북한도 지금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는 없지만 저희가 살 때까지만 하여도 정말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그렇게 표현해야 될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는 맞벌이로 사는 가정이 많지만 남편들이 먼저 퇴근해 와도 저녁밥 지을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아요. 탁아소에 들려서 애를 찾아서 업고 들어와서는 방에 내려놓는 것과 함께 숨 돌릴 틈도 없이 저녁준비를 해야죠. 한국처럼 전기밥솥으로 밥을 짓고 가스레인지로 혹은 전자레인지로 반찬을 만드는 경우라면 무슨 큰 문제겠어요?

부엌에 장작불을 지피고 쌀을 씻어서 무쇠 솥에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는 등 번거로운 가사 일을 혼자서 해도 남편은 책상에 마주앉아서 신문이나 읽고 있고, 혹여 방안이라도 물걸레질을 한다든가 부엌일을 도와주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찾아오거나 하면 얼른 방안으로 들어가서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을 정도로 남자들이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을 창피한 것으로 간주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직장에서 일하다가 한가한 시간이면 스트레스를 이야기로 풀기도 합니다. 저마다 앞 다투어 경험담을 이야기하는데 어떤 때는 남편이 너무 미워서 밥도 주기 싫다고 하면서 한바탕 웃음으로 넘기기도 하였던 기억들이 생생합니다. 특히 북한에서는 여자가 한 번 시집을 가면 그 집 문턱을 베고 죽어야 한다는 식으로 이혼을 불가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배우자가 마음에 안 들거나 문제가 있어도 이혼을 거의 생각도 못 하고 참고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서로 맞지 않아서 매일매일 가정싸움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깨끗이 갈라져서 서로에게 맞는 삶을 찾는 것이 본인들에게도 자녀들에게도 더 좋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한국에 와서 당당하게 살면서 어떤 때는 저희가 보기에 지나치다고 생각할 정도이기는 하지만 이혼을 선택하는 여성들을 심심치 않게 보면서 많이 북한과 대비해 보게 됩니다. 더구나 마음에 맞지 않으면 법원에 가서 쉽게 이혼을 하는 것을 보고서는 처음에는 많이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이예진: 그러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탈북여성들의 경우에도 마음이 맞지 않거나 하는 이유로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들도 있죠?

마순희: 네. 며칠 전 스물네 살 여자 대학생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5년 전에 아빠와 엄마, 그리고 현재 스물 한 살인 남동생과 네 식구가 한국에 왔습니다. 아빠는 일용직으로 일하시고 엄마는 마트, 북한의 종합상점쯤 해당하죠. 이곳에서 일하고 자기와 남동생은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요즘 속상한 일 때문에 전화를 한다는 것입니다. 아빠가 북한에서부터 술을 너무 좋아하셨는데 한국에 와서도 일감이 없는 날이면 집안일은 뒷전이고 집안에서 술만 마시고 술이 취하면 엄마에게 술주정을 부린다고 합니다.

현재 엄마는 아빠와 살지 않겠다며 가출한 상태인데 아빠가 술만 마시면 자기를 못 살게 군다고 합니다. 엄마가 딸인 네 말은 들을 것 같은데 설득해서 집에 들어오도록 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빠가 불쌍하긴 하지만 자기가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엄마의 행동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기에 아빠의 말대로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면서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속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예진: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았던 탈북여성들의 의식이 한국에 와서 달라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방금 들으신 가출한 여성은 결국 어떤 선택을 했을지, 탈북여성들의 의식이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지 다음 이 시간에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남북하나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