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가 부담스럽다는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뜻에 따라 순간순간 인생행로가 바뀌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자유에는 늘 책임감이 따릅니다.
탈북자들이 선택하기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직업이라고 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어떤 일이든 빨리 시작해 돈부터 벌 것이냐, 자신의 적성에 맞게 교육을 받고 원하는 직업을 찾을 것이냐.
청취자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남한에 정착하기 쉽지 않다는 탈북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많은 분들이 원하는 직업을 갖는 게 쉽지 않다고들 하세요. 직업을 자주 바꾸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래서 아예 아르바이트라고 하죠. 부업으로 간간히 단순한 노동 위주로 일을 하시는 분들도 많으시잖아요. 탈북자 분들이 취업에 대해 갖는 고민부터 좀 살펴보죠.
마순희: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이 대한민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경제적 자립이라고 말할 수 있기에 취업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조사 자료들을 보아도 그렇고 저희들이 직접 실감하고 있는 문제이지만 아직도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취업 분야에서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취업이나 구직활동을 할 때 남한 주민들에 비하여 직업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또 직장이나 취업활동 하면서 차별을 느낄 때도 있고, 대비할 수도 없을 정도로 발전된 남한 사회에 대한 위화감 같은 것을 느껴서 취업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한국의 여러 연구기관들과 마찬가지로 남북하나재단에서도 매년마다 실태조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예진: 탈북자 관련 실태조사죠.
마순희: 네. 그 조사 자료를 보더라도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일반국민 61.3%인데 비해 57.4%로 낮게 조사되었고 고용률 역시 일반국민 59.3%에 비해 38.7%의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물론 남한의 노동 시장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인구학적 특성, 말하자면 저학력이나 장기간의 경력단절, 그리고 사회적 지지기반도 부족한 형편에서 받을 수 있는 높은 취업 장벽을 감안하여 판단하더라도 일반국민들에 비해서는 낮은 고용률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북한이탈주민들 중에는 건강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도 많고 더욱이 북한이탈주민 중에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60-70%에 이르다보니 그에 따른 육아문제도 역시 취업에서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은 매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가 하루 빨리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들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원에서나 혹은 하나센터에서 교육받은 것처럼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취업훈련을 받아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취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경우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예진: 그런 게 고민이 되어서 상담하는 탈북 여성들도 많이 있을 것 같아요.
마순희: 네. 하나원을 나와서 하나센터에서 지역적응교육까지 받은 어느 여성이 전화로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자신은 북한에서 전업주부로 직장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장마당에서 가끔 장사나 하면서 살아 왔었다고 합니다. 나이도 40대 중반을 넘었는데 이제 무엇을 배워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설사 회사에 취직을 한다고 해도 젊은 사람들도 적응하기 어렵다는 회사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만 앞선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돈을 벌어야 하는 형편인데 취업훈련을 받으려고 해도 도저히 공부가 머리에 들어올 것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자그마한 식당에서라도 일하면서 돈을 좀 벌다가 취업훈련을 받아도 되는지 물어보더라고요. 그 여성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런 고민을 하거든요. 그래서 그 여성분에게도 거주지보호기간 동안에 받을 수 있는 혜택들과 교육보호기간, 취업보호기간에 대하여, 취업을 하는 경우 잃을 것은 무엇이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잘 설명을 해주고 본인의 상황에 맞게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상담해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취업을 함에 있어서 궁금한 문제들과 회사생활에 대한 불안감 등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상담을 받군 합니다. 취업에서도 다른 모든 부문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설령 선택을 잘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런 시행착오는 겪으면서 적응해 나가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미리 겁을 먹거나 불안하게 생각하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탈북자 분들이 하는 고민 중에 '그렇겠구나' 싶었던 게 뭘 선택할지 모르겠다는 거더라고요. 자신이 원하는 직업이 뭔지 부터 알아야 자신감도 생기고, 두려움도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탈북자 정착기관인 하나원에서 탈북자들에게 적성검사도 실시하고 있죠?
마순희: 그렇습니다. 저희들 때에도 하나원 교육시에 적성검사를 했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나의 성격이나 인간관계, 의사소통방법 등에 대해서 돌아보는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검사한 후에 대한민국의 직업세계와 자기의 적성에 맞는 직업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는 교육시간이 있었습니다. 직업별 직종의 종류에 대해서도 배웠는데 그렇게 많은 직업과 직종이 있다는 것에 그저 놀랍기만 했습니다.
이예진: 수만 가지나 된다고 하더라고요.
마순희: 사실 북한에서는 직업이 적성과는 거의 무관할 때가 많거든요. 학교를 졸업하고 혹은 군대에서 제대되면 노동부에서 배치를 하게 되는데 대부분 본인의 적성에 맞게 배치하는 것보다 인력이 필요한 곳에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거든요. 게다가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서 노력을 집단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본인이 아무리 가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저희가 살던 광산에서는 당의 방침에 의해서라고 하면서 한 개 군부대를 통째로 제대시켜 광산의 노동자들로 배치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제대할 시기가 된 상사나 특사 중사들로부터 입대한지 얼마 안 되는 상등병까지 모두 한꺼번에 제대시켜 광산노동자로 취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아는 상등병 제대군인은 나라를 위해 군사복무를 한다고 대학추천까지 마다하고 입대했었는데 채광장에서 곡괭이질이나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다고 차라리 대학에나 갈 걸 그랬다고 혼자서 속상해하더라고요.
저의 맏딸 같은 경우에도 광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광산에서도 제일 어려운 부분인 선광장에 집단배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당의 배려로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했으면 당이 부르는 곳에서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쌀 500그램도 못 사는 16원이라는 장학금을 한두 번 받은 것이 그렇게 굴레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눈만 반짝거리고 새까만 정광먼지에 휩싸여 내 자식도 분간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체격도 왜소한 어린 딸이 10여 키로가 넘는 정광가루를 삽으로 퍼 올리고 얼음산위에서 곡괭이질을 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제가 괜히 욕심을 부려서 전문학교에 보낸 것 같기도 해서 혼자서 뼈아픈 후회를 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남한에 와서 보니까 달라도 너무 달라서 처음에는 그 자유가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고 일하다가도 적성에 맞지 않으면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는다고 하여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누구나 일생동안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이지만 그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매일매일 일하더라도 얼마나 보람차고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의무감에 의해서 한다면 매일 매일이 고역일 것 같습니다. 저도 60대 중반의 나이에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의 적성에 맞는 일을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 매일 매일이 부담되는 일이 아닌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예진: 그래서 '평양 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죠. 돈이나 명예, 권력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인생에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탈북자 분들도 한 번쯤 생각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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