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국에선 사춘기보다 더 심하게 부모 말도, 교원 말도 안 듣고 반항하는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열다섯 살의 청소년들을 우스갯말로 ‘중2병’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맘때의 자녀가 있는 탈북 가정도 자녀와 만만치 않은 갈등을 겪는다고 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 가정 내 부모와 자녀와의 갈등,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지난 시간에 탈북자들의 이혼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부부간에는 정말 안 맞으면 이혼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도 하는데, 자녀와의 갈등은 부모도, 아이도 해결하기 어려워하는 탈북자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부부 사이에는 이혼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쓰면 남남이 되기도 하지만 부모자식 사이나 형제자매 사이는 갈라놓는다고 갈라질 수도 없는 사이니까요. 몇 년 전에 경기도에서 산다는 40대의 한 여성의 상담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10대의 딸을 데리고 한국에 온지 3년 정도 되었는데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답니다. 얼마 전부터 회사에 다니면서 알게 된 남성과 함께 동거하게 되면서부터 일이 시작되었답니다. 자신은 딸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딸은 엄마가 자기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활발하다는 딸이 집에만 돌아오면 엄마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사사건건 엄마와 부딪치고 새 아빠가 아무리 잘 해주려고 해도 전혀 곁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일이다시피 딸 때문에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잦아지다보니 부부사이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지방에 있는 한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는지 혹시 딸과 영영 멀어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예진: 좀 따로 떨어져 살아보겠다는 거죠?
마순희: 네. 대안학교라는 건 숙식이 다 보장되고 학교공부를 먹고 자면서 하는 거잖아요. 그 여성과 그래서 전화로 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어떤 선택이 정답일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본인이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고 딸이 가겠다고 한다면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했습니다. 엄마밖에 모르던 어린 딸에게는 새 아빠의 존재가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앗아가는 존재로 비춰 질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안학교에서 같은 또래의 애들과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점차 마음을 잡아갈 수도 있고, 부모님과 자주 마주치지 않다보면 갈등도 적어질 것이고, 서로 그리운 마음도 더해지고, 어쩌다 만나면 더 반가울 수도 있을 거라는 등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 후 1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지금도 가끔 통화를 하게 되면 그때 딸을 보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딸은 대안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있고 어쩌다 학교 행사에 부모님들이 찾아가면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과정만 마치고 고등학교는 엄마가 있는 곳에서 다니겠다고 하기에 딸과 함께 있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한시름 놓았다는 얘기도 하더라고요. 함께 있으면서는 전혀 하지 않던 아빠라는 호칭도 전화상에서는 자연스럽게 부르게 되고 지금은 오히려 남편이 딸을 더 챙긴다고 합니다.
이예진: 잘됐네요.
마순희: 네. 이렇게 자녀 이야기가 나오면 양강도에서 미용사로 일하던 포항의 한 여성의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중학생인 딸을 데리고 한국에 왔는데 딸은 학교도 잘 다니고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답니다. 자신은 미용사가 되기 위해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도 하고 실습도 하고 부업도 하면서 너무 시간 없이 보내다보니 미처 딸에게 관심을 두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 줄 알았던 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딸은 그 사이의 학교 공백기가 있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가 없어서 혼자서 힘들어하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은 거죠. 그렇지 않아도 밤낮 바쁜 엄마에게 자신에 대한 근심까지 더 보탤 수 없다는 것이 딸의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딸의 사정을 알게 된 그 여성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자신이 아무리 잘 정착한다고 해도 딸이 이렇게 힘들어 한다면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대학공부보다는 적성을 살려 미용기술을 배워서 엄마랑 함께 사업을 해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딸도 엄마의 의견에 찬성하였습니다. 힘든 대학공부대신 딸은 지금 자신의 적성을 살려 미용정보고등학교 재학 중이라고 하더군요. ‘딸이 아니라면 아마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먼저 개척해 나가면 딸은 내가 겪은 어려움을 겪지 않고 따라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겨나간다’고 하던 그 여성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저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한 집에서 같이 자고 같이 밥 먹는 가족이라도 마음까지 다 알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예진: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사례들은 그래도 가정 내에서 잘 해결한 것 같은데, 자녀와의 갈등이 있을 때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이럴 때 도움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마순희: 자녀와의 갈등을 해결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관심을 가지면 얼마든지 해결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탈북청소년들이 많이 공부하고 있는 학교마다 북한 교사출신 코디네이터들이 근무하고 있어서 탈북청소년들의 공부나 학교생활에 대해 상담해주고 지도해 주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아동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 상담기관들도 있지만 정작 자녀와의 갈등이 있다고 상담실을 찾아가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조급하게 시도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스스로 깨닫고 바로잡아 나갈 수 있도록 이해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말 한 마디라도 좀 더 따뜻해야 할 것 같아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이 함께 한다는 건 참 중요하죠. 선생님도 참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계시잖아요. 가족 사이에 잘 지내기 위해 가족 개개인이 어떤 노력을 하는 게 좋을까요?
마순희: 과찬이십니다. 저희 가족이라고 문제가 없이 늘 화목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근본을 잃지 말고 가족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서로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다보면 문제해결의 방도는 항상 있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지도 이제는 만 14년이 되었네요. 그동안 크고 작은 생활의 파도가 쉼 없이 우리 가족에게도 부닥치게 되더군요. 그래도 서로가 이해하고 보듬으면서 살아가다보면 아무리 힘든 일도 역시 지나가더라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윗왕의 반지에 새긴 글귀인데요.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입니다. 다윗 왕이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지만 북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왕이기는 하지요. 이스라엘의 왕인데, 그가 전쟁에서 승승장구할 때였다고 합니다.
궁중의 한 보석세공인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반지를 하나 만들고, 그 반지에 글을 새기도록 했습니다. ‘내가 큰 승리를 거두고 그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에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새기라, 그 글귀는 내가 절망에 빠졌을 때에도 나를 절망에서 구해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보석세공인이 멋진 반지는 만들었으나 그런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고심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다윗왕의 아들이 솔로몬 왕자인데요. 지혜가 출중하니 도움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보석세공사의 이야기를 들은 솔로몬 왕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라는 글귀를 적어주었습니다. 멋지죠? 아무리 힘든 일도, 아름찬 기쁨도 역시 지나가고 내일에는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이니까요. 자만하지도, 좌절하지도 말고 열심히 살아가게 하는 참 좋은 글이라 저는 늘 새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예진: 남이나 북 어느 집에서나 크고 작은 가족 간의 갈등은 있겠죠. 그럴 때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 하는 여유 있는 마음으로 해결방안을 찾아가면 좋겠네요.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