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대박, 헐, 지못미.
남한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신조어, 새로 만들어진 말들입니다. ‘대박’은 대단하다는 뜻이고, ‘헐’은 놀랐을 때 나오는 말 ‘헉’의 다른 말이죠.
‘지못미’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의 줄임말이고요.
처음 들어보셨나요?
이렇게 다 같이 쓰는 말을 나만 모른다면 어떨까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남과 북,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대해 알아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심리상담,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진용 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전진용: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네. 오늘은 언어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 얘기 나눠볼 텐데요. 선생님께서도 탈북자들을 상담할 때 많이 느끼셨을 것 같아요.
전진용: 네. 저도 처음 탈북자들을 만났을 때 진료할 때와 달라서 당황했는데요. 탈북자들이 아프다는 의미로 “바빠서 병원에 왔어요”라고 했을 때 바쁜데 어떻게 병원에 왔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고 치료하러 온 것도 병 보러 왔다고 말해서 이해가 안 됐죠.
이예진: 언어가 다른 것도 문제인데, 말하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전진용: 단어 자체도 문제가 되지만 문장 전체의 의미가 남한과 북한에서 생각하는 게 달라서 생기는 문제도 있거든요. “덥네요”라고 말했을 때 그냥 덥다는 것과 문 좀 열어달라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탈북자들과 뜻이 안 통해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한 번은 상담할 때 탈북자 분에게 점심식사 하고 만나자고 했는데요. 그럴 경우 한국에서는 식사하는 시간을 충분히 고려해서 여유 있게 오게 되죠. 하지만 탈북자 분은 식사할 시간만 제외하고 오는 경우가 많아요. 남한 사람들이 보기에 융통성이 떨어진다고 여기게 되고, 탈북자들은 그렇게 오라고 해놓고 왜 그럴까 서로 오해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의사소통이 힘든 경우가 생깁니다.
이예진: 지난 시간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북한 언어와 남한 언어가 다른 점 가운데 사회 체제가 달라서 오는 다른 점도 있죠?
전진용: 네. 남한 사람들은 말을 할 때 돌려 말하는 경향이 있죠.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요. 반대로 북한 사람들은 직설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를 들면 남한에서 거절할 때 ‘싫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겠다’, ‘알아보겠다’ 이렇게 돌려 말하죠. 부탁받았을 때도 ‘안 된다’가 아니라 ‘알아보고 나중에 알려 주겠다’고 말하는 경우는 안 된다는 표현을 돌려 말하는 거죠. 하지만 탈북자들은 ‘알아보고 나중에 얘기해준다고 했으니까 되는 것이구나’ 생각하죠. 그러다 나중에 안 된다고 하니까 탈북자 입장에선 말을 자꾸 바꾸는 것 같고, 이랬다저랬다 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얘기할 때 딱 잘라서 거절을 하니까 차갑다, 직설적이다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남한 사람들은 그래서 탈북자들이 딱딱하단 느낌을 받는 건데요. 하지만 북한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예를 들면 ‘선생질 얼마나 했어요?’라고 묻는 것도 남한에서는 좀 돌려 말하거나 부드럽게 표현을 바꾸는데요. 북한에서는 그냥 자연스러운 표현이죠. 어떤 표현은 북한에선 일상적이지만 남한에선 저속한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이예진: 그렇죠. 하지만 언어의 차이는 다른 것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니까요.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죠? 하지만 언어가 달라서, 서로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오는 스트레스, 보통이 아니라고 하는데요. 어떤 경우들이 있는지 먼저 탈북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죠.
사례: 처음에는 그냥 듣고 웃기만 했죠. (웃음) 그 다음엔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했고요. 얘들이 ‘헐’ 그러면. 왜 저러나 생각했고 ‘대박’ 이러면 뭐가 대박이지? 그랬으니까요.
제가 이 얘들하고 소통하려면 어느 정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랬어요. 그걸 모르는 그것이 왕따더라고요. 내가 얘들에게 미움을 사거나 내가 부족해서 왕따가 아니고 내가 모르는 것 자체가 왕따에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런 채팅을 참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언어를 배우면서 하다보니까 그 다음에는 어투가 조금은 달라도 알아듣고 얘기 듣고... 또 내가 그런 말들을 써주면 얘들이 같이 호응해서 대화도 좀 쉬워지더라고요.
이예진: 남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아예 몰라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네요.
전진용: 네. 제가 탈북자들과 만나 봐도 그런 점이 많았는데요. 외래어를 비롯해서 물건을 사거나 할 때 주변의 남한 사람들한테 물어보게 되고 그런 것들이 반복되면 자신이 무시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예를 들면 세탁소에 ‘컴퓨터 세탁’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컴퓨터 기능을 이용해서 전자동 세탁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탈북자들은 ‘컴퓨터를 세탁하나’ 생각하는 거죠. 또 남한 식당에서 주로 물을 주지만 외래어로 셀프라고 해서 자신이 물을 직접 떠먹는 경우도 있는데 탈북자들은 이 말을 몰라서 물을 못 먹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상황에서 자신감도 상실되고 심리적인 어려움 때문에 쉽게 질문하거나 얘기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이예진: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사람 만나는 게 두렵거나 사람들 많은 곳에서 말을 잘 안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진용: 네. 사람들이 많은 곳이나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는 잘못 얘기하면 비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언어의 차이 때문에 곤란을 겪다보면 스트레스로 인해 사람들과 점점 얘기하기 힘들어지면서 위축되고 질문도 못 하게 되고 그렇게 반복되다보면 악순환이 될 수 있거든요.
이예진: 저는 그게 제일 두려울 것 같아요. 악순환.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전진용: 이런 경우에 모르는 상태로 있다고 해서 해결이 되지 않거든요. 한 번은 겪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언어라는 게 한 순간에 다 알게 되는 게 아니잖아요. 시간을 두고 터득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위축되거나 당황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쌓여서 해결됩니다. 계속 피하다 보면 해결이 되지 않고 반복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대처하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예진: 아무래도 긴 세월 서로 떨어져 살다보면 생길 수밖에 없는 간극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도 계속 부딪치고 서로 이런 게 다르구나 알고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전진용: 네. 60년 넘게 남북한이 분단되어 있고 그래서 언어의 차이가 생겼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인 대화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어렵고요. 탈북자들은 그래서 남한에 와서 자세히 설명을 하고 확인을 해야 합니다. 남한 사람들도 탈북자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 되묻거나 좀 더 자세히 묻거나 분명하게 물어야 하고요. 자신감을 잃지 말고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경험을 쌓아간다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언어의 차이는 정말 누구의 탓도 아니니까요. 서로에 대한 이해만 있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찾아가는 심리상담.
오늘 도움 말씀에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진용 선생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진용: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