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사업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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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인터넷 소통망 페이스북을 설립하며 정보화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는 미국의 젊은 기업가 마크 주커버그는 ‘시도해보고 실패를 통해 학습하는 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는 말을 했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며 나름의 성공을 거둔 탈북자들도 가슴에 품은 명언 하나씩 갖고 있다고 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들의 사업 성공 비법을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최근 농업에 종사하는 탈북자 분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 지난 시간에 전해드렸는데요. 탈북자 분들 나름대로 실패도 겪어가며 얻게 되는 자신만의 성공 비법들이 있을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그러기에 농촌에서 성공하신 분들을 취재하다보면 자신만의 비법들에 대하여 한 마디씩 이야기하군 합니다.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이 즐겨 읽고 있는 동포사랑이라는 잡지에는 매 회마다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탈북민들의 성공사례가 게재되군 하는데요. 이번 호 ‘동포사랑’에 소개된 사례 중에 충남 부여에 정착한 김명희 대표는 영농을 준비하는 탈북 후배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너무 들뜨지 말고 겁내지도 말며, 농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노력을 들여 기술을 배우라고 권합니다’, 또 경기도 평택시에 버섯농사를 짓고 있는 또 다른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허황된 꿈을 버리고 흙 앞에 겸손하라’, 저도 그 글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되더라고요.

이예진: 정말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네요. 이런 분들이 또 많은 것 같아요. 회사나 가게, 공장 등에 취직해 일을 하는 탈북자 분들이 사실 더 많지만, 요즘엔 귀농을 포함해 자기 사업을 하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도 좋지만 자기사업을 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제가 잘 알고 있는 식당의 사장님이 저를 만날 때마다 항상 하는 이야기가 요즘엔 장사가 안돼서 영 말이 아니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한 고향에서 온 친구이기도 하기에 어느 날 제가 물어보았죠. 솔직히 하루 순수입이 어느 정도 되는지 말입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아무리 장사가 안 된다고 해도 선생님이 받는 급여에 비기겠느냐고, 항상 그 두 세배는 된다는 거죠. 그리고 수입을 떠나서도 웬만히 자리만 잡히면 자신의 일, 자신의 사업을 하는 거라 빡빡한 회사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마음이 편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착한사례 취재를 다니다보면 회사에 다니는 사람보다 자기사업을 하시는 분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금년에 들어와서 제가 취재한 분들이 30여 명인데, 그 중 자영업 즉 창업이나 농업법인회사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모두 12명이었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식당 사장도 대여섯 명, 미용실 원장, 유통업, 전세버스를 가지고 자신의 사업을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분들을 찾아서 발굴하고 인터뷰하다보니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때보다 자영업자들의 비율이 훨씬 높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탈북자들이 남한에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한지가 거의 20년이 돼 오다보니 그동안 경제적 여력도 생기고 배우는 것도 많아졌으니 자기 사업을 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예진: 그렇군요. 예전에는 탈북 청년들이 한국에 오면 북한에서 못 배운 걸 배우기 위해서라도 대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걸 우선시했는데, 이제는 좀 분위기가 달라졌나보죠?

마순희: 그렇습니다. 제가 요즘 강원도 춘천, 충청북도 음성, 전라남도 순천, 여수, 제주도 등 많은 곳을 다니면서 느끼게 되는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제가 춘천에서 만났던 한 청년의 사례가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먼저 탈북해서 한국에 살면서 그 청년에게 한국에 올 것을 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북한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그런 그를 탈북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면 군대에 나가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탈북하다 보니 군대에 못 나가게 되었고 사람들 앞에서 수치스러움을 느끼게 되고 절망하게 되었답니다. 아무리 잘해도 북한에서는 내가 발전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에 7년 전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가려고도 생각해보았으나 어렸을 때부터 학교와 학원에서 열심히 배워온 남한의 친구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동안 학교 다니면서 부업을 하려고 친숙해진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성격 좋고 깔끔하면서도 성실한 청년은 대기업의 식당에서도 2년 정도 근무하면서 자신의 식당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대학에 가지 않고 무슨 식당이냐고 반대를 하셨고요. 그래서 그 친구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그동안 부업과 식당에서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자기 힘으로 식당을 차렸답니다. 춘천이라고 하면 닭갈비로 유명하잖아요? 그 친구도 이름도 특이한 ‘강쇠네 태백물닭갈비’라는 식당을 하고 있는데 음식솜씨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이예진: 드셔보셨어요? 맛이 어떻던가요?

마순희: 네. 너무 맛있었어요. 그래서 취재하면서 대학에 안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저의 물음에 그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대학은 내가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언제든지 다닐 수 있는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필요하면 하는 거죠. 대학을 다니는 것도 졸업하면 결국은 취업을 해야 하는데 저는 조금 순서를 바꾸었다고 봐도 되거든요. 앞으로 열심히 식당을 운영해 나가다가 정 아니다 싶으면 그 때에는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되겠죠. 저는 어떤 선택이든지 자신 있다고 자신을 믿기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한 당찬 그 청년의 나이가 올해 26살이었습니다. 이번에 춘천에서 취재하면서 저 역시 많은 것을 배우게 되고 또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이예진: 사실 한국 사람들도 과거에는 대학교를 나와 비슷비슷하게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고 비슷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걸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대학교 간판 없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젊은 나이에 성공한 젊은이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성공한 탈북 청년들의 이야기도 종종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더라고요.

마순희: 제가 작년에 취재를 갔던 창원의 미용실 원장도 한국에 온지 불과 4년밖에 안 된 29세 여성이었습니다. 홍대입구에서 피부관리실을 운영하는 여성 역시 30세의 앳된 아가씨였고, 광명시와 시흥시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여성들도, 수원에서 은하미용실을 하고 있는 미용실 원장도 40대 초반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대담하게 식당을 차리고 자기 업체를 차리고 잘 운영해 나갈 수 있을까, 제가 다 부러웠습니다. 트럭에서 음식을 파는 푸드 트럭을 하는 탈북 청년들의 성공적인 정착소식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하여 많이 소개되고 있잖아요. 그런 사례들을 접할 때마다 저는 자신의 일처럼 저도 뿌듯함을 느끼게 되더군요.

이예진: 저도 취재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차근차근 원하는 걸 이뤄가는 탈북자분들이 참 많더라고요. 그런 탈북자 분들의 얘기, 다음 시간에 들어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