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여러분은 과거, 현재, 미래 중에 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대부분 과거는 지나간 것, 잊혀진 것이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실 텐데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왕년엔 내가 잘 나갔지'하는 생각이 점점 커져 불행한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전진용: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네. 오늘은 잘 나가던 과거만 생각하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해볼 텐데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마순희 선생님께 걸려온 전화 상담, 어떤 내용인지 먼저 들어보시죠.
마순희: 며칠 전에 상담했는데요. 북한에서의 직업은 아마 보위부에서 일했나 봐요. 한국에 와서는 다른 탈북자들과 휩쓸려 회사 가기도 그렇고, 새로 무언가 배워서 할 생각도 않고 그냥 막노동을 했어요. 부인과 자식도 한 명 데려왔다고 해요. 부인이 봤을 때는 북한에서 아무 것도 못 하던 사람도 훈련을 받아 회사도 잘 다니고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는 걸 보잖아요. 남편이 북한에선 잘 나가는 줄 알았는데 한국에선 무기력하니까 어떻게 살겠냐고 하면서 가정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나 봐요. 부인이 집을 나가겠다고 하기도 하고요. 이럴 땐 어떻게 상담해줘야 할까 고민되더라고요.
이예진: 북한에서는 보위부로 어려움 없이 잘 살다가 남한에 오게 된 한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셨는데요. 사정이야 어떻든 남한에 와서는 남한 식대로 배울 건 배우고, 노력할 건 노력해야 하는데 과거 지위를 생각해서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꺼리고, 단순 막일을 하면서 근근이 살다보니 가정불화까지 생겼다는 얘기잖아요.
전진용: 그렇죠. 과거에 너무 집착하면서 적응을 못하는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요. 적응을 못하다보니까 경제적 문제가 생기고, 또 자기 자존감이 저하되면서 이에 수반한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예전에 제가 상담한 사례 중에서도 북한에서 살았던 것이 적응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요. 예를 들면 북한에서 큰 기업소 관리였는데 여기에서는 북한에서 자신보다 못 살았던 사람들이 돈도 많이 벌고, 더 잘 사는 걸 보면서 자신은 더 대접도 못 받는 것 같고 그러다 자신감을 잃으면서 적응을 잘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또 남한 사람의 경우에도 큰 식당을 하다가 잘 안 돼서 망했는데 다시 시작할 생각보다는 '예전에 나는 큰 식당을 했는데, 나보다 못 했던 사람들이 지금 더 잘 나간다'는 생각에 술만 마시면서 과거에 집착하던 분도 계셨거든요. 과거에 계속 집착하다보면 현재에 적응하기 어려운 법이죠. 과거를 생각한다고 해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낭비할 뿐이죠. 그런 시간에 새 출발을 위해 노력하거나 투자할 필요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과거에 어떤 일을 해서 성공한 사람이라면 가능성이 더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하는데 나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살다 보니까 이런 문제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이예진: 네. 그리고 이들 부부는 그런 문제들 때문에 가정불화까지 겪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들 부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뭘까요?
전진용: 이들 부부는 급격한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다보니 여유가 없고, 부부관계에서도 사소한 것에서부터 갈등이 생기는 것 같은데요. 서로 예민하다보니까 사소한 문제를 더 키우게 된 것 같고요. 특히 부인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자신감도 없고 적응을 못 하면 오히려 도와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남편이 잘 나가던 때와 남을 비교하면서 비난하다보니까 남편이 더 좌절하게 되고 부인한테 더 큰 상처를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예진: 사실 많은 탈북자들이 과거 어떤 생활을 했는지와 상관없이 남한에 와서 자신의 방식대로 능력껏 열심히 배우고 일해서 성공하는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분의 적응력이나 개인적인 성향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전진용: 네. 미래 지향적인 사람들은 덜한 편인데, 소심하고 집착이 강한 성향은 위축되기 쉽고 과거에 얽매이기 쉽거든요. 소심하거나 모험심이 부족하고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이 그렇게 과거만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예진: 그리고 이런 경우가 말이죠. 탈북 여성들은 한국에서 적응을 잘 해서 직장도 갖고, 열심히 살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반면에 탈북 남성들이 이렇게 자리를 못 잡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죠. 이런 고민을 갖고 있는 분들도 남성들이 많다면서요?
전진용: 실제로 상담을 해보면 탈북 여성보다 남성이 북한에서의 생활이나 과거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탈북 여성들보다 남성들이 자존심도 더 강하고 여자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하거든요. 북한에서 어떤 일을 했는데 남한에서는 이 정도 밖에 못 하니까 괜히 초라한 것 같고 부인한테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건 자존심이 상하고, 그래서 혼자 앓고 있다가 적응도 못 하고, 부인은 부인대로 남편이 왜 그러는지 잘 모르고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예진: 그렇군요.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상황은 이해가 가는데 사실 부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남편을 다독이고 격려했지만, 남편의 방황이 계속되니까 다른 탈북자들과 비교하거나 다투는 일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이혼을 생각하게 된 거고요. 부인도 역시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를 겪고 있는 당사자라 부딪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전진용: 네. 부인의 경우에는 남편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대감이 있어서 실망감도 더 커졌고 그래서 다툼이 생겼을 것 같은데요. 남편에게 자신감을 더 북돋아 주고 그랬다면 더 잘 적응할 텐데 부인이 기대하는 것만큼 남편이 이루지 못하니까 실망하게 되고 남편을 비난하게 되는 거죠. 남편은 사회나 부인에게 인정을 못 받는 것 같으니까 위축되고 자신감도 더 상실하게 되고 그래서 더 적응을 못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이럴 땐 부인이 남편에 대한 기대감을 좀 줄이고 용기를 좀 북돋아 주는 행동을 하면 좋았을 것 같은데요. 남편의 일이 그렇다보니까 경제적 문제도 생기고 부인도 남한에 적응해야 하는데 이런 문제가 생겨서 서로 더 힘들게 된 것 같습니다.
이예진: 네. 부부의 불안한 모습을 보는 자녀 역시 그만큼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을 것 같은데요. 잘 나가던 과거만 생각하다 현재를 잘 살지 못하고 있는 이 가정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요?
전진용: 서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일이 잘 안 되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는 게 필요한데요.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에 대해 믿지 못하니까 신뢰감이 떨어지고 희망도 적게 되는 것 같고요. 부인은 남편에 대한 믿음이 적으니까 신뢰가 적어지죠. 그러다보니까 부정적인 면부터 생각하게 되는 거죠. 남편도 자신을 믿고 잘 할 수 있다는 마음이 필요하고요. 부인도 남편의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하면서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예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하는 시가 생각나는데요. 과거에 대한 미련은 이렇게 누구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는 현재를 잘 살아가는 밑천이 되어야지, 현재를 구속하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진용: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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