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학생들 적응력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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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죠. 습관이나 생활방식은 나이 들수록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뜻인데요. 이 말은 탈북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남한 적응 속도도 빠른데요. 특히 탈북학생들의 적응력은 해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학생들의 남한생활 얘기를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어린 나이에 탈북한 경우에 대체로 적응력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초반에는 심리적으로 더 불안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떨까요?

특히 어린 탈북 학생들에게는 심리적으로 더 불안한 경우가 많죠. 공부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고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경우가 있을 것 같고요.

마순희: 지금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국립의료원에서 일할 때 만났던 한 여성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물론 학생은 아니고 7세 여아였는데 그 때 가슴 아프던 생각이 늘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30대 후반의 여성이 국립의료원에서 건강이 안 좋아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병명도 여러 가지었습니다. 항상 머리가 아프고 소화도 안 된다면서 내과 치료를 받았고 갑상선 기능 저하증 치료와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었습니다. 진료가 끝난 후에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늘 중국에 두고 온 일곱 살 딸과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보이군 했습니다. 6개월만 지나면 여권이 나오니까 그 때 중국에 가서 아이도 보고 국제결혼으로 남편과 아이를 데려오겠다는 것입니다.

이예진: 법적으로 그때가 가능하다는 거죠?

마순희: 네. 그러려면 건강부터 회복해야 할 것 아니냐고 치료에 전념하도록 상담을 해나갔습니다. 그리고 딸과 남편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 빨리 건강해져서 취업을 하고 남편과 딸이 와도 믿고 정착해 나갈 수 있도록 내가 잘 적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주었지요. 그동안 치료를 받아서 건강도 웬만히 회복되자 국제결혼으로 남편과 딸을 데려 온다고 여행사를 통하여 수속을 하고 한편으로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남편보다 딸이 혼자 먼저 도착했다는 기쁨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되어 다시 병원을 찾은 그 여성의 모습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데리고 온 딸도 엄마의 뒤에서 얼굴을 내밀려고도 하지 않았고 묻는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 엄마의 눈치만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간식으로 아이를 달래고 함께 일하는 간사에게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놀게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 충격적이었습니다. 취직을 하려고 하던 것이 애가 오는 바람에 다 무산되고라도 부업이라도 해야 하는데 애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집에 보내려 해도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자기만 졸졸 따라다니기에 이제는 짜증이 난다며 그제야 왜 팀장님이 웬만히 적응한 다음에 데려오라고 했던지 이해가 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왕 애가 왔는데 이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애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헤어진 지 3년이 지나다보니 내 자식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라고 하는데, 그럼 애는 어떨지 생각해 보았는지, 겨우 엄마라고 찾아 왔는데 또 언제 헤어질지 몰라 애가 더 불안할 수 있기에 사랑으로 더 보듬어야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예진: 그렇죠. 엄마와 또 떨어질까봐 그렇게 쫓아다녔다는 거잖아요.

마순희: 네. 어린이집에 가도 울기만해서 보낼 수가 없었다고 해요. 사실 일곱 살이면 한국 애들 같으면 생일이 빠르면 학교에 갈 나이인데 기초적인 공부도 교육도 전혀 안 된 상태라 막막하긴 했지만 어린애들은 또 금방 적응하거든요.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원장님과 잘 상의하고 처음에는 엄마랑 같이 가서 노는 방식으로 30분씩 놀다가 오고 다음에는 또 한 시간씩 시간을 늘려가면서 애가 어린이집에 적응하게 하고 점차 보내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애들은 참 빨리 적응하는 것 같습니다. 1년도 안 되어서 자기는 회사에 다니고 딸도 어린이집에 가서 공부도 하고 글도 잘 읽는다면서 전화통화도 했답니다.

우리 남북하나재단에서 1년에 한 번씩 실태 조사를 하고 있는 거 아시죠? 그 조사 자료가 세 가지로 되어 있는데요.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 북한이탈주민 사회조사, 탈북청소년 실태조사로 나뉘어 있습니다. 2014년 탈북청소년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조사에 참가한 탈북청소년 713명 중에서 초등학교에 재학하는 학생이 41. 5%, 중학교가 35. 1%, 고등학교에 재학하는 학생이 14. 8%, 그 외에는 대안학교에서 초중과정이나 중학교과정, 고등졸업과정 등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8. 6%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실태조사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탈북 청소년들이 정규학교에서 공부하는 비율이 2012년도에 비해 많이 올라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예진: 일반 남한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 비율이 올라갔다는 거죠?

마순희: 그렇죠. 물론 낯선 남한 땅에 와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조사 자료에 의해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나이가 어릴수록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적었고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어려움이 큰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탈북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학교들에 탈북학생전담 코디네이터가 배치되어 그들의 공부와 학교생활에 대한 지도를 해주고 있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이 시간에 코디네이터가 뭔지 종종 말씀드렸는데, 일반 학교에 다니는 탈북 학생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 어려운 점들을 해소해주는 선생님들이라고 하면 되겠죠?

마순희: 네. 북한 교원 출신, 한국에선 교사라고 하죠. 그런 분들이 교육을 받아서 한국의 학교에서 탈북 학생들의 지도를 맡는 겁니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교사를 만났었는데 초등학생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많은 어려움이 소통이 잘 안 되는 이유로 또래들 사이에서 흔히 말하는 왕따, 북한식으로 모서리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학교수업내용이 북한과 다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수업시간 이외에도 어렸을 때부터 해오던 놀이나 캐릭터나 동요 같은 것들이 전혀 생소한 것이잖아요? 캐릭터라고 하면 영리한 너구리에서 고슴도치 같은 거죠.

이예진: 네. 그런 만화영화의 인기 많은 등장인물을 말하죠.

마순희: 네. 함께 놀다가도 잘 못하면 다른 애들에게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그 애와 놀지 않게 되고 가뜩이나 낯선 환경에서 적응해야 하는 어린 애들의 마음에 상처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린애들의 동심은 천진하면서도 단순하잖아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금세 친해지기도 한답니다. 주위에는 엄마들이 애들과 함께 놀이를 하면서 친하게 지내도록 유도하는 사례들도 많답니다.

이예진: 어린이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데 따른 고충은 각각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극복해가고 있는지 다음 이 시간에 더 자세히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