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심리상담] 탈북 대학생들이 털어놓는 말할 수 없는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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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탈북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딛고 한국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탈북 청년들은 힘들어도 내색을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가다보면 한 번쯤 주저앉는 일이 생기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 대학생들과 함께 정말 잘 살고 있는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심리학 용어 중에 가면 우울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밝고 명랑한 사람들 중에 우울하지만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우울이 겉으로 별로 드러나지 않고 속으로만 쌓아두는 경우를 말하는데요. 학교생활도, 가정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늘 잘 한다는 소리만 듣고 있는 탈북 대학생 수연이와 나래, 하늘이의 마음은 어떨까요?

찾아가는 심리상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님과 함께 탈북 대학생들을 만나봤습니다.>

이수연: 화가 나도 말을 잘 안 했어요. 그런 제 모습을 들키기도 싫고요. 그래서 화가 나는 이유는 말하지 않고 그냥 피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잘 있다가도 갑자기 버럭 화를 내게 돼요.

전진용: 예전에는 화를 내지 않았다고요?

이수연: 보여주진 않았어요. 그런데 올해는 엄마를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발끈 화를 낸다는 거죠. 그리고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요.

전진용: 예전에도 화가 있었지만 말을 안 했던 거겠죠. 말 할 수 없는 상황이었거나 억눌렀다거나 말이죠. 화를 표현하는 건 나쁘지 않아요. 다만 과도하면 문제가 되죠. 어떤 상황에서도 표현하는 게 나쁘지는 않아요. 오히려 가면성 우울증이라고 해서 우울한데도 밝은 척하고 그러다보면 속으론 너무 힘들거든요. 표현하는 건 괜찮은데 갑자기 과도해지거나 횟수가 늘어난다면 요즘 더 힘들어진 건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지 그 이유를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이수연: 옛날에 북한에선 엄마들이 먹고 살기 힘드니까 사랑과 애정을 못 주잖아요. 지금 엄마랑 살다 그런 얘기가 나와요. 지금은 내가 알아서 다 하는데 이제 와서 무슨 간섭하느냐는 거죠. 사춘기도 아닌데 서운함이 갑자기 올라오더라고요. 북한에서 사랑받고 자란 것도 아니고 17살에 독립해서 여기에서 잘 살고 있는 것 아니냐고 했죠. 그랬더니 엄마는 북한에서부터 너희 때문에 죽지 못해 살았는데 이러면 되겠냐고 하고요. 하지만 저는 저대로 쌓인 거죠. 주변사람이나 가족들과 분란 일으키기 싫어서 계속 참아왔거든요. 그런데 이젠 참지 말아야 하는지, 즉각 얘기하는 게 나은지 궁금해요.

전진용: 참아서 없어지면 모르겠는데 계속 마음에 남는다면 표현하는 게 좋은데 표현 방식의 문제인 거죠. 어떻게 순화해서 표현할 것인가. 표현을 잘못해서 오해가 되거나 상처받는 경우도 많거든요. 화를 내는 것도 정말 화가 나서 낼 수도 있지만 애정 표현인 경우도 있죠.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좋아하면서 괴롭히잖아요. 그런 것도 표현의 하나거든요. 하지만 올바르게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그 마음을 모르거든요. 어머니도 자신의 마음을 모를 수 있으니까 말씀을 드릴 필요는 있는데 과도한 표현은 분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상황에 맞게 얘기하는 게 좋죠.

예전에 제가 상담한 학생 중에 어렸을 때 어머니가 아파서 가장 역할을 한 아이가 있었어요. 주변 사람 모두가 엄마도 편찮으신데 동생들 잘 돌본다고 그 아이를 칭찬했죠. 그런데 사실 아이는 아이다워야죠. 초등학생이 어른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도 비정상이거든요. 그렇게 스트레스를 참다보면 언젠가 폭발하고요. 주변에선 ‘모범적이던 애가 갑자기 왜 그러니’ 하지만 아이는 속으로 쌓아왔던 거죠.

이수연: 맞아요. 저도 부담스러워요. 제일 부담스러운 건 엄마가 ‘난 너를 믿는다’, ‘넌 늘 잘 하지 않니?’, 더 결정적인 건 주변에서도 ‘넌 잘하지 않냐’ 이런 말 들으면 부담스러워요.

전진용: 그걸 다 따를 필요는 없거든요.

이수연: 중압감이 들어요. 더 잘해야 하나 하고요.

이예진: 부담감이 더 커지는 거죠.

전진용: 네. 어떨 땐 저도 그런데요. 주변에서 그렇게 관심을 갖고 칭찬해주면 나는 그렇지 않은데 내 안의 모습이 아닌 내 겉모습만을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거든요.

이예진: 엄마랑 평소에 대화는 많이 하는 편이세요?

이수연: 아니요.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수연이의 말에 나래 역시 엄마와 평소에도 대화가 많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물론 자신도 잘 알고 있고요.>

김나래: 저는 대화를 안 해요. 길 지나가다 엄마한테 좋을 것 같다고 생각 들면 사다주기도 하는데 굳이 표현은 안 하니까 엄마도 ‘맏이는 아니야’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심각하게 느낀 게 어릴 때 맏이로 자라면서 엄마가 편찮으셔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막내까지 돌보다보니까 제가 가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이처럼 굴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예진: 북한에 있을 때부터요?

김나래: 네. 자라서 군에 가면서 엄마랑 떨어지면서 더더욱 엄마, 아빠의 존재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요. 힘들 때 엄마에 대한 기대도 별로 없어요. 어렸을 땐 다른 집들은 잘 살고, 잘 입히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왜 이러나 생각도 했었거든요. 군대 갔다가 와서 다 이해는 하지만 아직도 거리감이 있어서 엄마랑 지금도 가깝게 지내지 않아요. 철이 들면서 잘 해드려야지 하는 생각은 하는데 여기 남쪽 아이들처럼 ‘엄마, 엄마’ 하면서 애교 부리고 이러는 건 없어요.

이예진: 네. 앞서 탈북 대학생들을 만나서 얘기를 좀 나눠봤는데요. 이 친구들 공통점이 바로 완벽하려고 한다는 것, 매사 칭찬받는 일만 하려고 한다는 것이네요?

전진용: 네. 어떤 상황에서 완벽하려고 하면 다른 것들을 못 보게 되거든요. 한 쪽으로만 치우치게 되는 거죠.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고,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데요. 성공하고 잘 되는 것에만 관심을 갖게 되다보면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그 중간도 있다는 걸 잊게 되거든요. 이게 아니면 다 안 좋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게 되는 거죠.

이예진: 사실 오늘 탈북 대학생들과 나눈 이야기는 부모와의 갈등과 같은 어느 가정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더 열심히,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탈북 대학생들과 만나본 찾아가는 심리 상담, 다음 이 시간에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