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북한에서는 ‘지도자’가 한 사람만을 지칭하지만 남한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는 작은 조직을 이끄는 사람도 모두 지도자, 혹은 대표, 영어로는 리더라고 부릅니다.
집단의 통일을 유지하고 성원이 행동하는 데 있어 방향을 제시하는 지도자, 조직이 크든 작든 모두 같은 크기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져야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남한 내 탈북단체의 지도자들은 조직원들을 잘 이끌고 있을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지난 시간에 탈북단체와 모임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 사회적인 문제가 된 적도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마순희: 참 말하기가 면구스러운 사례들도 가끔은 발생하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인터넷이나 혹은 TV에서까지 안 좋은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한성무역 사건 같은 사례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정착을 시작하다보니 다단계나 사기 등에 쉽게 노출되는 것 같습니다. 한성무역 사건은 함경도 출신의 한 대표가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높은 이자를 주겠다며 투자금을 모은 거죠. 그런데 일이 잘 안되면서 그 돈을 다 날려버린 겁니다. 재판을 받고 7년형을 받았다고 하는데 문제는 탈북자들에게 돈은 생활의 전부잖아요. 그걸 다 없애버린 사람인데 더 무거운 형을 살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과 투자금을 다시 찾을 방도가 없는지 하는 것 때문에 탈북자들이 고심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알고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라도 함께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면 그 후과는 빠르게 퍼져 나갈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탈북자들인 경우에는 조직적으로 많이 뭉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아마도 안 좋은 일에도 그만큼 많은 분들이 연루가 되기도 하죠.
이예진: 탈북단체 내에 그런 얼굴 붉히는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요?
마순희: 물론 그런 일들은 탈북단체들뿐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어디서나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죠. 그런 문제들이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라면 또 모르겠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탈북자들이 만든 단체에서도 발생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탈북자들이 정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나 사업을 한다고 하면 여러 가지로 지원도 되고 많은 분들이 기부도 하고 도와주려고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저런 명목의 회사나 단체들을 많이 만들고 있지만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남북하나재단에 근무할 때 북한이탈주민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부서의 담당 선생님이 하시던 이야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여러 곳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사업을 해나가는 일부 업체들에서 공공연한 비리현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대해서 많이 우려하시더라고요. 탈북자들이 정말 법이 무서운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퇴직을 하면 1년 이상 근무하면 무조건 퇴직금을 주어야 하는데 회사사정이 어렵다고 하면서 안 준다는 민원이 한두 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알고 있는 분도 사회적 기업이라는 어떤 회사에서 1년 반 정도를 일하다가 퇴직했는데 퇴직금은 생각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탈북자가 대표로 있는 회사인데 회사사정이 어렵다고 하니 아는 처지에 야박한 것 같아서 말을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되고 자기는 그나마 1년에 불과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2년 이상이라고 하던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분은 지금 한두 사람일 때 처리해 주지 않으면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점점 늘어날 텐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이예진: 법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그렇게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꼭 문제가 되더라고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는데 정작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정착하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들 중의 하나가 인간관계의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면서 느끼는 것이긴 한데 법이 우선이긴 하지만 살다보면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연계되는 것이 많은 사회잖아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게 없는 거죠. 물론 가족이 함께 탈북해서 정착하는 분들에게는 조금 덜할지는 몰라도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더라고요. 그러다보니 한성무역 피해자들 같은 경우에도 높은 이자를 준다는 것에도 욕심이 생겼지만 대표자가 같은 탈북자라는 것이 믿음이 가기에 선뜻 큰돈을 투자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적 자원은 탈북해서 수용시설에 있을 때, 그리고 하나원 동기생들, 회사 동료들, 행사에서 만난 사람들 그런 수준이니까요.
그러다보니 그래도 같은 탈북자인데 ‘설마 탈북자를 대상으로 사기를 치겠는가’ 하는 막연한 믿음으로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돈을 빌려주어도 차마 아는 사이에 차용증을 받을 생각을 못하는 거죠.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리고 어떤 단체를 조직하든, 회사를 차리든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사기를 목적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요. 어떤 단체를 조직하고 운영해나갈 때에 처음 시작할 때의 목적과 방향을 잃지 말고 어렵더라도 유지해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힘들겠지만 그만한 각오도 없이 한 단체나 회사 대표의 자리에 있을 생각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혹을 이기지 못 하고 좀 더, 좀 더 하면서 욕심을 부리다 보면 결국은 바늘 도적이 소도적이 되겠죠.
이예진: 그래서 선생님이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거죠. 그러면 원론적으로 북한과 남한에서의 조직생활,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르다고 볼 수 있을까요?
마순희: 북한에서의 조직생활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닌 무조건적인 조직생활이었습니다. 대신 그래도 조직의 대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거든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별 볼일 없던 사람도 당의 신임이라고 초급단체 간부로라도 선출되면 달리 보이더라고요. 그러나 남한에서의 조직생활은 강제성은 없습니다. 자발성으로 참여하기는 하지만 대신 그 조직의 기본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간단한 예로 산악회에 참여한다고 해도 모임이나 또 활동시간도 지키고 어떤 공지사항이 있으면 본인 스스로가 지켜야 되겠죠.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 조직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면서 애정을 가지고 참여하지 않을 바에는 굳이 참여할 필요가 없겠지요. 북한처럼 참여 안한다고 생활총화를 할 것도 아니니까요.
이예진: 자발적으로 하다 보니 안 지켜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사회라는 거 자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지켜야할 도리나 예의, 책임 같은 게 있죠. 특히 단체를 이끌어가는 대표들에게도 중요한 덕목이 있을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저는 한 개 조직을 이끌어나갈 책임자가 되자면 가장 우선적인 덕목이 그 조직의 목적에 맞는 능력과 함께 도덕성과 헌신성, 그리고 봉사정신도 함께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활도 제대로 못하면서 책임자라고 나서서 아무리 말을 잘해도 사람들이 그 말을 잘 따르겠습니까? 북한에서도 이신작칙이라는 말로 간부들은 대중의 본보기가 되고 자신의 실천적 모범으로 조직성원들을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강제성도 아닌데 그런 면모도 보이지 못한다면 그 조직에 누가 계속 붙어 있으려 하겠습니까? 단체든, 회사든 책임자는 책임자다워야겠죠. 조직성원들이 없다면 혹은 회사에 직원들이 없다면 무졸 장군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나 하나의 성공이 아니라 조직성원들을 함께 이끌고 정상으로 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한 책임자의 자격이 있다는 생각했습니다.
이예진: 하나의 조직을 책임지는 사람은 자신만을 위하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조직원들의 의중을 잘 헤아리고 다 같이 잘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게 기본이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조직이 와해될 수 있다는 것 청취자 여러분도 알고 계시죠?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