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여자들이 수다를 떨고 나면 스트레스, 그러니까 심리적 긴장감이나 피로 등이 풀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끼리도 마음 속 이야기를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처음으로 마음 속 얘기를 털어놓는 탈북 대학생들의 수다, 함께 하시죠.
이수연: 밖에서 진짜 힘드니까 집은 쉬는 공간이라는 게 머리에 박혀 있어요. 그래서 집에 가서 불편함이 느껴지면 화가 나는 거예요. 쉬려고 집에 왔는데 이게 뭐지 하는 느낌? 엄마가 이것저것 물으시잖아요. 그럼 더 화가 나죠.
이나래: 밖에 나가면 더 정신을 차리고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써서 해요. 하지만 집에 가면 저의 단점까지 다 나오죠. 머리카락 다 흘려놓고 옷도 아무데나 벗어놓는 거죠. 그러면 엄마가 밖에서 잘 한다더니 이게 뭐냐고 하시는 거죠.
<찾아가는 심리상담을 위해 만난 탈북 대학생 나래, 수연이, 하늘이(모두 가명)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자, 마음 속 깊은 얘기도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수연이와 나래 모두 학교에선 완벽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고 생활하지만 집에 와선 180도 다를 정도로 몸과 마음 모두 흐트러지게 된다고 하는데요. 밖에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을 거절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이나래: 제가 못한다고 막 화를 내버렸어요. 그렇게 말을 하고 나니까 ‘연극은 안 해도 되지’ 안도했지만 계속 미안하더라고요.
이예진: 거절을 너무 못하는 거죠.
전진용: 네. 사실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섭섭해 할 것이다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상대가 신경을 안 쓸 수도 있어요. 저도 거절을 잘 못하거든요. 그러다보니 할 일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엄두가 안 났는데 잘 생각해보면 이번 주에 할 일은 딱 이것만 있는 거예요. 우선순위라는 게 있잖아요. 점수로 따지면 1점부터 10점까지 정해서 어느 게 7점인지, 5점인지 봐서 조절하면 되고요. 상대방이 물론 섭섭해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날 이상하게 보거나 하진 않거든요.
이수연: 저는 남이 나를 문제 있다고 아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해요.
이하늘: 이 친구랑 2년 전만 해도 공부하느라 서로 만날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한 번 만나면 저는 속 얘길 하는데 얘는 자기 마음 아픈 얘기를 잘 안 하더라고요. 나랑 아직 거리가 있나 싶었는데 원래 성격이 그렇더라고요. 저한테 그런 모습 보여주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한다는 거죠.
이수연: 누가 ‘너는 엄마랑 안 좋아?’ 하면 저는 그게 자존심 상하는 거예요. 들키기 싫은 거죠.
이하늘: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나 봐요.
전진용: 갑자기 고치긴 어려울 거예요. 서서히 내려놔야죠. 메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요.
이예진: 자기 얘길 잘 안한다고 했잖아요. 오늘도 그렇고 이렇게 조금씩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이나래: 직접적으로 엄마한테 얘기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쏟아내고 나니까 좋아요.
이수연: 저도요. 이런 얘길 못하거든요. 엄마랑 싸운 얘기는 진짜 처음 했어요. 앞으로는 메모도 좀 하고요. 의사 선생님 말씀도 들었으니까 앞으로는 자유롭게 살래요.
이하늘: 그렇게 사나 한 번 보자.
일동 웃음
<스튜디오>
이예진: 사실 탈북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굉장히 열심히 살고 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 인정받고 있는 친구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처음 꺼낸다고 해서 놀랐거든요.
전진용: 아무래도 남한 사람들한테는 거리감이 있어서 얘기를 못할 것 같고요. 같은 탈북자 사이에서도 같은 탈북자라는 게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거든요. 장점이라면 나의 힘든 점을 잘 알아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탈북자 사회가 좁다보니 부담감이 있거든요. 친하지 않으면 말하길 조심스러워하죠. 그러다보니 마음에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예진: 그래서도 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일이 무척 중요하지 않을까요?
전진용: 네. 사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편해지고요. 상담이나 병원에서 하는 기본 중 하나가 얘기를 하고 잘 들어주는 것이거든요. 이야기를 할 곳이 없거나 마음에 쌓아둠으로써 생기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곳에 전달되지 않는다는 안전함과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예진: 네. 완벽한 성격의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북한에서 온 친구들 중에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전진용: 네. 성격적인 문제도 있는 건 맞지만 실제로 탈북자들이 그런 성향을 많이 보이죠. 어떻게 보면 막연한 불안감이죠. 내가 잘못하면 남한 사람들이 이렇게 바라볼 것이다, 북한 사람이니까 이런다, 북한에서 온 사람이니까 이런 실수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는 남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일종의 강박관념 때문에 하나하나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거죠. 어떤 일을 할 때 고민을 많이 하는 건 좋지만 정신 상태가 힘들 정도로 그러다보면 쌓여서 우울감이나 자신감 상실 등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예진: 오늘 만난 탈북 대학생들도 그랬지만 탈북자들이 특히 더 잘 하려는 마음, 실수하지 않으려는 마음들이 왜 이렇게 클까요?
전진용: 일종의 열등감이죠. 실제로 그렇지 않은데 아까 그 친구들도 분명히 똑똑하고 잘하고 있는데 내가 괜히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열등감, 피해의식이 좀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골똘히 생각하고 너무 완벽해지려고 하다 보니 그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예진: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오늘 만난 탈북 대학생들의 상태는 어떤가요?
전진용: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고요. 적응 과정에서 생기는 당연한 문제이기도 한데요. 걱정되는 것은 계속 이런 것들이 쌓여간다는 거죠. 표출되거나 상황이 바뀌어서 해결되지 않으면 계속 쌓여갈 수 있고 그러다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지금이라도 여유를 가지고 해결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실수한다거나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 중요할 수도 있지만 거기에 얽매이다보면 큰 걸 못 볼 수 있거든요. 결과적으로 내가 행복한 것이 중요하죠. 무엇을 선택하고 행동할 때 남들의 시선보다는 내가 행복하고 원하는 것을 생각해서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마음을 좀 내려놓다보면 더 좋지 않을까. 사실 탈북자들이 걱정하는 것만큼 남들이 그렇게 주시하고 있지도 않고요. 잘못한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그러지 않거든요. 그래서 좀 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예진: 네. 지금까지 찾아가는 심리상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과 함께 탈북대학생들과 함께 평소 말하지 못하던 이야기들을 나눠봤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전진용: 네. 고맙습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