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어떤 탈북자들은 남한정부의 정착지원 혜택 기간이 너무 짧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어떤 탈북자들은 한국에 온지 1, 2년 만에 자립해서 ‘성공한 탈북자’라는 말을 듣기도 하죠.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 정착지원 5년, 길까요? 짧을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배급 등 북한에서 받는 것에 익숙했던 탈북자들이 한국에 살면서 받는 지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자세히 얘기 나눠보죠. 특히 남한정부가 탈북자들의 정착지원을 하는 기간인 5년이 지난 뒤에 줄어드는 혜택에 대한 문의도 많을 것 같은데요.
마순희: 한 할머니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까지 나오던 생계비가 적어져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아들이 4대보험이 되는 회사에 다니게 됐는데 아직 가정을 이루지 않았대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를 부양해야하는 의무자가 된 거죠. 그래서 5년간 생계비를 받다가 그 비용이 줄어드니까 힘이 들었던 거예요. 5년까지는 특례기간이라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되지 않아서 생계비가 다른 분들과 같이 나왔는데 거주지 보호기간이 끝나고 아들이 부양의무자로 되면서 생계비가 줄어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에게 현 복지제도에 대해 내용을 설명해 드렸는데 어르신이다 보니 잘 납득이 안 가는 모양입니다. 여기 저기 다 알아보시고 지금은 아들이 장가를 가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며느리 맞을 생각만 하신답니다.
이예진: 아무래도 자립할 수 있을 때에 지원금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불만이 있나 보네요.
마순희: 그렇죠. 특히 기초생활 생계비와 관련한 상담들도 많이 있었는데요. 대전지방에 살고 있는 30대 후반의 한 여성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남한출신 남성과 결혼하여 네 살 아기가 있고 지금 임신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한국에 나와서 얼마 안 되어 지인의 소개로 결혼을 했는데 남편은 자영업을 하고는 있지만 크게 돈을 잘 벌거나 하지는 않는답니다.
그러다보니 본인이 받고 있던 2인기준 생계비에 1인을 더하여 3인 생계비를 받아왔는데, 소득이 있는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되면 생계비 지원이 끊기니까 그것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던 거죠. 그래서 결혼하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편과 잘 지낼 때에는 별 문제가 없이 지내고는 있지만 누가 남편이나 애 아빠에 대해 물으면 가슴이 철렁하다고 합니다.
이예진: 왜요?
마순희: 혼인등기를 안 하고 불법으로 생계비를 받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여성분에게 잘 설명해 주었지요. 혼인신고를 안 하고 살면 만일의 경우에는 법적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누가 애 아빠에 대해 물으면 지금처럼 당황스럽고 불안하게 살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을 떠나서라도 애가 오래지 않으면 둘이나 되는데 애들에게 제대로 된 가정을 안겨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나오는 생계비를 받아서 생활에 보태는 것과 혼인신고를 하고 당당하게 가정을 꾸리고 안전하게 사는 것, 어느 쪽이 본인의 삶에서 더 중요할지를 잘 판단해보라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떠나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지금 생계비를 받으면서 사는 것이 엄연한 법률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것을 자각하도록 상담해주었습니다. 생계비 문제로 위장이혼을 하였다가 탄로 나서 그 동안의 생계비를 반환해야 하는 부부의 이야기도 예를 들어 가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그 분에서 재단의 출산금지원제도나 산모도우미제도 등에 대해서도 안내해 주어서 지원받을 수 있는 지원제도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 드렸습니다.
이예진: 5년간 탈북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고 있잖아요.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이 5년이라는 기간이 짧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적당하다고 보시나요?
마순희: 저는 그렇게 기한을 주는 것보다 사람에 따라 맞춤형으로 나가야 한다고 봐요. 잘 적응하는 사람들은 1, 2년 안에 잘 정착하고요. 어려운 분들은 5년이 지나도 못 하세요. 부양의무자 기준 같은 것은 5년은 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에 온 탈북자들 중 특히 남성이 자립해서 부모를 부양할 정도로 능력을 갖추기는 좀 어렵거든요.
이예진: 그렇군요. 그래서 이런 불만이나 부담감도 크다는 분들도 있고, 이렇게 지원금을 더 받기 위해서 법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기도 하는가 봅니다. 사람마다 물론 다르긴 한데요. 많은 탈북자들이 스스로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는 것에 만족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있는 이유는 뭘까요?
마순희: 아시다시피 북한에서는 모든 것이 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다보니 배급받는 것에 대한 당연함 같은 것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우리 북한이탈주민 본인이 어떻게 노력하고 어떤 기회를 이용하는가 하는 것이 개인의 정착에서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노력을 해서 어떤 부와 명예를 이루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할 대신 그 사람은 어떻게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사는지 하는 비관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가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 해 드릴까요?
이예진: 어떤 이야기인가요?
마순희: 우리가 한국에 도착하면 합동심사를 받잖아요. 하루 종일 심문이 없는 날에는 심심하기도 하고 할 일이 없잖아요? 그럴 때마다 창가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면서 무엇을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예진: 글쎄요. 빨리 나가서 잘 살아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마순희: 그런 생각도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기도 하고 철없기도 한데요. 거리의 고층건물들을 보면서 ‘너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니? 저기 보이는 아파트? 빌라? 전원주택 농촌이나 바닷가에 가서 살고 싶니?’하고 묻거나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서도 ‘너는 어떤 차를 가질 거냐? 색깔은, 크기는, 모양은?’ 이런 얘기나 또 어떤 일을 하면서 살 거냐는 얘기를 하면서 ‘대학생이 되겠다, 큰 회사의 회사원이 되겠다, 큰 식당주인이 되겠다, 가수가 되겠다’ 하면서 대한민국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꿈꾸었답니다. 그 꿈이 깨어지고 현실을 직시하는 데는 얼마나 걸렸을 것 같나요?
이예진: 글쎄요. 얼마나 걸리셨나요?
마순희: 우선 주택이 본인의 요구가 아닌 임대주택에서 살게 된다는 것은 며칠 후 하나원에 가서 알게 된 거고요. 그리고 그 때 꿈꾸던 차를 가지게 된 것은 몇 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또 바라던 직업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하게 된 것은 1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지금도 가끔씩 그 때 이야기를 하면서 즐겁게 웃음을 터뜨리곤 한답니다. 저 자신도 포함해서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이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한에 오면서 화려하게 꿈꿔왔던 희망과 바람 등이 좌절될 때에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하다는 거죠.
저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꿈꾸던 그 생활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이 평생을 거쳐서 노력하고 피땀 흘려 가꾸어 온 노고의 결실이라고 했을 때 우리에게 그것이 차례지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었습니다. 늦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과 노력, 최선을 다하여 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만일 그 때에 우리가 남들이 살고 있는 고급 아파트만 부러워하고 남들이 누리는 행복만을 부러워하고 정부의 지원이 좀 더 많았으면 하고 바라기만 했다면 쉽게 살 수는 있었겠지만 결코 오늘처럼 정신적으로 만족한 삶을 살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누군가에겐 짧고, 누군가에겐 적당한 정착지원 기간 5년, 선생님 말씀 듣고 보니 우선 마음의 기준부터 달라져야 더 빨리 자립해서 원하는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