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탈북자들 중에는 한국의 드라마나 소문으로 퍼진 이야기를 듣고 한국생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막 한국에 정착해 현실과 환상 사이에 혼란스러워하는 탈북자들의 이야기, 마순희 선생님께 듣습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요즘 선생님께서 탈북자들의 지역 적응을 돕는 지역기관인 하나센터에서 후배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강의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질문은 뭐가 있었나요?
마순희: 4월에 하나원 나온 한 교육생의 질문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20대 후반의 북한에서 금방 온 남성이었는데 자기는 ‘2년 동안 열심히 벌어서 대한민국에서 집을 사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10년을 살면서도 이루지 못한 꿈을 그 친구는 2년에 이루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지지해 줄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 물어보았습니다. 집값은 얼마로 알고 있고 어떤 일을 해서 그 돈을 벌려고 계획하고 있는지 말이죠. 그러자 하는 말이 자기는 하나센터에 앉아서 교육받는 시간도 아깝다, 빨리 나가서 돈이 된다면 아무 회사나 취직해서 열심히 돈을 벌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에서 언제 적성을 따지면서 일했냐고 그냥 닥치는 대로 돈을 벌고 거기에 취업장려금도 받겠다는 거죠. 또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대한민국에는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던데요?’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사에 다니려면 자신의 적성에도 맞는지 할 수는 있는지를 잘 따져보고 들어가야 오래 동안 그리고 즐겁게 일할 수 있다, 그리고 공짜로 혹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허황된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얼마 전 그 친구와 함께 1박2일 프로그램을 가게 되었는데 벌써 한 차례 시행착오도 겪었고, 취직했다 적성에 맞지 않아 나왔다가 지금 취업훈련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제야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이예진: 직접 겪어봐야 깨달을 수 있죠. 선생님도 한국에 처음 오셨을 때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으셨을 것 같아요.
마순희: 그렇죠. 제가 나올 때에는 하나센터도 전문상담사도, 정착도우미도 없이 다만 담당형사 연락처 하나밖엔 알고 잇는 것이 없었답니다. 그러다보니 막막하고 안타까울 때가 많았죠. 어떤 때에는 누구하고 속 시원히 속이라도 터놓았으면 나을 텐데 그럴 사람도 없는 겁니다. 저도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답니다. 약품과 관련된 사기도 당해 보았답니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적응해 나간 거죠. 그래서 제가 몰라서 겪었던 시행착오 같은 것을 후배들은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상담사가 된 것 같습니다.
이예진: 그런 경험담을 토대로 하나센터에서 강의하시면서 본 탈북자들은 어떤 걸 가장 어려워하던가요?
마순희: 지금은 지역에 나오면 하나센터에서 실제로 자기가 살게 될 지역을 체험하면서 한 달 간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다양하고 복잡한 지역사회가 한 두 번의 교육으로 다 알아가고 적응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일반적으로 하나센터에서 교육을 받으시는 분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나 진로 등에 대한 두려움과 심리적 불안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기대 반 두려움 반’인거죠.
그래서 그 분들에게는 실지 정착하면서 느꼈던 저 자신의 이야기와 다른 선배들의 정착경험을 들려주면서 자신감을 안겨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센터나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상담센터, 지역에 파견된 전문상담사, 거주지의 보호관들 등 지역사회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문의해 가면서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속담에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말이 있다시피 알고 있다고 생각되더라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하나하나 적응해 나간다면 반드시 잘 정착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사실 북한에서 살기 힘들어 고향을 떠났지만 낯선 사회에 적응하는 일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또 다른 어려움에 부딪치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사는 탈북자들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두고 북한 주민들이 오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마순희: 북한에서 최소한의 자유와 개인의 선택권이 없었잖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북에서 살 때 항상 우리학교, 우리학급, 우리농장, 우리 작업반, 우리 직장, 우리 초급단체 등등 ‘우리’는 있었지만 그 속에 ‘나’는 없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나라는 존재는 집단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고 집단의 이익 속에 내 몫도 있다는 것이 생활의 원칙이었기에 어떤 일을 하던지 나 개인의 고충과 바람 같은 것은 무시되는 거죠. 그리고 북한에서 생각할 때 내가 힘든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 즉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어쩔 수 없었던 가난, 즉 내일 먹을 쌀이 없고 비가 오면 비가 새는 허술한 주택이 걱정이고 애들 옷 사 입히고 신발을 사 주어야 되는데 돈은 없고, 하여튼 생활고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거기에 출신성분이라는 딱지가 늘 따라다녀서 내가 하고 싶어도 대학에 추천조차 받을 수 없고, 즉 생존권과 사회권이 없었다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하나원을 나오면서 임대주택을 받게 되는데요. 국가에서 공급하는 주택이라고 하여도 수준이 북한에 있을 때 우리 시누 네가 항일투사가족이어서 일반노동자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내던, 군에서는 괜찮은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그것보다도 더 좋은 주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어떤 일자리인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내가 노력하고 하려고만 한다면 어떤 일자리에서든지 일할 수 있고 일하면 꼬박꼬박 급여가 나옵니다. 돈을 가지고 물건을 살 수 없이 모든 것이 배정되고 공급되는 북한과는 달리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살 수가 있습니다. 다만 남한에서 적응이 어렵다고 힘들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발전한 남한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상대적으로 적응해 나가기가 힘들다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메마른 땅에 살던 식물을 비옥한 땅에 옮겨 심어도 모살이를 합니다. 하물며 인간인데 자신이 나서 자라난 곳을 떠나 생소한 곳에서, 그것도 체제나 경제수준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것이 없는 낯선 환경에서 살아나가는 것이 왜 힘들지 않겠습니까? 다만 그 ‘힘들다’의 기준이 다른 거죠.
이예진: 강의 나가시면 꼭 하시는 조언은 어떤 건가요?
마순희: 아무리 남들 보기에 멋지고 화려한 생활을 할 것 같은 사람들도 나름대로 다 어려운 점도 있고 힘든 부분이 있기 마련이죠. 저는 항상 하나센터에 나가서 강의할 때마다 행복의 기준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말을 빼놓지 않습니다. 북한식으로 말하더라도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인데 왜 자신의 행복의 기준을 남을 보면서 남의 생활을 잣대로 할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정착하기 힘들다고 해도 북한에서 생각하던 그런 정도의 힘든 일은 아니잖아요? 아무리 힘들다 해도 쌀이 없어서 밥을 못 먹거나 옷이 없어서 입지 못 하는 일은 없고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오붓한 아파트를 주고 있잖아요. 일자리가 좋고 나쁘고를 따지지 않는다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고 일하면 급여를 주고 돈만 있으면 무엇인들 못 하겠습니까?
우리식구들도 어제는 신나게 스파비스에 가서 물놀이를 즐기면서 휴가를 보내고 왔습니다. 저녁에 식구들끼리 모여앉아서 즐겁게 먹고 마시고 하면서 서로가 고충을 터놓기도 하였죠.
그러다가도 결국은 그래도 내일 먹을 걱정이 없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행복인가, 우리가 힘들다고 하는 것은 결국 사치스러운 투정에 불과하다면서 한바탕 웃음으로 흘려보내기도 했습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더 혹은 덜 행복하게도 느껴질 것이고 어려움에 대한 생각도 서로 다르게 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마찬가지라는 글귀가 생각나는데요. 자신이 세우는 행복의 기준, 저도 오늘 그 기준을 조금 낮춰봐야겠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