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심리 상담] 추석이 반갑지 않은 사람들

추석을 앞두고 1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나눔 가득 농수산물 서울장터 충청북도 특산물 판매대 앞에서 떡메치기 시범이 열리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1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나눔 가득 농수산물 서울장터 충청북도 특산물 판매대 앞에서 떡메치기 시범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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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벌써 다음 주로 다가왔습니다.

추석이 되면 한국에서는 대부분 일가족이 모여 차례도 지내고, 풍성한 잔치음식도 먹고, 명절 선물도 나누는데요.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나 외국인, 일 하느라 바쁜 사람들은 그래서 이맘때가 되면 소외감을 느끼곤 합니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탈북자들은 그 마음이 더한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추석을 앞둔 탈북자들의 마음을 살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심리상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전진용: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네. 여름이 지났나 싶으니까 바로 찬바람 불고 어느새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이번 추석을 어떻게 보내실 계획인가요?

전진용: 추석이다 보니 가족들을 만나 명절을 보내면서 성묘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예진: 네. 보통 가족이 모여 추석을 함께 보내다보니 민족대이동을 하게 되죠. 고향을 찾아가는 행렬로 명절만 되면 고속도로가 꽉 막히는데요. 이번 추석에도 거의 3천만 명의 국민이 행복하지만 고달픈 귀성길을 떠난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성묘를 미리 앞당겨 하고 4, 5일정도 되는 명절 연휴에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도 많더라고요. 이런 분위기가 특히 탈북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진용: 사회적으로 명절이라고 하면 텔레비전에서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에 더 외로울 수 있고, 화제도 고향 방문이나 선물에 대해 얘기하면서 탈북자들이 사회적으로 고립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일반적인 사람들도 고향을 떠나면 외로움을 느끼는데 바빠서 못 갈 때는 합리화하거나 자기 자신을 위안할 수 있지만, 탈북자들은 실제로 고향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향을 생각하면 더 애절하고 상실감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예진: 홀로 탈북한 분들은 그 외로움이 상상 이상이라고 하는데요. 사례를 먼저 들어보시죠.

사례/첫 번째 추석은 7월에 하나원을 수료하고 혼자 맞았어요. 그런데 옆집 전 냄새가 어찌나 창자를 들볶는지 외로움이 더 커지더라고요. 과연 난 언제 가족들과 추석을 보낼까. 북한에도 산소를 가요. 산소에 가서 벌초도 하고 모여앉아 음식도 나눠먹고 그러는 게 그립죠.

갈 곳도 없고 집에서 북쪽 하늘 바라보며 있어야죠. 너무 아픈 거죠. 더구나 제가 부모를 모시고 살다 돌아가시는 것도 봤는데 여기 와서 작년엔 정말 마음이 안 좋았는데 그건 말로 다 표현 못하죠.

이예진: 이렇게 명절만 되면 힘들다는 탈북자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선생님께서 만나본 탈북자들은 또 어떤 경우가 있었나요?

전진용: 대부분 명절이 되면 가족에 대해 많이들 그리워하는데요. 가족과 같이 탈북한 경우도 있지만 혼자 온 탈북자들도 많거든요. 그래서 가족에 대해 그리워하게 되죠. 또 북한과 남한에서 보내는 추석의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음식이나 명절을 지내는 방식 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 지냈던 명절을 그리워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탈북자들이 남한에 정착하면서 느끼는 서러움이나 외로움이 추석이라는 명절과 중첩돼서 몸까지 아픈 경우도 있습니다.

이예진: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탈북자들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전진용: 저도 힘들 때 어머니, 아버지, 고향이 생각나기 마련이거든요. TV에서 외국에 사는 동포들이 김치나 된장찌개를 그리워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고향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고 원동력이 되는 거죠. 따라서 고향을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에게 위안이 되기도 하고 그리움에 빠지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고향의 봄' 이라는 노래는 북한에서도 부르는 동요더라고요. 그렇게 남과 북 모두 고향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같기 때문에 그만큼 추석이라는 명절에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예진: 아까 사례에서 들으신 것처럼 혼자 집에서 나오지 않겠다는 분도 계시고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정신건강에는 더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전진용: 아무래도 외로움이 외로움을 부르기 마련이거든요. 혼자 있으면 교류를 안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외로움이 더 심해지죠. 그런 상황이 귀찮거나 막막할 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더 활동을 하는 것이 외로움을 줄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예진: 탈북자들이 주로 호소하는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가 이럴 때 더 심해지기도 하나요?

전진용: 네.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불안이나 우울을 경험한 사람들은 상처에 민감하기 마련입니다. 일반인과 감기에 걸린 사람이 똑같이 추위에 노출되었을 때 감기에 걸린 사람은 폐렴으로 가기 쉽죠.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울을 경험한 사람들이 상처에 민감해지는데요. 우울해지면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생각, 왜곡된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전화를 안 받으면 일반적으로는 바쁜가 보다 생각하지만 우울한 사람들은 나를 피하나, 싫어하나 이렇게 왜곡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확장되기 쉽거든요. 그래서 과장되게 해석하다 보면 우울이나 불안 증세도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이예진: 가족과 떨어진 채로 올해 추석을 맞이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과 탈북자 분들께서도 혹시나 깊은 그리움이 우울함으로 변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다음 이 시간에 좀 더 자세히 얘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찾아가는 심리상담. 오늘 도움 말씀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진용: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