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이 보내고 싶은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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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국에서 명절이 되면 탈북자들은 한숨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탈북자들의 추석 행사나 모임도 많아져서 오히려 바쁘게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들이 보내고 싶은 추석 명절에 대해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한국에선 9월 들어서면서 바로 추석에 고향 갈 기차표 사랴, 차례상 음식 준비하랴, 지인들 선물 준비하랴, 또 젊은이들은 연휴에 즐길 문화생활을 미리미리 찾아보느라 바빴는데요. 탈북자들도 마찬가지로 한국에서의 추석 준비로 바빴을 것 같아요.

마순희: 추석명절이 오면 한국에서는 고향에 가시느라고 무척 바쁘시죠. 정말 부산까지 평소에는 4-5시간 걸리던 거리를 7-10시간 이상 걸린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고향에 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고향에 갈 수 없는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부럽기만 한 풍경입니다. 그래도 저희들도 나름 바쁘답니다. 고향에는 못가지만 고향에 계신 조상님들을 그리며 제사도 지내고 마음속으로 인사도 보내고요. 고향에 갈 수 없는 저희들의 심정을 헤아리시고 하나센터나 복지관을 비롯해서 각 지역마다 단체마다 추석위로행사를 조직해 주신답니다.

며칠 전에 제가 살고 있는 양천구에서도 민주평통과 양천경찰서 공동주최로 추석맞이 합동차례행사를 조직했습니다. 마침 밤 근무라 저도 시간이 되어 오랜만에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던 아는 분들을 많이 만나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대형버스 2대를 나누어 타고 임진각에 한 걸음이라도 고향이 가까운 임진각에 갔었습니다. 풍성한 햇과일과 음식들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면서 제를 올렸습니다. 고향에 남은 식구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들이 너무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그렇게라도 인사를 드리고 나면 마음이 한 결 가벼워지기도 한답니다.

이예진: 선생님은 올해 추석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마순희: 저는 통일전망대 망배단에 가서 먼 고향을 그리면서 제를 올리고 또 딸들과 함께 임진각을 다시 찾기도 했습니다. 이번 추석에도 저희는 세 딸네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즐거운 명절을 보냈습니다. 손자 손녀들과 함께 송편도 빚고 윷놀이도 하고 카드도 치고 고스톱도 하고요. 참 식구가 많으니 어떤 놀이도 가능하답니다. 해마다 추석이 오면 북한에 두고 온 형제들 때문에 제가 많이 마음이 아플까봐 세 딸들과 사위들이 다 모여서 외로울 새가 없이 만든답니다. 거기에 다섯 손자 손녀들의 재롱까지 합쳐서 저희 집은 정말 명절 분위기가 풍기죠.

그리고 명절 때마다 하나원 동기나 가깝게 알고 지내는 분들 중에서 혼자서 명절을 보내시는 분들이 가끔 오군 하거든요. 이번 추석에도 하나원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남성분이 혼자서 명절을 보내기도 그렇고 인사하러 온다고 찾아 왔었습니다. 김포에서 살고 있는데 집에서 만든 송편이며 감자전, 갈비찜 등 갖가지 음식을 먹으니 고향에 온 기분이라면서 즐거워 하더군요.

이예진: 고향에서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같이 보낼 수 없다는 게 가장 마음 아픈 탈북자들이지만 해마다 명절이 되면 탈북자들끼리 모이는 일도 많더라고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저의 집에도 하나원 나온 첫 해에는 찾아 온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흐르다 보니 가족도 생기고 또 각자 회사나 거주지에서 맺은 인연들이 많아서 지금은 한 두 명 정도가 오고 있습니다. 또 저희들도 처음 나올 때에는 세 딸과 제가 단출하게 살아서 누가 찾아오기도 편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저의 식구만 열둘이라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면 찾아오기 힘들 거예요.

대체로 하나원 나온 지 오래지 않은 분들, 한 고향사람이던가 아니면 하나원 동기들이 서로 모여서 명절을 즐기고 있지요. 그리고 함께 차를 타고 놀려도 가고 휴가를 함께 보내기도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는 것 같습니다.

이예진: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이와 관련해 문의한 상담도 있었나요?

마순희: 네. 양천에 사시는 60대 후반의 한 어머니가 전화가 왔어요. 추석이 가까워 오는데 고향에 못 가니 마음이 쓸쓸하다, 혹시 추석행사가 있으면 알려 주기 바란다고요. 그래서 그 분에게 담당형사 선생님이 전화가 오지 않았는지 물어 보았더니 지방에 놀러가면서 손전화가 꺼져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양천에서 추석맞이 행사가 있다고 자세히 알려 드리고 담당형사님과 통화하도록 안내해 주었답니다. 그래서 그 분도 이번 행사에서 만나서 함께 제사도 지내고 사진도 찍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하나센터에서 조직한 추석맞이 행사에도 참가하실 수 있도록 전문상담사와 연결해 드렸습니다.

또 교회의 한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었는데요. 추석을 맞으면서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연결할 수 없는지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그 분이 사시는 지역을 물어 보고 그 지역에 있는 북한이탈주민전문상담사와 하나센터의 연락처를 알려 드리면서 거주지에서 그 분들을 위해 어떤 봉사를 할 것인지를 알아보도록 연결해 드렸습니다.

이예진: 그렇군요. 특히 혼자 쓸쓸하게 명절을 보내야 하는 탈북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한국에서도 국가 차원에서나 지역별로, 또 민간단체들이 탈북자들을 위해 준비한 행사들도 있죠?

마순희: 예. 정말 어느 지역에서 행사를 안 하는 곳이 없어요. 경기도 2청에서는 안성시에 위치한 하나원을 찾아서 추석을 맞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위문품을 전달하고 한국에서의 빠른 정착을 기원하였답니다.

그 외에도 제주도 하나센터를 비롯하여 강원도 춘천, 경기도 가평, 울산, 부산 등 전국 모든 곳에서 북한이탈주민들과 함께하는 추석 망향제 행사를 하였답니다. 서울에 있는 4개의 하나센터들에서도 북한이탈주민들과 함께 하는 추석행사와 노래자랑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었습니다. 충청북도 옥천경찰서에서는 북한이탈주민가족 11세대를 만찬에 초청하여 함께 식사도 나누고 기념품도 선물로 안겨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웃들의 따뜻한 손길과 온정어린 행사들이 있어서 고향에 가지 못 하는 우리 탈북자들의 서러운 마음을 따뜻이 다독여 주고 품어 주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열심히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이 된 것 같습니다.

이예진: 꼭 이맘때 탈북자들을 만나 대담을 하면 많은 분들이 고향 생각에 명절에도 마음 편하지 않다는 말씀들을 하시더라고요. 상담하신 분들 중에 특별한 추석 명절을 보내신 분도 계신가요?

마순희: 네 제가 알고 계시는 강서구에 살고 있는 60대의 함흥출신 언니가 있었어요. 작년에 아들이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고 다른 나라로 갔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추석에는 여기까지 와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또 떠나보냈다고 눈물로 하소연하더라고요. 그런데 몇 달 전에 외국에 갔던 아들이 돌아왔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세계 어디를 돌아보아도 대한민국이 제일이더라고 하더래요. 금년 추석에는 아들이랑 함께 명절을 보내서 세상 근심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기뻐하였습니다.

이예진: 아무래도 추석 전후에 걸려오는 상담전화 중에는 하소연이나 푸념도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마순희: 그렇지는 않습니다. 추석 명절에도 전화가 많지 않았고요. 전화하시면서도 꼭 추석인사를 잊지 않더라고요. 우리 탈북자들도 추석명절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보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풍요롭고 자유로운 나라이기는 하지만 고향을 떠난 우리 탈북자들이 이 땅에 정착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찾아 온 행복인데 그만한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 하겠습니까? 두고 온 고향사람들 앞에 식구들 앞에 성공한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이 우리 모두의 희망이라면 열심히 노력해서 꼭 멋진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추석은 남한에서나 북한에서나 기다려온 명절이죠. 하지만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이나 북한에 남은 가족들은 더 기다리는 명절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가족이 모여 함께 보내는 진짜 추석을 말이죠. 그런 명절이 빨리 오기를 저도 바라겠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