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날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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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어려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와 어려서 많이 혼나고 주변의 눈치를 보던 아이는 커서도 성격이나 대인관계, 사회생활에서 모두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탈북자들도 한국에서의 걸음마 시절 같은 적응 초창기가 무척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초창기 어려움을 딛고 안정을 찾은 탈북자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탈북자 분들을 보면요. 주변에 돕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도 스스로 너무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드는 자격지심이나 폐를 끼칠까봐 묻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는 분들도 많이 계시더라고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간혹 안 좋은 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보니 경계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이 너무 모르고 있다는 데 대한 자격지심에 어떻게든 폐를 끼치지 않고 저 혼자 해나가려고 시도하다가 더 많은 도움을 받아야 될 정도로 일을 크게 키우는 경우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잘 모르고 잘못된 길로 가다가 다시 되돌아 오다보면 정착하는 기간도 그만큼 길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것은 아닌데 그것이 실지 생활에서는 쉽지 않더라고요. 자신이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받을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끔 너무 도움만 바라고 의존하게 된다면 스스로 자립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움을 받는 거나 스스로 하는 거나 다 적당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도움만 바라다보면 주변에 의존만 하게 돼 스스로 자립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지만 너무 묻지 않고 혼자 해보려고 하다보면 짧게 갈 수 있는 길도 너무 멀리 에둘러가는 경우들도 많거든요. 반대로 스스로 해보려고 노력하면서 여러 번 넘어지고 실패하면서 그 실패를 통해 자신만의 성공의 길을 찾는 경우들도 있고 하다 보니 어떤 길을 가는지 하는 것 역시 자신의 선택일 것 같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고, 원하는 삶을 사는 탈북자들을 보면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믿고 도전하려는 의식이 강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예진: 맞아요. 그런 분들의 얘기 계속 나눠보죠. 저는 창업에 성공한 탈북자 분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 남한에서도 자기 사업을 해보는 창업은 아무나 못하잖아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크고 준비도 정말 많이 해야 하고, 또박또박 한 달에 한 번 회사에서 받는 임금이 아등바등 혼자 사업해서 어렵게 버는 돈보다 낫다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인데요. 자기만의 비결로 사업에 성공한 탈북자 분들이 많죠?

마순희: 그렇습니다. 그런 분들의 사례를 접할 때마다 제가 너무 감동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서산에서 가게를 하시는 한 60대 남성의 이야기를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그 분은 북한에서 잘 나가는 무역관계부문에서 근무하던 분이었습니다. 중국에 파견되어서 외화벌이 관련한 일을 하였다고 하는데요. 그러다가 일이 잘못되어 사기를 당했나 봐요. 나라에 피해를 주고 돌아간다면 무사치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냥 외국으로 망명했다가 한국에 왔답니다. 처음 한국에 올 때 나이는 50대 중반이었답니다.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고 생각하면서 회사에는 취직할 생각도 하지 않고 일용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왔답니다. 젊은 사람들도 힘들다는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고 일이 끝나면 매일이다시피 술을 마셨답니다.

그러다보니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고 어느 날 현장에서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 갔답니다. 병원에 누워있으니 아무 생각도 안 나더랍니다. 그냥 이렇게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에 아무 의욕도 없이 있었는데 그 때 힘을 주고 용기를 준 사람이 담당형사님과 그리고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 지인이었습니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더는 일어날 수 없다고 시한부 판정을 받았었던 그분이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지만 다시 일용직으로 일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알고 지내던 지인분이 자그마한 회사의 사장이 있었는데 그분이 자신의 회사 건물 한 편에 가게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내주어 건강을 돌보면서 쉬운 일부터 시작하도록 도움을 주었답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를 가지게 되었고 건설자재나 일용품들을 판매하는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자그마한 가게였지만 지인들의 도움과 또 무역관계부문에서 일했던 본인의 경험과 성실성으로 하여 거래처도, 단골손님도 늘어서 제법 영업이 잘 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찾아 갔을 때에는 서산지역의 전문상담사 선생님이 남북하나재단의 창업자들을 위한 지원 사업을 소개해주어서 가게 설비들을 새롭게 꾸렸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준 담당형사님과 지금은 형님동생으로 지내시는 그 지인 분, 그리고 남북하나재단의 전문상담사 선생님을 비롯한 주변의 모든 분들에게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예진: 이런 분은 주변의 응원과 지지가 없었으면 삶의 의욕을 잃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우선 시한부 인생을 사실 때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담당형사님과 지금도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가족처럼 지내신다는 지인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힘든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더 생계가 걱정이었던 때 선뜻 자신의 회사에 공간을 내어주고 가게를 차리도록 도와주신 그 고마움과 여러 가지 지원 정보들을 알려주며 늘 관심해 주는 지역의 상담사 선생님들의 도움 역시 그분의 정착에 없어서는 안 될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긴 하겠지만 현실이 너무 암담하면 절망에 빠져서 헤어나기 쉽지 않기에 주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이예진: 사실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고생했다며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분들도 많지만 아직도 당당하게 탈북자라고 말하기 어렵게 만드는 주변의 분위기라는 게 있을 때도 많잖아요.

마순희: 네. 북한이탈주민들이 낯선 남한 땅에서 정착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처럼 처음으로 북한사람들을 대하게 된 남한주민들의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한민족이라고 따뜻한 마음으로 반겨주시는 분들이 더 많을 테지만 가끔은 불편한 심정을 털어놓는 분들도 있거든요. 같은 대한민국 내에서도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와 살거나 서울에서 지방에 가서 살아도 여러 가지로 편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탈북자들 역시 처음에는 혹시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축되거나 눈치를 볼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 해결이 되는 문제라는 생각으로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적응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에 처음 왔으니 모르는 것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모르는 것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자주 물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상담실에서 근무하다보면 항상 한 번이라도 상담을 했던 분들이 전화를 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상담을 해서 문제가 쉽게 풀리게 되면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기거나 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또 상담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정착에서 제기되는 어려운 문제들을 지역의 상담사 선생님들이거나 정착도우미분들, 믿을 만한 선배님들에게서 상담과 조언을 들어가면서 적응해 나가는 것이 부적응사례를 줄이는 것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북한이탈주민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혹은 이상하게 보지 마시고 그냥 같은 평범한 이웃으로 대해주시고 너무 조급하게 잘 적응해 나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시고 지켜봐주셨으면 고맙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대한민국까지 올 때에는 잘 살아보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다만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에 시간이 좀 걸릴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예진: 기어가던 갓난아기가 서서 처음 걸을 때, 사실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죠. 걷는 건 스스로 해야 할 몫이니까요. 하지만 든든하게 지켜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기는 힘을 냅니다. 우리 탈북자들에게도 그런 주변의 사람들이 필요한 것 같네요.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