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안목이 생기기까지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돈을 절약하는 방법으로 요즘에는 소비도 잘해야 한다고들 말하는데요. 탈북자들은 남한에 처음 와서 물건 하나 사는 것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추석을 앞두고 탈북자들의 시장경제활동, 어떻게들 하고 있는지 마순희 선생에게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남한에선 추석만 되면 집집마다 잔치 음식을 준비하고 가족들과 풍성한 식사를 하잖아요. 선생님도 바쁘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어요.

마순희: 네. 벌써 추석이 성큼 다가왔네요. 일 년 중 가장 풍성하고 여유로운 한가위인 것 같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니 북한을 떠나서 열일곱 번째로 맞는 추석이네요. 처음에는 명절만 되면 고향생각으로 마음이 안 좋았었는데 지금은 고향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슬퍼만 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자식들도 모두 안정적으로 정착해 나가기에 마음에도 많이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다만 고향의 추석 풍경을 그려보면서 조상님들 산소에 주런히 늘어서서 인사를 올리실 형제분들과 친척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들 중에 저희 식구 말고 빈자리가 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고향에서 소식이 왔었고 추석 차례상만큼은 우리들 마음을 담아서 최상의 수준으로 차리고 인사를 드려달라고 돈도 보내고 해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째 소식이 없으니 아무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애써 위안해 보기는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치는 않습니다. 그래도 명절은 역시 명절인지라 세 딸들도 모두 명절 쇠려 집에 오기에 명절음식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희 집은 세 딸이 워낙 잘 해서 제가 바쁠 일은 별로 없습니다. 재미삼아 애들과 함께 장보러가는 즐거움이 크지요. 그전에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 놓고 애들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지금은 재료를 다 손질해 놓고 애들이랑 함께 만들기도 하니 새로 만든 음식을 먹어서 좋고 함께 전도 부치고 떡도 빚는 즐거움을 더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이예진: 이맘때가 되면 과일이며 고기 등의 가격도 오르고 해서 장마당과 대형 상점 중 어디가 싼지 비교 분석하는 뉴스들도 많은데요. 선생님도 추석 물가 체감하고 계신가요?

마순희: 약간 그런 감도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습니다. 추석이라고 특별하게 차려야 할 이유도 없고 딸들이 시댁에 갔다가 친정에 오면 그 때에 좋아하는 음식으로 만들어 먹으면 되거든요. 사실 북한에 있을 때에는 추석을 몇 달 앞두고 한 가지, 한 가지씩 준비하지 않으면 제사상을 차릴 수가 없거든요. 산소에 가보면 그 집의 경제적 형편이 제사상에 그대로 나타나게 되는 거거든요. 갖가지 음식과 과일, 수산물에 고급술까지 잘 차려서 제사를 지내는 집들이 있는가 하면 간단히 밥과 반찬 몇 가지, 술 한 병으로 조촐한 제사를 지내는 분들도 있었지요. 그런 분들은 누가 볼세라 일찍이 제사를 지내고 총총히 내려오는 경우도 있답니다.

저희 집은 워낙 형제들이 여럿이고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고모님, 부모님까지 산소를 한 곳에 모시다보니 제사상은 여러 집에서 모여 항상 풍성했었습니다. 제사를 끝내고 빙 둘러앉아서 음복을 할 때에 산소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리 일면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자리로 청해서 술 한 잔씩 대접해 보내던 후덕한 인심의 형제들이었습니다. 생산지가 서로 다르다보니 물가가 오르고 내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형편이라 추석 때가 되면 물가가 배로 껑충껑충 뛰기가 일쑤였는데 한국에서의 물가 파동에는 비길 바가 아니거든요. 한국에서는 조금 더 비싸도 특별히 많이 사는 게 아니니까 별로 신경을 안 씁니다.

이예진: 탈북자 분들, 웬만하면 셈이 굉장히 빠르더라고요. 명절 음식 장만은 어떻게 알뜰살뜰 준비하셨을 지도 궁금하네요.

마순희: 한국에 처음 왔을 때에는 이 많은 물건들이 어떻게 다 팔리지 하면서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쓸데없는 상인들 걱정도 많이 할 정도로 물건들이 많아서 놀라웠습니다. 없는 물건은 고사하고 어느 것을 사야할지 모를 정도였죠. 처음에는 물건을 골라도 보기 좋고 싼 것만 고르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 번 못 신고 못 입고 버려야 되는 적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많이 사면 싸게 주는 시장의 상인들의 구매전략에 걸려서 많이 사가지고 와서 나누어 먹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한 번은 어느 시장에서 물건을 싸게 판다고 하여 버스를 타고 가서 보았더니 조금 싸기는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무거운 짐을 들고 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힘만 들고 돌아와 보니 결국 가까운 곳에서 조금 비싸게 사기보다 못했던 적도 있고요. 지금은 웬만하면 대형상점에서 사고, 배달을 시키기도 하고 있는데요.

이예진: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요.

마순희: 네. 그전처럼 싼 것만 고르는 게 아니고 싱싱하고 맛있는 것으로 사오기도 합니다. 제가 먹을 것도 좋은 것으로 먹지 못하면서까지 아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 동네 아파트 입구에 수퍼마켓이 있는데, 작은 상점이죠. 처음에는 가격 같은 것은 보지도 않고 쉽게 구매를 했었지요. 그런데 얼마동안 살면서 이제는 가격표를 보게 되니 마트보다 항상 조금씩 더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웬만하면 걸어가서라도 마트에 가서 구입합니다. 저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들이 물건을 구매할 때 초기에는 싼 것만, 보기 좋은 것만 고르다가 몇 년 지나야 제대로 물건을 고르게 되더라고요. 특히 신발 같은 것은 예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발이 편한 것으로 고르는 안목이 생긴 거죠.

이예진: 그런 안목이 잡히면 물건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요즘은 소비자, 그러니까 물건을 사는 사람도 그렇게 현명해야 조금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고 하는데요. 반대로 물건을 파는 공급자로서의 탈북자 분들은 어떻게 운영하고 계신가도 궁금해요.

마순희: 우리 동네에 중국에서 북한명태를 가져다가 파는 집이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북한에서 마른명태를 즐겨먹던 습관이 있어서 거의 그 집 명태를 잘 사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명태 값이 조금씩,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있어서 한 마리에 3500원까지 올라갔습니다. 3달러가 조금 넘었던 거죠. 그전에는 2000원, 2달러에 사먹던 우리들이었기에 더는 그 집 명태를 사먹지 않게 되었지요. 말을 들어보니 중국에서 들여오는 값이 비싸져서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변에 농촌에 시댁이 있는 탈북여성이 있는데 농촌에 덕장을 만들고 명태를 가공해서 팔면서부터 그 집 물건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몇 번 중국에서 들여오다가 팔리지 않으니까 아예 그 장사를 접더라고요. 한 마리당 500원, 0.5달러씩만 덜 받아도 단골손님을 잃지는 않았을 텐데 장사가 잘 되니 초심을 잃게 되나 봐요.

이예진: 사람이 많이 찾으니 조금씩 올린 거군요.

마순희: 네. 지금은 많이 후회하더라고요. 이윤이 조금 적게 나더라도 장사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예진: 탈북자들이 많이 하는 장사 중에 음식 장사를 빼놓을 수 없죠. 다음 이 시간에는 사업하는 탈북자들의 시장경제활동에 대해 들어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