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탈북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아쉽게 기회를 놓친 일이 있을 겁니다.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기회, 하지만 그런 기회는 누가 챙겨주지 않죠.
탈북자에게 주어지는 지원이나 혜택의 기회는 늘고 있지만 여전히 몰라서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들이 아쉽게 놓치는 기회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지난 시간에 이어서 탈북자들이 몰라서 놓치는 좋은 기회들에 대해 얘기 나눠볼 텐데요. 상담 전화 중에 또 어떤 경우들이 있었나요?
마순희: 얼마 전에 재단에서 작년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금년에도 재직자 역량강화 교육 프로그램이 1박2일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거나 자영업을 하는 등 재직자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이라 서로 경험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행사였다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지방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이 부동산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지인이 자신이 신청하고 함께 가자고 알려주더랍니다.
미리 알려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신청하려고 하니 이미 인원이 초과되어 더 신청 받을 수 없다고 해서 너무 아쉽다고 하는 것입니다. 직업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하더군요. 사무실에서 항상 컴퓨터 앞에서 일하면서도 재단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가 보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앞으로는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예진: 인터넷이나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분들이 또 그래서 상담전화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마순희: 나이 드신 분들 경우에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된 공지사항을 숙지하고 무엇을 신청하거나 하는 일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재단에서 보내주는 “동포사랑”이라는 잡지에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의료비지원신청서나 출산장려금 신청서는 페이지를 떼어서 해당내용을 기입하고 접어서 보내도 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이예진: 그게 아예 신청서라는 거죠?
마순희: 네. 그리고 각 지역마다 담당한 하나센터 직원들이나 전문상담사들이 있어서 서류를 인출하여 내용을 적어서 접수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텔레비죤을 시청할 때에도 자막으로 남북하나재단의 종합상담센터 연락처를 내보내어 누구나 쉽게 상담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예진: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안내는 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고요. 혹시 선생님도 신청이나 신고를 하지 못해서 불편을 겪은 일이 있으셨나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한국에 온지 10년 넘어서 이제는 한국생활에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던 저에게도 이번에 그런 일이 생기더라고요. 저도 이번에 건강보험을 자식들 앞으로 수속하려다보니 그것을 알게 되어 다시 수속을 하는데 간단치가 않더라고요.
이예진: 국민건강보험을 말씀하시는 거죠? 국민이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병원에 가야할 때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험에 가입해 다달이 얼마간의 돈을 내고 몇 배의 병원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사회보험제도죠. 직업이 없거나 노인의 경우 직계 가족이 들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건데, 그동안 따님과 호적상 가족관계로 안 되어있었다는 건가요?
마순희: 네. 우리 탈북자들이 하나원을 퇴소하여 지역에 전입신고를 하면서 가족관계도 신청해야 한다고 하는데 저희들은 그런 것을 몰랐거든요. 그래서 딸들과 제가 가족으로 안 되어 있더라고요. 가끔 어르신들이 아들이 분명히 있는 줄 내가 아는데 독거세대라고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지고 오기에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지금은 정착도우미들이 수속을 하면서 도와주어서 가족관계 서류가 제대로 구비가 되는데 저희들이 하나원 나올 때에는 간혹 신청을 안 해서 저처럼 서류가 제대로 안 된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예진: 초반에는 직접 신청을 해야 했군요.
마순희: 네. 그런데 정작 수속을 하자니 쉽지가 않더군요. 하나원에서 신청서류를 전화인쇄(팩스)로 받아서 해당내용을 다 게재를 하여 다시 보내고 통일부에서 인증서류가 도착해서 또 그 서류와 필요한 여러 서류들을 모두 구비하여 다른 곳으로 되어있는 저의 전입신고지로 등기로 보내는 등 정말 복잡해서 어르신들이 혼자 하기에는 무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예진: 꽤 복잡하네요. 그러니까 주변에 도움의 손길은 있지만 여전히 잘 몰라서, 그리고 살면서 굳이 필요하지 않았던 부분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기회를 놓치는 경우들이 꽤 많다는 얘긴데요. 그 원인을 좀 알아보죠. 낯선 체제의 사회제도에 적응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일까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한국에 왔으니 한국체제의 사회제도에 적응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반드시 겪어야 할 사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같은 대한민국에서도 갑자기 거주지를 옮기거나 하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은데 하물며 그 많은 세월을 서로 갈라져서 다른 체제, 다른 문화에서 살던 저희들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항상 이야기하지만 누구한테 물어보려고 해도 말씨가 달라서 주저하고, 그것도 모르느냐고 할까봐 주저하고 하다보면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젊은 세대인 경우에는 적응에서도 빨라서 말투나 문화도 쉽게 적응이 되는데 나이가 많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제한이 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도 누구에게 물어보지 못하고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하다 보니 초기정착을 하면서 시행착오도 겪고 피해도 입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한 가지씩 체험을 하고 다음번엔 조심하면서 정말 몸으로 체험하면서 적응했다고 표현할 수가 있겠네요.
그래도 그 때의 그 경험들이 살아가면서 새로 나오는 후배들에게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조언도 해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초기정착도우미들도 있고 또 지역의 하나센터나 전문상담사분들이 있어서 많이 도움을 주기 때문에 저희들처럼 혼자서 애쓰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예진: 정착도우미라는 건 하나원에서 나오신 분들의 정착을 도와주시는 분들을 말하는 거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이예진: 총체적으로는 적응의 문제가 되겠습니다만, 북한에서는 스스로 선택하고 신청하는 절차가 없기 때문에 익숙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들도 있을 것 같아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사실 북한에서는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당의 지시에 따라서 이루어지다보니 개인이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하여 신청하거나 또 신청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조직의 지시에 따라서 해결되기 때문에 굳이 개인이 요구하거나 신청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선정이 되지 않아서 억울하더라도 또 제기를 해도 해결 방도는 없습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위에서 내려주는 것에만 의존하던 일방통행 같은 생활방식에서 살아오던 북한이탈주민들이기에 자본주의라는 이 기회의 땅에서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한민국은 아무리 조건이 구비되었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신청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잖아요?
우리는 다 똑같은 조건이었는데 왜 누구는 받았는데 나는 못 받는지, 불만을 품게 되는 이유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의료급여 같은 가장 초보적인 문제도 본인이 신청을 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서 해주지 않습니다. 더구나 수많은 민간단체에서 하는 지원 사업들은 정보를 알고 이용하는 사람들만 받을 수 있기에 어찌 보면 불평등하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당연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예진: 낯선 세계에 적응하는 일, 거창하게 생각하면 막막해집니다. 자신도 모르게 수동적이었던 습관부터 바꾼다면 실타래의 끝을 그만큼 빨리 찾을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