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5, 6일간의 추석 연휴가 모두 끝났지만 좀처럼 가라앉은 마음이 해소되지 않는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어제 이 시간에도 명절만 되면 고향생각, 가족생각이 커지는 탈북자들을 만나봤는데요.
오늘은 탈북자들의 가라앉은 마음을 풀어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봅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들의 명절증후군, 향수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심리상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전진용: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추석 연휴가 대부분 5일 가량 돼서 남한에선 고향을 찾거나 휴식을 취한 분들이 많으신데요. 선생님께선 잘 쉬셨나요?
전진용: 네. 연휴가 길어서 친척들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윷놀이도 하고 모처럼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예진: 네. 좋은 시간 보내셨네요. 한국에서 추석을 보낸 탈북자들은 어떻게 외롭지 않게 잘 보내셨는지도 궁금한데요. 특히 탈북해서 첫 번째 명절을 보낸 분들의 외로움이 더하더라고요. 고향에 계신 부모형제, 자녀들에 대한 마음이 어떤 지 사례를 통해 들어보시죠.
사례/제가 북한 땅을 떠난 지도 4, 5년이 되었는데 차디찬 북한 땅 속에서도 딸을 그리는 부모님께 죄송합니다. 추석 전만 되면 부모님이 꼭 꿈에 나타나세요. 부모님이 살아서 못 가본 고향에 제가 죽어서라도 같이 가보고 싶어요.
나이 쉰을 바라보는데도 엄마 생각이 나요. 지금 살아계시는지 돌아가셨는지 알 수가 없어요. 평천 다리 밑에서 마지막으로 옆에 있는 높은 간부들 눈치 보면서 속으로 울던 엄마의 얼굴이 10년이 지났는데도 잊히질 않습니다. 남한에 와서 열 번째 맞는 추석인데 추석에 어디 갈 생각을 애당초 안 합니다. 누가 오면 반갑긴 해요. 일하면서 그냥 시간을 보내는 편이죠.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던 엄마와 아픈 딸을 두고 왔습니다. 대문 밖으로 따라 나오던 딸 생각이 많이 나요. 그럼에도 대한민국에 와보니까 이런 딸을 낳아주신 엄마한테 감사하고 고마웠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이예진: 한국에선 명절증후군 하면 오랜만에 대가족이 모이는 명절 행사에 특히 가사노동이 심한 며느리들이나 고향 오가는 길 내내 운전한 아빠들, 연휴동안 밤늦게까지 술 마시거나 과식한 사람들이 겪는 후유증 같은 거잖아요. 그렇다면 탈북자들의 명절증후군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외로움이 깊어진다는 거겠죠?
전진용: 평소에는 못 느끼다가 이런 명절이 되면 고향 생각도 나고 대중매체나 주변 환경이 고향 생각을 자극하다보니 명절이 지나도 그런 것들이 한동안 남아있게 되는데요. 탈북자들의 명절증후군은 향수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예진: 선생님께서 만나보신 환자들 가운데에도 향수병을 호소하는 분들이 있었나요?
전진용: 네. 명절만 되면 밖에 나가기 싫다는 분들도 계셨고요. 향수병은 명절과 관계없이 남한에서 북한에 두고 온 아이와 닮은 아이를 보면 생기기도 하고요. 북한에서 먹던 음식이 생각나서 향수병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요. 명절과 관계없이 이렇게 북한에서의 경험이 떠오를 때 호소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이예진: 향수라는 게 고향과 가족을 떠난 사람들한테 꼭 따라다니는 마음의 질병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향수병의 증상부터 좀 설명해주세요.
전진용: 해외나 낯선 곳에서 잘 지내다가도 갑작스럽게 고향에서의 추억과 비슷한 경험, 음식, 냄새 등 묵혀뒀던 감정이 올라오는 경우를 향수병이라고 하는데요. 그렇게 시작해서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경우 심하면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예진: 특히 어떤 경우에 향수병이 심하게 될까요?
전진용: 사람이 바쁘고 집중하면 거기에 몰두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생활이 느슨하거나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 그리움이 심하면 향수병이 나타납니다. 학교나 사회생활에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인간관계가 버겁거나 차별 대우를 받을 때 증세가 심해질 수 있습니다.
이예진: 향수병도 극복이 가능할까요?
전진용: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최고의 극복 방법일 수도 있겠죠. 남한의 근로자들은 언제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탈북자들을 비롯해 외국인 근로자들은 그럴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죠. 이런 향수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쁘게 하는 게 좋습니다. 느슨해지면 생각이 많아지니까요. 현실 생활에 충실한 것이 향수병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고요.
더 나아가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고요. 좀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한데요. 탈북자들의 경우 어색해서 새로운 만남을 기피하기도 하고, 고향을 잊으려고 동향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고향에서의 아픈 기억이나 마음에 담아뒀던 응어리를 이야기하는 것들이 오히려 향수병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예진: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뭔가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향수병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군요. 추석명절을 맞아 향수병이 생겼거나 술 한 잔 더했던 분들께 한 말씀 해주세요.
전진용: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찾고 적응해나가는 게 필요한데요. 누군가 나를 치유해주거나 나를 도와주기를 바라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힘든 점들을 벗어나는 방법이 뭔지 생각해보고 적극적으로 이겨나가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예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의 답을 자신이 갖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향수병도 자신을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네요.
찾아가는 심리상담. 오늘 도움 말씀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진용: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