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던 적 있으신가요?
한국에서는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수 있는 상담전화들이 열려있는데요.
특히 한밤중 걸려온 전화는 대부분 단순한 문의 전화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한밤중에 전화로 상담을 요청하는 탈북자들에게는 어떤 사연들이 있을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네. 남한에선 ‘가을을 탄다’고 해서 가을이 되면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한숨난다는 분들이 계신데요.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생기는 계절성 우울증도 가을에 더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탈북자들도 이제는 몸보다는 마음을 좀 챙겨야 할 일이 많지 않을까 싶은데요. 요즘 어떤 전화들이 많이 걸려오나요?
마순희: 우리 탈북자들도 가을이 되면 긴긴 가을밤을 고향 생각하면서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심야시간대에 근무를 서다 보면 전화 건수는 많지 않지만 나름대로 누군가 전화를 받아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중요한 전화들도 많습니다. 물론 낮에 미처 알아보지 못한 문제들이 갑자기 생각나서 전화한다는 분도 있지만 밤에 일하다가 쉬는 시간에 전화를 거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가끔은 술이라도 한 잔 하면 어김없이 우리 콜센터로 전화하는, 말 그대로 단골손님의 전화도 빠지지 않습니다.
이예진: 그러니까 밤에도 상담전화는 계속 받으신다는 얘기네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저희 종합상담센터는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언제든지 전화하면 받아 주시니까요. 혹 어떤 분은 새벽 2시에 전화를 했는데요. ‘아, 죄송합니다.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다가 정말 이 새벽에도 진짜 전화를 받을까 하고 전화해 보았는데요. 정말 전화를 받으시네요. 죄송합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런 경우도 있답니다.
또 얼마 전에는 한 여성이 새벽 3시에 전화를 했습니다. 편의점에서 부업으로 일하는데 새벽시간에는 손님도 없고 하여 속상한 일이 있어서 전화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중국에 두고 온 딸이 열세 살이 되었는데 한국에 데려오고 싶어도 오지 않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에 있는 고모네 집에서 살고 있는데 어렸을 때에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오겠다고 생떼를 부렸는데 조건이 안 되어서 데리고 오지 못 했다, 지금은 몇 년 동안 돈도 벌고 함께 살고 싶어서 데려오려고 하였더니 지금은 또 안 오겠다고 해서 속상하다고 했습니다. 알아보았더니 중국인 남편도 한국에 나와서 돈을 벌고 있는데 경쟁이 심한 한국에 데려다가 애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게 더 나쁘다고 애를 데려오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상하다는 그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제가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잖아요. 지금 현재 딸이 그곳에서 잘 살고 있다면 일단은 마음을 놓아도 되는 일이니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다, 한국의 부모들이 많은 돈을 들여서 부러 중국에 유학을 보내기도 하는데 중국어 공부를 잘 한다니 그것이 장차 그 아이의 장점이 될 것이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딸이든 아니면 본인이든 여권을 수속하여 왕래할 수도 있는데 굳이 싫다는 애를 억지로 데려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는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면서 앞으로 자주 전화할 수 있게 핸드폰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예진: 알려주셨나요?
마순희: 그럼요. 당연히 알려드렸죠.
이예진: 그렇군요. 아무래도 심야에 오는 전화는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 같네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밤중에 심정을 토로하는 전화들은 거의가 해결을 바라는 전화는 아니거든요. 그냥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그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가벼워진다고 합니다. 20대의 한 대학생은 학점이 안 되고 출석률도 낮아서 학사경고를 두 번이나 받아서 등록금지원이 안 되었다고 합니다. 한참을 속상하다고 이야기를 하기에 지금의 대학등록금지원제도는 학사경고를 받으면 등록금지원이 안 되는 줄 몰랐는가 하고 물어 보았더니 다 안다고 했습니다. 너무 속상하니까 그냥 이렇게 전화로라도 속을 터놓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기보다 더 속상해 하시니까 말할 수도 없고 친구들에게는 자존심이 상해서 말 못하고 그래서 이렇게 전화로라도 속상한 이야기를 한다고 했습니다.
참, 그리고 남북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속상해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사실 북한에서는 생활총화가 있다 보니 직장생활하면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항상 조직에 보고하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밤중에 전화 받은 지방의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신다는 50대 한 여성의 전화는 참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요양시설에 입사한지 1년이 다 되어오고 열심히 일하시는 여성분이었습니다.
이예진: 그런데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요?
마순희: 어느 날 시설에서 어르신이 낙상하는 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성분은 잘 못 하다가는 관리하는 자기에게 책임이 돌아올 것 같아서 사실대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시설에서는 난리가 난거죠. 그 후부터는 상사로부터 동료에 이르기까지 자기에게 속을 안주고 은근히 기피하는 눈치라고 합니다. 사실 내부 고발자가 양심적이기는 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냥 일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 분은 다만 북한의 생활총화처럼 여기고 사실대로 말한다는 의미였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그 분은 내가 여기서 계속 일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너무 속상하니까 새벽 3시에 전화를 주셨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다 들어 주고 본인이 바라는 대로 지역의 담당 상담사와 연결하여 상담도 받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연결해 드렸습니다. 얼마 전에 어떻게 되었는지 해서 전화를 드려 보았더니 회사에서 회식을 한다면서 즐거운 분위기여서 한결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예진: 속상해서 한 전화 한 통화로 일상이 달라지는 일들도 생기네요. 그렇게 어딘가에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힘을 다시 낼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심야전화라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요. 밤에 쓴 편지를 다음날 아침에 부치려고 하면 너무 감성적으로 쓴 거 같아 다시 쓰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잖아요. 밤에는 아무래도 감수성이 더 예민해진다고 하는데 그런 자신의 감정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나요?
마순희: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저희 상담센터에 단골로 심야에 전화가 오는 남성분이 계신데요. 목포에 사신다는 그 분은 처음에 콜센터가 생겼을 때 전화가 왔는데 술을 마시면 긴 시간 전화기를 놓을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전화비도 만만치 않을 터인데 특별한 용무가 없으면 술이 깬 다음에 전화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권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선생님, 낮에 일하다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술 한 잔 했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면 누구를 붙잡고 시비를 걸 것 같아서 선생님께 투정부리는 겁니다. 밖에서 시비를 걸다가 경찰서 가면 큰 문제잖아요. 차라리 전화 붙들고 선생님한테 투정 부리는 것이 낫지 않나요? 아무래도 벌금보다는 전화비가 쌀 것 같아서요’ 하시는 겁니다.
정말 그럴 때에는 어떤 도움이나 해결을 바라고 하는 전화가 아니라 그냥 공감하면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분도 그렇게 밤중에 전화로 투정을 부리고는 낮에는 자기가 큰 실수를 했다고 죄송했다고 전화하기도 한답니다.
이예진: 얼굴을 모르는 사람에게 오히려 솔직하게 다 털어놓게 되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술 먹고 너무 자주 전화하시면 곤란할 것 같은데요. 사실 이렇게 평소에는 참고 못하던 이야기도 술 한 잔 하고 집에 온 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더 많아지긴 하죠. 다음 이 시간에는 밤에만 걸 수밖에 없는 상담전화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