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모녀 미용실의 중형 냉장고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탈북자들에게 ‘성공적인 정착’은 가장 기본적이면서 평생의 숙제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한에 정착한 3만여 명의 탈북자에게 성공의 기준은 모두 다르죠.

때로 그 기준을 자신의 능력보다 너무 높게, 혹은 기준 자체를 잡지 못하는 탈북자들도 있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소박하지만 자신만의 기준으로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탈북자의 이야기,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거창하게 ‘성공’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탈북부터 남한에 정착해 안정된 삶을 살고 계신 탈북자들의 얘기는 하나하나 책으로 읽는 것처럼 사연도 많고 슬픔도, 감동도 많이 느끼게 하는데요. 모녀가 함께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분이 있다면서요?

마순희: 네, 북한이탈주민들의 성공적인 정착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직접 만나 본 성공적인 정착의 사례자들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금년 여름에 대구에서 만났던 미용실 사장님의 이야기도 또 다른 감흥을 주더라고요. 대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40대 중반의 김영희 사장님의 이야기입니다. 김영희 사장님은 북한에서 속도전 돌격대에 나갔다가 평양에서 미용기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 미용 기술 덕에 고난의 행군으로 그 어렵던 시절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미용사라고 하면 미용실에서 파마를 해주는 것 외에 농촌 같은 곳으로 이동 미용을 나가거든요. 그러면 현금대신 낟알이나 물건을 대신 받아 오는 경우가 많아서 식량이 어려울 때에는 미용사 직업이 인기가 대단한 거죠.

그 분은 딸을 데리고 한국에 왔었는데 한국에서도 미용사가 되고 싶었답니다. 남과 북이 문화적 차이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미용하는데서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평양에서 미용을 정식으로 배웠던 터라 한국에서도 좀 더 배워서 미용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요. 가장 어려운 것이 외래어였답니다. 미용하는데 필요한 기구나 기재들, 용품들이 모두 영어로 되어 있었기에 오직 달달 외우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답니다.

이예진: 실력이 있어도 한국에서 미용 자격증을 따기에는 용어가 다 외국어라 정말 공부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마순희: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외래어가 많아서 전문용어들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하였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는 생각도 했었답니다. 외래어 때문에 포기하려고 생각할 때마다 팩스로 해당 용어들을 보내 주면서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도움을 준 직업전문학교 선생님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자신도 없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끈질긴 집념으로 무려 일곱 번의 불합격 과정을 지나 미용사 자격증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예진: 그야말로 7전8기였네요. 미용실을 내는 데 혼자 힘으로 힘들지는 않았을까요?

마순희: 미용실을 내겠다고 하니 북한에서 왔다고 대놓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미용실에서 실습을 하는데 한 번은 어느 사장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김 선생님, 한국에서 미용실을 차리지 말고 통일되면 북한에 가서 가게를 차리라 한국에서는 비교도 안 된다’라고 하더래요. 그 말을 듣고 영희 씨는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 사장의 마누라가 나보다 더 나은 것이 뭐라고 나를 무시하는가’ 하는 생각에 더 분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탈북자가 뭘 얼마나 하겠는가 하는 식의 편견을 깨고 싶다는 생각에 지금의 미용실도 더 보란 듯이 꾸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미용실에 찾아 갔을 때 무더운 여름 날씨였는데 미용실에 들어가니 더위가 싹 가실 정도로 상쾌하고 시원했습니다. 미용실에서 영희 씨 혼자가 아니라 미용정보고등학교에 다니는 영희 씨의 딸도 학교공부가 끝나면 실습 겸 함께 일하고 있었습니다. 영희 씨는 미용을 배우면서부터 시작한 봉사활동에 지금은 딸과 함께 참여하고 있어서 더 없이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노력으로 예뻐진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누구에겐가 필요한 존재고, 누구에겐가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 위안이 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딸이 학교를 졸업하면 모녀가 함께 단순한 미용만이 아닌 손톱손질과 미용을 말하는 네일아트나 속눈썹 연장 등 여러 가지 서비스들을 종합적으로 해주는 미용실로 꾸리는 것이 영희 씨의 꿈이라고 합니다.

깊은 밤 힘든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텅 빈 버스 정류소에서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펑펑 울기도 했다는 그 영희 씨가 지금은 얼굴에 그늘 한 점 없이 밝은 웃음으로 손님을 맞고 있었습니다. 통일이 되면 딸과 함께 북한의 고향에 멋진 미용실을 꾸리겠다는 희망을 안고 김영희 씨는 오늘도 딸과 함께 바쁘지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예진: 선생님이 가셨을 때 사람들이 많아서 기다릴 정도라고 하셨는데 그 미용실의 성공 비결은 뭐라고 보시나요?

마순희: 워낙 영희 씨가 솜씨가 좋다고 소문이 났답니다. 미용학원을 졸업하고 자격증을 받은 후에도 몇 년간 미용실들에서 일한 경력이 있으니 솜씨가 좋기도 하겠지요. 거기다가 다른 미용실에서 볼 수 없는 걸 보았는데요. 미용실에 들어가니 중형 냉장고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아세요? 미용에 필요한 재료가 아니라 모두 각가지 음료들과 커피들이었어요. 대기하고 있는 손님들에게 각자의 요구에, 입맛에 맞게 시원한 커피나 음료 하나라도 대접하고 싶은 영희 씨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거기에도 깃들어 있었습니다. 설비하나하나에도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영희 씨의 세심한 배려와 친절한 서비스가 단골손님들을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예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몇 분의 탈북자 얘기만 들어봤지만 우여곡절 없는 분이 없는 것 같아요. 모든 인생이 다 그렇게 드라마 같다고도 하지만 탈북자 분들이 남한에서 성공하기에는 곱절의 어려움이 따르잖아요. 자신이 선택한 길을 행복하게 가고 있는 분들의 공통된 성공비결,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마순희: 글쎄요. 성공의 비결을 어떻게 한두 가지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의 성공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한두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그들 나름대로의 특징들이 다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굳이 이야기하라고 하면 몇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공은 정말 말처럼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첫째로 꼽고 싶습니다. 모든 성공적인 정착 사례자들이 공통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는 사전 준비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공부일수도 있고, 기술일 수도 있고, 경험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요.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도 있잖아요? 다음으로는 정확한 목표와 그것을 향한 끈질긴 집념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의 적성에 맞고 자신의 능력, 물론 키워야겠죠. 그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하고 일단 계획을 세웠으면 무조건 실천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을 하던 어려움이 없을 수 없지만 전문상담사분들을 비롯하여 주변에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을 도와주고 계시는 많은 분들이 계시니까 그 분들의 도움도 받으면서 어려움들을 이겨 나간다면 반드시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어떤 일을 하던지 자신이 행복한 마음으로 할 수 있어야 그 일을 오랫동안 그리고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면 언젠가는 그 일이 자신의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생각할 때가 오더라고요. 그런데 인생을 살다 보면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다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일하면서도 관심하는 분야를 짬짬이 배우면서 하나하나 준비해 나간다면 훗날에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예진: 남이 성공한 이야기, ‘듣기에는 쉬워 보이는데 나는 왜 안 될까’, 이런 생각해본 적이 있으시다면 성공으로 가는 기회를 잡기 위해 나는 얼마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부터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