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밤에는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하죠. 위급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 한 통은 많은 걸 바꿀 수 있는데요. 탈북자들도 한밤, 누군가에게 거는 전화 한 통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는다고 합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낮에는 할 수 없던 이야기, 밤에만 꺼내놓는 탈북자들의 속내를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오늘은 밤에 상담전화를 하는 탈북자들의 속내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볼 텐데요. 한 밤중에 전화하는 탈북자들은 아무래도 낮에 하기 어려운 얘기들을 하는 경우들이 많을 것 같아요.
마순희: 네. 게다가 밤에 외로워서 술 한 잔하고 전화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남성들인 것 같습니다. 그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여성들과는 달리 북한 남성들은 북한식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더욱이 혼자 나오신 분들 경우에는 적응하기가 더 힘든 면도 있겠지요. 집에서 세대주라고 남편을 떠받들고 직장에서도 남성과 여성은 말로는 평등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평등한 것은 아니었거든요. 회사생활하면서도 처음에는 자존심은 강하지만 능력이 따라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굴욕감을 느낄 때도 많지요. 그렇다고 남자의 자존심에 눈물은커녕 힘든 내색도 못하다보니 밤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면 어디든지 화풀이를 하고 싶을 때도 많을 것 아닙니까?
그러다보니 화풀이의 대상도 각각이랍니다. 데려오고 싶어도 오지 않겠다는 가족에 대한 원망, 한 동네 이웃주민이 마음에 안 든다든지, 회사의 상사가 어떻게 자기를 무시한다든지, 자격증시험이 너무 어렵다든지, 심지어 지원재단에서 해주는 게 뭐가 있느냐 등등 분야도 가지가지고 강도도 가지가지랍니다. 너무 심하게 욕을 하거나 할 때에는 이 전화가 다 녹음되고 있고 언어폭력도 폭력에 해당한다는 것 등을 상기시켜서 제지하기도 합니다.
이예진: 밤에 울리는 전화는 선생님께도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전화 받고 곤란한 경우도 있으셨나요?
마순희: 네. 한 번은 새벽에 전화를 받았는데 ‘인천 남동경찰서입니다’ 하기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무슨 일이시냐고 했더니 여기에 탈북여성이 애 둘을 데리고 와 있는데 전화를 받아 보라고 하시면서 전화를 바꾸어 주더라고요. 사연인즉 중국교포인 남편이 가정폭력이 심한데 간밤에는 술을 마시고 흉기를 들고 위협하기에 겁이 나서 두 아이를 데리고 도망쳐 나왔다고 합니다. 작은 아들이 4살인데 그 사람이 애 아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도움을 드렸으면 좋겠는지, 저희는 콜센터로 전화는 받을 수는 있지만 밤에 쉼터로 안내할 수는 없으니 가정폭력 위급전화인 1366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떻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성은 내일 아침까지 여기 경찰서에서 기다리더라도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쉼터를 안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예진: 쉼터는 약자를 보호해주는 임시시설을 말하죠.
마순희: 네. 그래서 쉼터라는 특성상 우리 상담사들도 위치는 알 수 없다는 내용을 알려주고 별수 없이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쉼터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그 곳으로 연결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예진: 지방 곳곳의 일까지도 도움을 주셔야 하네요. 지방뿐 아니라 해외에서 전화가 오는 경우도 있다면서요?
마순희: 네. 저도 심야근무에 외국에서 오는 전화를 받은 적이 여러 번 있는데요. 한 번은 캐나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걸다가 죄송하다고 여기가 낮이니까 거기는 밤중이라는 것을 깜박 잊었노라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캐나다에 가면 이렇게 저렇게 좋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왔는데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한국으로 도로 가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캐나다에 오면서 한국정부가 제공한 주택을 모두 반납하고 왔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애까지 데리고 집이 없이 당장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돌아오시면 시설이 잘 되어 있잖아요. 교회나 복지관의 도움도 받을 수 있고 또 쉼터도 있고 하니 도착하시면 전화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쉼터에서 오래 지낼 수는 없잖아요. 주택을 다시 받을 수 있으니까 도착하면 절차를 안내해드리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또 한 번은 밤중에 태국 영사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전화가 온 적도 있었습니다. 브로커가 태국까지 안내하고 우리끼리 찾아가라고 했는데 태국경찰도 모른 체를 하니 어쩔 수 없이 재단으로 전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브로커 일을 하시는 분과 통화하여 연락처를 알려 드린 적도 있습니다.
이예진: 해외에서 위급한 상황의 전화들도 오는군요.
마순희: 네. 또 얼마 전에는 중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기는 중국에서 9년을 살아 온 탈북자인데 자기도 한국으로 가고 싶어서 전화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재단 전화번호를 알았는가 하고 물어 보았더니 인터넷으로 어렵게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는 방법을 설명해 드렸더니 자기도 알고는 있는데 아는 브로커가 없어서 소개해 주었으면 해서 전화했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런 걸 알려드리면 안 되잖아요. 그래도 그런 통로로 올 수밖에 없고, 저도 탈북자 선배다보니까 안타까워서 5분 후에 다시 전화하라고 하고 브로커 일을 하는 분과 통화해서 자기 연락처를 알려주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나서 연락처를 알려드렸습니다. 1주일 지난 후에 그 브로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때 그 아주머니가 태국에 들어갔다고 하기에 저도 한시름 놓은 일도 있었습니다.
이예진: 심야에 걸려오는 탈북자들의 전화, 마음 속 얘기부터 위급한 상황까지 아무래도 낮 시간대보다 더 신경 쓰이실 것 같아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낮 시간에는 시간도 그렇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용기를 내서 전화한 경우가 많다보니 더 신중하게 받게 되고 또 해결을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하거든요. 해결을 바라기보다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경우가 더 많기에 더 많이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힘을 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예진: 낮에는 할 수 없던 이야기를 털어놓는 탈북자들, 심야에 걸려오는 전화가 많지는 않다고 하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앞으로는 탈북자들이 하는 고민들이 많이 줄어서 심야에 걸려오는 탈북자들의 전화도 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