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탈북자들이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탈북자 단체에서 싸움이 나면 ‘내가 단체 하나 만들고 말지’라고 말이죠.
여기는 서울입니다.
정치적인 목적부터 정보교류,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까지 단체는 많지만 활동할 단체가 별로 없다고 말하는 탈북자들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요즘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하시는 탈북자 분들을 보면 단체 2, 3개 정도에서 바쁘게 일을 하시더라고요.
마순희: 우리 탈북자들에게 아마도 조직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생활양식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사실 북한에서는 모두가 태어나서부터 조직에 망라되어 생활하다보니 조직생활에 진저리가 났다고는 하면서도 은연중에 어떤 조직에 배속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을 것 같은데요.
가령 어느 날 지인들이 모두 다 어떤 단체의 행사에 가는데 본인한테는 연락이 안 왔다고 하면 엄청 섭섭하게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저도 민간단체에서 사업하다보면 어떤 사람들은 연락을 하면 구실만 붙이면서 잘 참가하지 않다가도 정작 본인에게 미처 연락을 안 하기라도 하면 그 때에는 또 왜 연락을 안했느냐고 섭섭해 하더라고요.
물론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행사에 잘 참가하게 되지도 않지만 시간이 많은 어르신들 경우에는 여러 단체들에서 하는 행사에 거의 다 참가한다고 합니다. 혼자서 집에서 무료히 지내시기보다는 모임에 나가면 좋은 정보도 들을 수 있고 친구들도 만나고 행사 때마다 챙겨주는 기념품도 역시 무시를 못하나 봅니다. 그러기에 회사에 다니지 않는 어르신들도 매일 일정들이 꽉 잡혀 있기가 일쑤고 집에 가보면 모임들에서 받아온 사은품들이 가득가득히 쌓여있기도 합니다.
이예진: 행사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그런 것도 쏠쏠한 재미가 될 것 같긴 한데요. 탈북단체를 이끌어가는 분들은 또 여러 개 단체의 리더, 그러니까 지도자를 맡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마순희: 저에게도 어떤 탈북자단체에서 자문위원으로 임명하는가 하면 또 다른 단체는 여성회장, 그리고 또 다른 단체에서는 양천구의 지부장으로 선출되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기도 합니다. 간혹 단체에 참가하던 사람들 중에는 아예 그 단체와 비슷하거나 혹은 다른 단체를 본인이 만들고 스스로 대표가 되고 회장이 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회사를 내오거나 단체를 조직하거나 마찬가지로 책임이 따르는 법인데 항상 보면 회장이나 사장, 책임자 소리는 들으면서도 그에 상응한 구실을 못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처음 조직할 때의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할 텐데 쉽지가 않나 봐요. 리더, 그러니까 지도자는 지도자답게 처신해야 하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개인의 이익만 쫓다보면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신임을 잃게 되고 기업도 단체도 본래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그래서 탈북자단체끼리 융합이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잖아요.
마순희: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나름대로 대의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자그마한 의견충돌이나 대립을 이기지 못하여 서로 반목질시하는 현상들이 없지 않아 있다 보니 어떨 때에는 단체에 참가하는 아랫사람으로서 참 입장이 따분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예진: 아예 그런 저런 일들이 ‘시끄럽다’며 단체 활동을 안 하시는 분들도 많죠?
마순희: 네 단체 활동뿐 아니라 탈북자들끼리 서로 왕래를 안 하고 사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탈북자라는 것을 주위에서 누구도 모를 정도로 한국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 때 단체들에 열심히 다니던 사람들 중에서도 회의감을 느끼고 실망을 하게 되면 아예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다면서 참가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내 생활이나 잘 하면 되지 굳이 싫은 소리해 가면서 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고도 하더라고요.
이예진: 탈북자간의 왕래가 너무 없어도 살면서 허전하거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마순희: 그런 사례들도 많습니다. 지방에 살고 있다는 한 탈북여성은 하나원 나와서 몇 달 되지 않을 때에 가정을 이루었는데 자녀가 둘이랍니다. 주위에서는 자기가 탈북자인줄을 전혀 모르고 있고 자신도 탈북자들과 연락하고 지내지 않은지 오래되어 남북하나재단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TV를 보다가 남북하나재단을 알게 되어 인터넷에 들어가서 검색해 보았더니 많은 지원 사업들이 있어서 놀랐다는 겁니다.
또 강서구에 사시는 70이 넘으신 어르신이 전화가 왔었습니다. 이번에 어울림 마당 행사에 가는지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간다고 했더니 그 동안 탈북자들 행사에 잘 참가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가보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날 잘 정착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인터뷰하는 일을 도와드리다 보니 그분들이 어떻게 즐기는지 미처 관심하지 못했다가 이튿날 전화를 드렸었습니다.
그날 행사가 어떠했었는지 즐겁게 보내셨는지 물어 보았더니 반응이 심드렁하였습니다. 이유를 듣고 보니 평소에 탈북자들과 잘 거래하지 않았던 탓으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해서 공연을 보고 경품행사를 참가하고 돌아 왔다고 합니다. 평소에 무엇을 하면서 지내시는지 물어 보았더니 그냥 산책하고 TV를 보는 것이 전부라고 하였습니다. 노인정에는 안 나가는지 물어보았더니 몇 번 가다가 자신에게는 맞지 않아서 다시는 안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지역의 하나센터에서 하는 행사에도 나가시면서 탈북자 어르신들을 만나서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안내해드리고 또 한 단체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노래교실도 운영하고 있다고 안내해 드리기는 했지만 자신의 생활습관을 고치기는 힘들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예진: 거창한 목적이 아니어도 서로 도움이 되거나 주변에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하는 탈북단체들도 있더라고요.
마순희: 네. 탈북자 단체들 중에는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활동하는 단체들도 있지만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서로 돕고 봉사하는 단체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분들도 탈북노인동호회를 조직해서 여러 가지 활동도 하고 또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의미 있게 조직을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부산시 북구에 사시는 북한이탈주민들도 “백두한라봉사단”을 꾸려서 몇 년째 말없이 노인복지시설과 지역 아동센터에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도움만 받으면서 사는 줄 알았던 북한이탈주민들의 선행이 소개되면서 부산에서는 엄청나게 탈북자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사례가 되었다고 합니다. 경북 구미에서도 북한이탈주민들끼리 봉사회를 무어서 북한이탈주민 뿐 아니라 지역의 어르신들과 아동복지시설들에서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모범적인 사례들이 많습니다.
이예진: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봉사활동이 활발하네요.
마순희: 네. 이렇게 북한이탈주민들도 나라에서 혜택과 도움을 받기만하는 사람들이 아닌 남을 도와주고 지역사회의 통합에 기여하는 착한 정착사례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의 힘보다 같은 뜻을 가진 여러 사람이 뜻을 모으고 힘을 모아서 함께 활동해 나가다보면 목적을 이루는 데에서도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고 지역사회와도 잘 어울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예진: 탈북자 간에 너무 단절되어 지내거나 혹은 너무 많은 활동으로 동료 간에 부딪치며 지내거나, 이렇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보다는 적당한 교류와 적당한 활동이 아무래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아무래도 단체장들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지만 활동에 참가하는 분들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어르신들이 많이 참가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서로의 활동이나 사생활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게 되고 매일이다시피 부딪치게 되는데 그것이 서로를 가깝게 만들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드문 경우긴 하지만 모임에 함께 참가하기라도 하면 서로 큰 소리로 다투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서로 소 닭 보듯 눈길도 마주치지 않는 그런 사이로 지내는 분들도 계십니다. 서로 조금만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행복하게 노년을 보내시면 좋을 텐데 자존심이나 고집 같은 것이 심하여 민망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은 모습은 정말 보기가 안타까웠습니다. 탈북자 사회와 혹은 탈북자들과 너무 소통하지 않아서 응당 받아야 할 혜택들도 못 받는 현상들도 없어야 하겠지만 지나치게 서로 부딪치면서 갈등을 초래하는 현상들도 역시 다 같이 경계해 나가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어떤 단체에서든 자신의 뜻대로만 할 수는 없죠. 교류 없이 혼자서만 살 수도 없고요. 그래서 탈북자와 탈북자 사이의 간격을 알아가는 일 역시 남한 정착 과정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