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국에 정착한 2만6천여 명의 탈북자들.
최근 한국 땅을 밟는 사람들의 탈북 이유는 과거와는 조금 다르고, 훨씬 더 명확하다고 합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하나원을 갓 나온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네. 오늘은 북한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하는데요. 최근에는 북한에서 제3국을 거치기보다 직송이라고 하죠. 한국으로 바로 오는 경우들이 많잖아요?
마순희: 최근에는 북한의 내부단속과 국경단속 등 단속이 심하여 탈북자 수가 꽤 줄어들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도 꾸준히 한국에 오는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하나원 교육을 수료한 후 지역사회에 나오면 하나센터라는 기관에서 한 달 정도 지역적응교육을 받게 되는데요. 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서울에 있는 동부하나센터에서 새로 나오는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한 교육 중에 성공사례특강 즉 선배특강이라는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첫 발을 내디디는 탈북자들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되더라고요.
이예진: 처음 한국에 와서 선배에게 궁금한 것도 꽤 많았겠네요.
마순희: 네. 그래서 저는 사람마다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사회에 잘 정착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저의 정착경험을 통하여 참고해 나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제는 북한을 떠난 지 15년이 넘다보니 그분들과 만나서 그 동안의 북한의 소식들에 대해서도 접하게 되어 참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하나센터 교육생들을 보면 중국에서 살다가 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직송으로 나오시는 분들이 많고, 또 혼자서 나오는 분들도 있지만 그 전에 비해 가족단위로 나오신 분들이 참 많더라고요. 먼저 한국에 나와서 정착하고 있는 탈북자들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는 경우들인 거죠. 제가 금년 초에 방송에서 80세 되시는 어르신이 돌아가신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그 분의 따님과 사위 분이 최근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한 동네라 며칠 전에 찾아가서 인사도 하고 그 동안 북한의 소식도 들었는데요. 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가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또 열흘 전 강의에 나갔을 때에는 한 가족이 무려 8명이 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예진: 그분들은 한꺼번에 같이 나오신 거였나요? 아니면 따로 따로 모인 건가요?
마순희: 그 가족은 먼저 나온 아드님을 따라서 온 가족이 무사히 한국에 오게 된 거더라고요. 부모님과 두 딸들의 가족들이었는데요. 다 같이 있을 수 있어 너무 행복해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어머님은 통성을 해보니 저보다 나이가 두 살 어린데도 제가 자칫하면 언니로 오인할 뻔 했을 정도로 그동안 고생하신 흔적이 역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에 몇 년 살다보면 다 그렇게 젊게 살게 된다고 우스갯소리로 위로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족은 부부가 10대 후반의 오누이를 데리고 왔는데 그분들은 가족의 소개로 온 것이 아니라 라디오로 한국의 실상에 대해서 많이 들으면서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서 탈북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못 먹고, 못 살기 때문에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이렇게 더 나은 자유로운 생활이나 교육환경 등을 생각해서 탈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예진: 그렇군요. 과거보다는 탈북하는 이유가 좀 더 명확해진 것 같네요. 요즘은 직송이 늘었지만 사실 북한에서 중국이나 제 3국을 거쳐 몇 년 동안 어렵게 살다가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북한에서의 생활뿐 아니라 제3국에서의 생활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직송으로 오는 탈북자들의 경우와는 상황도, 심리적인 부분도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마순희: 참 그게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장단점이 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저희들처럼 중국에서 몇 년을 살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경험해보고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도 뼈에 사무치게 느끼면서 살다온 사람들인 경우에는 어찌 보면 한국에 정착하는데 더 좋은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예진: 그렇게 느끼게 된 이유가 뭘까요?
마순희: 네. 북한에서 살 때 모든 것을 국가의 공급이나 배급제도, 그리고 누구에게나 고루 혜택이 돌아 가는 것에 대하여 습관이 되었다가 중국에서 4~5년 살게 되면서 그것에 대한 미련이나 기대 같은 것들은 다 버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기에 한국에 와서 선택의 기회나 각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나 지원도 서로 다르지만 그것을 수용하고 본인이 기회를 만들어 가면서 정착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불법체류자로, 도망자로 숨어 다니면서 살아야 했던 뼈저린 경험은 우리를 받아주고 우리의 인권을 존중해주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내나라, 대한민국에 대한 고마움을 더 사무치게 느끼게 한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직송되어 오신 분들도 각자 서로 사정이 다르기는 마찬가지지만 헤어져 살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나 함께 살고 싶은 마음 등으로 한국행을 택했지만 그렇다고 정착이 쉬운 것은 아니잖아요. 어렵고 힘들 때마다 가끔씩 후회도 들고 또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온 가족에게서 조금이라도 서운한 점이 보이면 ‘너 때문에 모든 걸 다 버리고 왔는데 어찌 그럴 수 있는가’ 하는 식으로 원망하시는 경우도 있죠.
이예진: 맞아요. 탈북자 가정 중에는 그래서 더 똘똘 뭉쳐 잘 살고 계신 분들도 있지만, 가끔 북한에선 안 그랬는데 남한에 와서 불화가 생기는 경우도 있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제가 상담하는 분들 중에는 나이 드신 할머니가 푼돈을 아껴가면서 브로커 비용을 마련하여 제대한 손자를 데려온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사회생활을 하다가 왔어도 세상 물정을 모를 텐데, 군대에서 금방 제대된 후에 한국에 온 그 청년인 경우에는 얼마나 모든 것이 혼란스럽겠어요. 북한에서도 사회생활을 못해 봤고, 중국에서라도 자본주의를 경험하고 왔으면 좀 이해가 될 수도 있겠는데 이도 저도 아니니 모든 상황이 낯설고 어려웠던 거죠.
그래서 할머니는 외식 한 번 안하면서 아글타글 모은 돈 일부로 손자를 먼저 데려왔는데, 손자가 남아있는 브로커 비용을 갚을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는 것에 서운해 했고요. 손자는 손자대로 자본주의에서 살더니 할머니가 돈밖에 모른다고 곡해를 했던 겁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상담 받겠다고 전화를 하셨는데, 그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가더라고요.
이예진: 가족끼리도 서로의 입장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차근차근 잘 풀어갔으면 좋겠네요.
마순희: 네. 또 직송으로 온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금년 봄에 만났던 교육생 중에 27세의 청년이 있었는데요. 그 청년은 저한테 2년만 열심히 벌어서 한국 정부에서 제공한 집 말고 따로 내 집 장만을 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더군요.
그 청년은 누나가 먼저 왔는데 매달 생활비를 몇 십만 원씩 보내주어서 북한에서도 냉장고에 고기를 떨구지 않고 살았다고 하던 청년이었습니다. 누나가 보내주는 그 돈이 얼마나 힘들게 벌어서 쓰지도 못 하고 가족을 생각해서 북한에 보내는지를 잘 알지 못하기에 한국에 와서 돈을 버는 것이 쉬운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이제 그 청년은 전화를 하면 자기가 얼마나 철없는 생각을 했던 지를 되돌아보면서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답니다.
이예진: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남한에서 돈 벌기 쉽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는데요. 내가 얼마나 부지런히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참고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 한국에 와서 이것, 저것 부딪치며 비로소 정착하게 된 탈북자들의 이야기, 다음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