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비둘기만 봐도 무섭고, 책상에 올라가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예쁜 나비조차 끔찍하게 싫은 경우가 있습니다.
현대인의 정신 질환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이 두려움에 관련된 병인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어떤 특정 상황에 큰 공포를 느끼는 특정 공포증에 대해 알아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심리상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전진용: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네. 오늘은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증, 특정 공포증에 대해 얘기 나눠볼 텐데요. 특정 공포증이 무엇인지부터 좀 설명해 주시죠.
전진용: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만 공포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심한 경우 상상하는 것만으로 불안이 커지는데요. 대상은 특정 동물, 특정 상황 등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비둘기나 개와 같은 특정 동물에 대해 공포감을 느낄 수도 있고, 승강기나 지하철 등 좁은 공간에서 공포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각각 상황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데, 좁은 공간에서 공포를 느끼는 폐쇄공포증, 비행기를 탈 때 공포를 느끼는 비행기 공포증 등으로 이름을 붙입니다.
공포 대상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특정한 상황, 그러니까 대중교통, 터널, 다리와 같은 폐쇄된 공간에 대한 공포가 있고요. 천둥, 번개, 바다 등의 자연 환경에 대한 공포, 혈액, 주사, 피 등의 신체적 상해에 대해 공포를 느낄 수 있고요. 뱀, 거미, 지네 등 동물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예진: 평범한 사람이라면 크게 두렵다고 느끼는 것들은 아닌 것 같은데 심리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되면 이런 것들이 심각한 증세를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런 공포증이 생기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전진용: 어린 시절 특정 공포대상으로 인해 크게 놀란 경우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승강기에 갇힌 경험을 통해 승강기 공포증이 생길 수 있고, 개에게 심하게 물린 후 개 공포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가 축적되면 공포가 심해질 수 있고요. 직접적인 경험 말고 부모가 반복적으로 어떤 동물이나 행동에 대해 조심을 하라고 이야기한 경우, 그러니까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친한 사람이 물놀이 사고로 사망했다거나 해서 물에 대한 공포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예진: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떤 강한 충격을 받은 경우에 공포증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네요.
전진용: 네. 반면에 특정한 원인이 없이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뱀이나 악어를 보고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주로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공포감을 느끼거든요. 이는 원시시대엔 공룡을 두려워하는 본능이 살아남으면서 진화 과정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인간의 대뇌 속에 남아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을 하기도 하는데요. 이처럼 원인 없이 공포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일반인에게는 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일반인들에게도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공포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볼 수 있는데요. 심리학자들이 확인한 공포증 종류만 500개나 됩니다. 세계적으로 인구의 11%, 10명 중 한 명은 두려움을 수반한 불안 장애가 있다고 합니다. 특정 공포증은 여성에게는 정신과 질환 중 가장 흔하게 발병하고, 남성 역시 알코올 중독 다음으로 흔한 질환입니다.
이예진: 이렇게 흔할 수 있는 특정 공포증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 같아요. 지금 방송을 듣고 계신 청취자 여러분 중에서 공포증을 겪고 있지만 그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고요. 어떤 경우에 특정 공포증이 있다고 진단할 수 있을까요?
전진용: 아래 증상이 두 개 이상 동시에 발생한다면 특정 공포증을 의심해봐야 하는데요.
○ 공포 대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두렵고, 그런 상태가 상당 기간 지속되는 경우
○ 공포 대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즉각적으로 불안해지며, 심하면 공황 발작상태가 나타나는 경우
○ 자신의 두려움이 지나치거나 비합리적인 것임을 잘 알고 있고 공포 대상이 나를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두려운 경우
○ 공포 대상이 있는 곳은 불안에 떨며 지나가거나 아예 돌아가는 경우
○ 공포 대상으로 인한 공포심과 이를 피하기 위한 행동 때문에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받는 경우
○ 공포심과 발작, 이를 피하기 위한 행동을 공포 대상에 대한 두려움 외에 다른 정신 장애로는 설명하기 힘든 경우
○ 이런 공포를 느낀 상태가 최소 6개월 이상인 경우
이 중 두 가지 이상이 해당될 경우에는 특정 공포증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이예진: 청취자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두려움과 공포가 심각한 증세로 변하지나 않았는지 점검해보시기 바라고요. 탈북자들에게는 북한에서 겪은 생활고와 탈출하는 과정에서 겪은 공포가 이런 특정 공포증이 되기도 하는데요. 사례를 들어보시죠.
사례/2011년 2월에 두만강까지 왔는데 총소리가 나면 무조건 달리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이 굳었어요. 두 딸도 공포에 질렸죠. 초소 옆으로 지나가더라고요. 두 발이 떨어지지 않았죠. 한국에 들어와서도 그 때 그 악몽을 계속 꿨어요. 잡혀가는 꿈, 따돌림 당하는 꿈을 꿨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안정됐다는 소리죠.
이예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나아지기는 하지만 탈북하면서 겪은 일들이 공포가 되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 상담하신 분들 중에 또 어떤 경우가 있었나요?
전진용: 탈북자들이 겪은 경험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특정 공포증으로 나누기 애매한 경우가 있지만 탈북 과정에서 좁은 곳에 갇히면 폐쇄 공포증이 나타날 수 있고요. 북한에서 높은 곳에서 떨어질 뻔했던 경험이 있다면 고소 공포증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예진: 이런 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면 좋을까요?
전진용: 일단 특정 공포증의 치료는 체계적 탈감작이라는 방법을 사용하는데요. 개를 무서워하면 개 주위에 가지 않거나 해서 일상생활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지만 개를 계속 피할 수만은 없다면 일단 마음을 편안하게 한 뒤, 개의 사진을 보고, 개의 소리를 듣고, 개 인형을 보고 강아지를 본 다음에 개를 보는 형식으로 체계적으로 접근하면서 노출 당시의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불안이 심하다면 약물치료를 하기도 하는데요. 약물이 특정 공포를 없앨 수는 없지만 노출 당시의 불안, 어떤 공포상황에 노출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낮추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이예진: 불안, 걱정, 공포관련 증상들이 평소 생활이나 학문적, 직업적 수행능력, 원활한 사회관계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느끼는 불안과 걱정, 공포는 정상이고, 누구나 겪는 것이기 때문인데요. 특정 공포증으로 심각해지지 않도록 두려워하는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관점을 갖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찾아가는 심리상담. 오늘 도움 말씀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진용 선생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진용: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