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탈북노인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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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최근 탈북자 정착기관인 남북하나재단에서 탈북자 2천 3백5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월 평균 2천 달러 이상 소득을 올리는 탈북자는 전체 조사대상자 가운데 9%, 216명인 것으로 나타났고요. 216명 가운데 0.9%는 60대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만큼 새로 공부하거나 기술을 익혀 더 많은 돈을 벌기는 어려운 탈북 노인들.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 노인의 하루를 들여다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지난 시간에 이어서 탈북 노인들의 삶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의 60대 이상 탈북노인 가운데 일하는 분들은 많지 않죠?

마순희: 네. 지금도 어르신들 속에는 70세가 되어도 요양보호사로, 의료봉사자로, 시설 대표로 그리고 한국에 와서 대학공부를 마치고 전문가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대부분은 일자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행사를 하게 되면 참가자의 거의 대부분이 어르신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탈북단체나 탈북자들과 교류가 많지 않다보니 하루 종일 혼자 지내시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제가 전화를 할 때 집전화로 해 보면 낮에도 거의 집에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지내시고 계시는지 물어보면 그냥 그렇게 지낸다고 하시거든요.

이예진: 혼자 계시다면 하루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내시는지 궁금하네요.

마순희: 네. 그분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셔서 커피 한 잔 마시고 TV나 컴퓨터를 켜고 뉴스도 보고 드라마도 보시고 배가 출출하면 간단히 식사를 한다고 해요. 라면이나 건빵, 우유 등으로 드시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하시는데 제가 보기에 그 분은 전혀 살까기가 필요한 체형이 아니시어서 저도 의문스럽기는 하거든요. 하루 종일 누웠다 일어났다 하시면서 TV시청을 하시다가 생각나시면 공원에 나가서 걷기 운동을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녁식사만은 본인이 직접 잘 준비해서 하신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복지관이나 노인회관 등에 나가셔서 함께 즐기시라고 조언해드려도 전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예진: 지역마다 노인복지관처럼 노인들의 여가활동을 돕는 단체들이 많을 텐데 그런 생각이 왜 없으셨을까요?

마순희: 어떤 지역이나 지역에 사회복지관이나 적십자봉사관 등 봉사 기관들이 있고 또 아파트 단지나 마을마다 노인정 등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저희 아파트 단지에도 관리사무소 위층에 어르신들을 위한 노인정이 있고 주위에는 복지관 그리고 큰 노인 회관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탈북자 어르신들이 그런 곳에 가서 잘 어울리지 못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저희 동네에 사시는 70대 후반의 할머니께서는 단지 내에 노인정이 있지만 30분 이상을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는 먼 노인 회관에 다니시는 겁니다. 어느 날 저도 한 방향으로 갈 일이 생겨서 함께 걸으면서 물어보았더니 걷는 운동을 해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하시면서 운동 삼아 가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참을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유가 그것만이 아니더라고요.

이예진: 네. 다른 이유가 뭐가 있었나요?

마순희: 네. 그 할머니도 처음에는 동네에 있는 노인정에 나갔었는데 며칠 못 가서 문제가 생기더랍니다. 임대주택에 거주하시는 분들이라고 하면 한국 분들이라고 해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분들은 아니시잖아요? 탈북자들에 대한 이러 저러한 혜택들이나 지원하는 사업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듣고 있는 눈길이 곱지만은 않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날 다툼이 크게 있었다고 해요.

어르신들은 누구나 모이면 자식자랑, 손자, 손녀 자랑 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잖아요? 그 할머니의 손자가 유명 미술대학에 다니면서 큰 상을 받았다고 자랑을 했었는데 듣고 계시던 다른 할머니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말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웬만한 사람은 가지도 못 하는 대학에 등록금 지원까지 받으면서 다니고 있는 게 얼마나 큰 혜택인지 아는 것 같지 않다, 우리는 옛날에 자식 공부시키려고 별별 고생을 다했다는 식으로 말이죠.

듣고 계시던 그 할머니 마음도 편치 않았고 나라에서 주는 혜택인데, 제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도 아닌데 괜히 샘한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다 보니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된 거죠. 할머니 말씀이 나는 이 나이 먹도록 한국에서 살았다면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시면서 다시는 그런 곳에 가기 싫어서 멀리 걸어서라도 노인 회관에 가신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노인회관은 인원이 많다보니 서로에 대해서 시시콜콜 알려고도 하지 않고 일일이 관심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이예진: 사실 임대주택부터 정착금, 의료비, 생활비, 대학등록금 등 탈북자들이 한국의 저소득계층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죠. 물론 탈북자들에게는 낯선 사회에서 살아갈 작은 기반입니다만, 탈북자들이 받는 나라의 혜택은 한국 국민이 소득의 일부를 납부한 세금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가끔은 이렇게 불편한 시각으로 보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연세 많으신 분들은 탈북자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만 가도 친구 사귀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탈북 노인들에겐 더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마순희: 저부터도 적응하는데 딸들보다 훨씬 더딘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저처럼 함경도 지방에서 오신 분들이 많다보니 튀는 말투 때문에 어디서나 꼭 표가 나거든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분 중에 김치공장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북한에서 어머니를 모셔온 지 몇 년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원래 개성출신이라 말투가 표가 나지 않아서인지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탈북자라는 것을 전혀 모른다고 합니다. 많은 남한의 어르신들과 친구가 되어서 매일 복지관에 나가시는 것을 얼마나 즐거워하시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지역마다 탈북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자신의 성격이나 의지에 따라 적응 정도는 서로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아까 이야기하던 인천의 그 어르신처럼 ‘나 혼자 마음이 편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거의 사회적 교류를 하지 않고 지내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김치공장 사장님의 어머니처럼 활발하게 여가 활동이나 사회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있는 겁니다.

이예진: 가족과 같이 온 것도 아닌데 사회적 교류도 없이 혼자 보낸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마순희: 맞습니다. 남북하나재단의 종합상담센터의 전화번호가 TV 자막으로 나가고 있어서 많은 분들이 전화가 오거든요. 그런 분들 중에서는 친절하게 안내 받고서는 꼭 만나서 상담하고 싶다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의 전문상담사 선생님들과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해드리기도 한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 분들의 외로움이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예진: 그런 탈북 노인들을 위한 모임이나 단체들도 꽤 많이 있죠?

마순희: 그렇습니다. 인천지역에 북한이탈주민들이 특히 많이 거주하고 계시는데요. 그렇다보니 어르신들도 적지 않거든요. 몇 년 전에 인천지역에서 활동하는 북한이탈주민 출신인 상담사 동기에게서 부탁 전화가 왔습니다. 인천지역에 탈북자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방을 조직하고 개소식을 하는데 함께 동참해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을 위해 조직하기는 했지만 큰돈을 들여 축하공연까지 할 형편이 안 되어 가수인 저의 딸이 함께 와서 축하해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전문상담사로 취직하면서 함께 입사한 동기의 부탁이라 거절하지 못 하는 것을 알고 딸들이 함께 나섰습니다. 저의 큰딸도 둘째딸과 함께 인천으로 한 시간 넘게 차를 몰고 찾아갔었답니다. 동네 사랑방에서 축하의 노래를 불러주면서 우리 딸이 이야기하더라고요. 한국에 와서 수많은 노래를 불렀지만 오늘처럼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노래 부르기는 처음이라고 하면서 고향의 아버지, 어머니들을 위해 노래 부르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말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동네 마실방에서 반주도 없이 노래 부르는 것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내색하지 않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딸이었지만 그 때 너무 자랑스러웠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 사랑방은 지금도 인천지역에서 어르신들의 소통의 장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이예진: 훈훈하네요. 앞으로 어떻게 하면 탈북 노인들이 외롭게 혼자 보내는 일이 없어질까요? 다음 이 시간에 고민해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