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직업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고른다는 것, 누구에게나 정말 쉽지 않죠.
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을 찾는다는 것, 적성을 찾는 일도 그래서 큰 숙젠데요.
그런데 탈북자들에겐 그보다 더 큰 고민이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배워 그나마 자신 있던 일을 남한에선 써먹을 수 없기 때문인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어떻게 하면 북한에서 하던 일을 남한에서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북한에서 오신 분들 중에는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까에 대한 고민이 참 클 것 같아요. 사실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직업이잖아요. 한국 토박이들도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탈북자들은 어떤 고민을 할지도 궁금하네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북한에서 살 때에는 직업이나 직장에 대해서 본인이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렇지요. 북한에선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면 군 입대나 대학추천을 받아서 대학에 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직장에 나간다고 봅니다. 물론 부모들이 농촌 출신이면 농촌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노동자출신이면 노동자로 일하는 것입니다. 군 노동부에서 다 배치를 하거든요. 가끔은 집단진출이라고 농촌이나 광산, 탄광 등에 집단적으로 한 개 학급이 다 함께 진출하는 경우도 있고요. 배치를 받을 때에는 본인의 적성이나 선호 같은 것이 전혀 고려가 되지 않다보니 정작 한국에 와서 좋아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오히려 당황하게 되더라고요.
굳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선택하라고 하면 아마도 북한에서 자신이 해오던 일이나 경험해보았던 일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아마도 낯설지도 않고 그나마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런데 북한과 남한의 경제적 발전 정도가 엄청나게 차이 나다보니 같은 분야라 해도 정작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이예진: 그럴 것 같아요. 특히 북한에서 하던 일이 자동화, 첨단화된 한국사회에선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아쉬움도 크지 않을까 싶거든요. 북한에서 해오던 일을 남한에 와서 이어 하는 분들은 많지 않죠?
마순희: 그렇습니다. 저희 맏딸 경우에는 광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집단배치로 광산 선광장에서 마광기 운전공을 했거든요. 그래서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았더니 전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래요. 그래도 기계 설비를 배웠었기에 컴퓨터 학원에서 컴퓨터정비와 자동 설계하는 것을 배우더라고요. 몇 년을 생산직장에서 설계를 하면서 설계과장까지 승진도 했고 나름 괜찮게 적응해 나가더라고요. 하지만 몇 년은 생산직장에서 일하다가 보다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더니 다시 배움에 도전하여 지금은 촬영도 하고 영상물도 만드는 프로듀서를 하고 있답니다. 지금 저의 맏딸은 가끔 탈북민들의 사회정착기관인 하나원에서 선배 탈북자들의 경험을 소개하는 선배특강으로 강의를 하기도 한답니다.
대부분 이렇게 한국에 와서 새로운 직업을 찾지만, 그래도 북한에서 배운 일을 살려 남한에서 더 공부하고 발전시킨 사례도 많습니다. 현재 서초에서 소방 설계 감리사로 근무하는 탈북여성이 그러한데요. 이 여성은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이 어려울 때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장마당에서 악착같이 돈을 벌다가 중국에 다니는 사람들을 통해 모내기 한 철만 돈을 벌어 오면 덜 힘들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중국에 가게 되었으나 하루도 못 되어 잡혀 나가게 되었답니다. 강제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니 그동안의 평판도 모두 무너지게 되고 더는 북한에서 살 수가 없어서 다시 탈북을 했대요.
이 여성은 중국에서 애써 모은 돈을 북한 가족들에게 보내고 한국행을 택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와선 말투가 조금 달라 불편함이 있기는 했지만 워낙 성실한 여성이었기에 별 무리 없이 잘 정착해 나갔대요. 그런데 북한에서 건설대학을 졸업하고 도시설계사업소에서 근무했었던 그 분은 처음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한 교육시설에서 컴퓨터로 설계하는 캐드라는 것을 배웠다고 해요.
이예진: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어쨌든 북한에서 했던 일을 이어가고 싶으셨던 거군요?
마순희: 그렇죠. 배우는 학생들이 주로 10대, 20대의 젊은이들이었지만 그 속에서 30대가 훌쩍 넘은 그는 열심히 배웠고 학원 강사님의 추천과 동행면접 등 도움을 받아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11년간 소방 설계 감리사로, 주임으로 열심히 근무하는 그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경력을 살려서 한국에서 더 높이 성장한 전문가로 당당하게 정착하고 있는 그 여성이 얼마나 돋보였는지 모른답니다.
이예진: 대단하시네요. 북한에서 비슷한 일을 했다고 해도 남한에 와서는 남한 식 교육을 받은 후에 자격증도 따야하고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노력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마순희: 맞아요. 그 여성이 자신의 정착에 도움을 준 학원 강사님을 소개하기에 제가 그 강사님을 만나보았습니다. 강사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여성이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더 잘 알게 되었답니다. 설계를 배울 때 교육생들이 거의가 10대, 20대였기에 학원의 강사도 이분이 30대 후반인데다 탈북한 여성이 과연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얼마나 열심히 배웠는지, 과제를 내주면 누구보다 성실하게 해오고 모르는 것은 꼭 남아서 물어보아서라도 알고야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탄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마음에서 일자리도 알아보고 면접 갈 때에는 동행해서 잘 적응할 수 있는 회사인지도 강사님이 먼저 파악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취직한 다음에도 자주 연락하면서 회사생활에서 어려운 점이나 기술적인 문제들도 많이 물어보았다고, 참 열정이 있고 도전 정신도 강하기에 늘 자신이 더 감동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예진: 그분이 열심히도 하셨지만 학원에서도 남다르게 챙겨주셨네요.
마순희: 네. 그런 응원 속에서 그 여성분은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도 안주하지 않고 계속 배움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방 설계기사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근무하고 있지만 최고 기술자격인 소방기술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열심히 또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소방 설계분야에서 일하는 탈북민들 중에서는 최고가 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이예진: 탈북민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전체 소방 설계 분야에서 최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북한에서 했던 일을 남한에 와서 이어하는 사람들, 또 어떤 분들이 있는지 다음 시간에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