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197, 80년대만 해도 한국 여성들의 꿈을 물으면 ‘현모양처’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적인 여건을 떠나 가정에서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기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하는 여성들이 많아졌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결혼을 통한 안정과 새롭게 생긴 꿈,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탈북자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최근 한국에서는 여성들의 교육수준은 높아졌지만 결혼한 뒤 경력단절 현상, 그러니까 결혼이나 출산 전까지 일하던 여성들이 출산 후 다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죠. 아직까지 출산 후 육아는 엄마가 전담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라 여성들이 다시 사회활동을 하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잖아요.
마순희: 저도 그런 기사를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결혼을 미루는 여성도 늘어났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한국 정부와 서울시, 그리고 큰 회사들이 이번에 여성을 위한 취업 기회를 늘리고 사회적으로 육아를 분담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런 사안들을 보면서 북한이탈주민 여성들에게도 예외가 되는 일은 아니기에 마음이 결코 가볍지는 않습니다.
이예진: 네. 선생님도 세 딸이 있잖아요. 한국에서 사회활동을 하고 있나요?
마순희: 저희 딸 셋은 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탈북의 가장 큰 공로자인 우리 맏딸은 지금 사회적기업인 북한예술단에서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광업전문학교, 말하자면 광산부분의 기계관련 전문대를 졸업하고 광산에서 일하였던 딸이었기에 한국에서도 컴퓨터 학원을 다니고 컴퓨터로 기계 설비를 설계하는 회사에 취직했거든요.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해왔던 일이나 잘할 것 같은 일 즉 그나마 자신이 하던 일과 비슷한 직업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맏딸 경우에도 그래서 동해펌프라는 생산회사에서 캐드하는 일 즉 북한식으로 말하면 컴퓨터로 기계를 설계하는 일을 했거든요. 설계과장까지 하면서 일하는데 생산 현장이라 가정주부가 일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이예진: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다고 하나요?
마순희: 본인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노력하면 되겠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교육에서 문제가 많았습니다. 초등학교시절 부모의 관심이 얼마나 필요한지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남성회사원들과 똑같이 애가 학교가기 전에 애보다 먼저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 회사생활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년간 집에서 쉬면서 자신의 진로에 대해 신중하게 따져보고 컴퓨터 학원을 다시 다니면서 사진 편집하는 기술을 익혔고 현장에서 사진촬영을 배워 지금은 애를 관심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예술단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둘째딸은 북한에서 선전대 가수로 일한 경력을 살려서 지금은 역시 대한민국에서 꽤 이름이 있는 가수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예진: 셋째 딸은 가정주부로 계시고요?
마순희: 네. 지금은 아이가 커서 사회에 나가려고 대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예진: 그렇군요.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에 다니는 일이 쉽지 않잖아요. 특히 대학교까지 졸업하는 고학력자가 많은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가 조금 크고 나면 육아만 전담하던 엄마들도 경제적인 문제와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사회활동을 생각하기 마련이거든요. 집에서 육아만 하다보면 사회적으로 뭔가 뒤처지는 것 같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잘 모르는 것 같고, 소외감도 느끼고요. 집에서 가정만 돌보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그래서 우울증이 오기도 합니다. 탈북 여성들의 경우는 어떤가요?
마순희: 탈북여성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처음 한국에 나온 탈북 여성들의 경우에 자기계발을 위해 열심히 대학공부를 하고 취업을 해서 성공하는 길을 택하는 여성들보다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통하여 쉽게 정착하려는 여성들도 적지 않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초기정착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보니 가장 빨리, 그리고 손쉽게 한국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것은 안정된 한국인 남성과 결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나온 가족이나 지인들을 통하여 한국의 남성들을 소개 받고 괜찮다 싶으면 그냥 결혼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예진: 그러니까 탈북여성들은 취업이나 자기계발보다 안정된 가정생활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마순희: 네. 아시는 것처럼 탈북자들의 거의 60-70%가 여성이다 보니 상담전화를 받아도 역시 여성들의 전화가 더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가정문제에 대한 상담인 것 같습니다. 물론 많은 상담들 중 결혼식 축하금 신청에 대한 문의, 가정을 이루어서 행복한 생활을 하다가 아기를 출산해서 출산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등 행복한 상담전화도 많지만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담전화도 있습니다.
지난번에 강원도에서 살고 있다는 하나원을 수료한지 몇 개월 되지 않은 한 여성의 전화를 받았는데요. 한 달 전에 반납한 국민임대주택에 다시 입주할 수 있는지 하는 전화였습니다. 한 번 반납을 하면 다시 입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기에 사유를 물었더니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같은 기에 퇴소한 친구가 강원도에 주택을 받아서 함께 살고 있다가 한 달 전에 먼저 나온 지인의 소개로 한국 사람을 소개받아서 결혼하여 대전에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의 주취폭력 등으로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고 오늘은 친구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대전으로 갔는데 친구가 말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를 데리고 올라오는 길인데 오늘은 자기 집에 데리고 가겠지만 반납한 주택에 다시 입주가능한지 상담 받아보고 싶어서 전화한다는 것입니다.
이예진: 다시 주택을 받기는 어려운 거죠?
마순희: 원래 북한이탈주민이 받은 주택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2년간 해지가 불가능한데 그 여성의 경우 주거가 확보된 남한주민과 결혼한 경우로 해지 사유가 성립되었던 것입니다. 후에 다시 전화해 보았더니 남편과 이혼했고 결혼으로 주택을 해지했었는데 마침 한 달 동안 그 집이 공가로 남아있어서 재입주가 가능하여 다행이었다고 합니다.
이예진: 네. 어쨌든 주택을 다시 받을 수 있었네요. 이런 식으로 안정된 결혼생활을 원했지만 먼저 자립해서 적응을 잘 한 뒤에, 결혼을 선택해도 늦지 않은 경우들이 꽤 있는 것 같은데요. 결혼을 해서 잘 살다가도 한국 사회에 적응하다보면 분명히 또 사회활동을 원하는 경우들도 생길 것 같아요.
마순희: 그러한 상담사례들이 많습니다. 결혼하여 출산과 육아로 일할 조건이 안 되어 취업을 하지 못하던 여성들의 경우 아기가 어느 정도 크면 어린이집에 맡기고 취업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취업보호기간이 최초로 취업한 날로부터 2년이므로 3년간 지원되는 취업장려금 등을 모두 받을 수 없습니다.
인천에 살고 있다는 한 여성의 경우는 취직을 하려고 하는데 거주지 보호기간 5년을 3개월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성분에게 지금 시점에서 취직을 하면 1년간은 취업장려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성은 남들은 3년간 받는데 자기는 왜 1년만 받는지 납득이 안 된다고 합니다. 거주지 보호기간이 3개월 밖에 안 남았지만 그래도 그 기간 내에 취직을 하면 1년까지는 취업장려금을 주도록 되어 있다고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예진: 공부도 다 때가 있다고 하잖아요. 탈북하신 분들도 제 때에 적성이나 취업교육 등을 받는 게 좋은 것 같네요. 다음 이 시간에는 결혼을 통한 안정보다는 자립을 통해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