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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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국에서는 종종 방송을 통해 성공한 탈북자가 소개됩니다.

주로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거나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탈북자들이 성공적인 정착기를 들려주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들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은 어떤 걸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네. 지난 시간에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며 남다른 꿈을 안고 끈질긴 노력과 여러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성공을 이뤄내는 탈북자들이 많다는 얘기를 했는데요. 실제로 어떤 분들이 계시던가요?

마순희: 북한에서 큰 식당을 경영한 경험이 있는 한 탈북여성은 한국에 와서도 식당 창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시장조사도 하고 연구도 하였고 서울에 식당을 차렸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경험이 곧바로 성공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1년여 만에 가게를 접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식품회사를 꾸릴 준비를 하였고 적지 않은 수강료를 내면서 한국의 김치에서 새로운 품목으로 떠오르는 ‘어딤채’라는 김치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딤채란 물고기라는 ‘어’ 자에 김치의 순수 우리말인 ‘딤채’를 합성한 말인데 김치에 부족한 단백질을 물고기에서 보충한다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우다보니 우리가 북한에서 늘 해 먹던 김치가 그렇게 불리어지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북한에서 배추김치나 혹은 깍두기, 그리고 무 채김치 등을 하면서 경제적인 여력에 따라 명태나 오징어 등 수산물을 김치에 넣어서 만들군 하거든요. 그 친구는 북한의 김치문화를 한국의 김치에 활용하여 명태식혜(식해), 가자미식혜(식해) 등을 만들면서 식품회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11월 11일 하나금융그룹과 함께 하는 김치나눔행사에 북한 함경도 평남도 김치를 선보여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예진: 북한식 김치로 장기를 살렸네요. 사실 그동안 실패를 겪은 탈북자분들이 노력하지 않아서만은 아니죠.

마순희: 그럼요. 북한의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살던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이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그리 쉽게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저는 지금도 부동산이니 가게 임대차계약이니, 보증금이니, 권리금이니 하는 용어 자체도 잘 모르겠거든요. 북한에서도 집 앞에 매대를 차려놓고 자신이 직접 식품을 만들거나 물건을 가져다가 파는 것은 있지만 그런 것과는 차원이 틀리잖아요?

제대로 된 준비가 없이 창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하게 되면 아직 경제적 여력이 넉넉하지 못 한 형편에서 타격이 엄청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게 되면 신의를 저버리고 여러 가지 불법을 하는 경우들도 없지 않더라고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탈북자 기업인들 속에서도 지원금을 받아서 하고 있던 사업을 다 정리해서 빼 돌리고 해외로 도주하는 현상도 있는데 참, 어디가선들 평생 마음 편히 살 수 있겠어요?

비록 실패했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파산신고라도 하고 거기에 해당한 법적구제를 받으면서라도 다시 일어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옳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들도 많아서 주위의 시선들이 곱지 않은 경우들도 있습니다.

이예진: 하지만 열심히 사는 분들이 훨씬 더 많죠. 최근 선생님께서 탈북자들의 성공사례를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계시잖아요. 어떤 분들이 계시던가요?

마순희: 남북하나재단에서는 대한민국에 잘 정착하고 있는 우리 탈북자들을 찾아서 사례들을 발굴하는 사업 즉 착한성공사례 발굴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저도 이 사업에 함께 동참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정말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성실한 노력을 바쳐가며 잘 정착하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제가 만나고 있는 분들은 크게 성공해서 TV에 성공사례로 소개되는 특별한 분들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 이웃들이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해 나가시는 멋진 분들이었습니다.

서울에 계시는 한 탈북여성의 이야기인데요. 굳이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다면서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시던 겸손한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5년 전 국립의료원에서 일할 때 그 분이 방문요양사업을 한다는 것을 알고 한두 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방문요양사업이란 요양보호를 받으셔야 할 어르신들을 시설이 아닌 본인들의 자택에 찾아가서 돌봐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요양보호사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받은 후 요양보호사로 1년 정도 일을 하다가 사업을 시작한 거죠. 처음에는 다섯 평 남짓한 사무실과 한 사람의 대상자로부터 시작했던 사업이 지금은 60평 사무실에 4명의 한국인 출신의 직원들을 두고 있는 큰 사업체로 발전해 있었습니다. 요양보호사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평생교육원 원장으로, 재가요양시설 시설장으로 당당하게 사업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이예진: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분들이 많네요.

마순희: 네. 그 외에도 자랑스러운 모습들은 가는 곳마다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취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60살이 다 된, 혹은 70대를 바라보는 여성분들도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았던 한국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강원도 춘천에 계시는 이발사 출신의 한 여성분은 한국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든가, 미용실에서 일하려면 미용사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데 용어도 어렵고 경제적으로도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자신이 진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 고령화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요양보호사일 것 같고 자신이 능히 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고 지금까지 4년간 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계시는 60대 초반의 그 여성의 이야기는 취업이 어렵다고 하는 탈북자들에게 공감이 갈 수 있는 사례였습니다.

부산 북구에 살고 있는 탈북출신 여성들이 봉사단체를 무어서 지역의 아동센터와 어르신들을 위한 요양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야기는 이미 부산 지역의 모범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었고 또 부산 사하구의 40대의 한 여성은 아파트단지의 통장으로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예진: 통은 한국에서 행정 구역의 단위잖아요. 한 구역인 통을 대표하여 일을 맡아보는 통장 일까지 할 정도면 이웃들과 사이도 좋고 일도 잘 한다는 거네요.

마순희: 네. 그렇죠. 그리고 부산 지역에서는 북한에서 한의사로 일하셨다는 70살이 다 된 분이 “탈북의사의 사랑봉사회”를 운영하면서 지역주민들에게 의료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예진: 숨어서 좋은 일하는 분들이 참 많네요. 남들이 말하는 성공을 한 탈북자들은 이렇게 남들 모르게 좋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탈북자들이 모이면 남한 사람들에게 아직 남아있는 탈북자들에 대한 불편한 시선도 많이 줄어들겠죠?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