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탈북자들의 이야기가 짧게 담긴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홍보영상을 보고 탈북자들을 돕고 싶다는 남한사람들이 꽤 많다는 이야기, 지난 시간에 전해드렸는데요. 그렇다고 탈북자들이 지원만 받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한국 정부와 여러 민간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아오던 탈북자들 중에는 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봉사활동을 하는 탈북자들도 늘고 있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인식을 스스로 바꾸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하기까지 많이 부딪쳐야, 많이 경험해야 적응이 더 빠른 것 같기도 한데요. 선생님께서는 한국에 정착한지 10년 정도 되셨잖아요. 10년이 됐지만 그래도 달라지지 않는 생각이나 습관이 있으신가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가장 달라지지 않는 습관이 북한에서 조직생활이 몸에 배인 것이라고나 할까요. 항상 선택하기가 힘들더라고요. 평양감사도 제가 싫으면 안 하면 된다는데 그걸 잘 못 하거든요. 그래도 요즘엔 많이 적응이 돼서 본인의 일정이나 몸 상태 같은 것을 생각해서 어떤 모임이나 행사 등에 참가하라고 해도 눈치를 보지 않고 선택해서 참가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분위기나 눈치를 볼 때도 많고요. 또 북한에서 어렵게 살던 때를 생각해서인지 항상 무엇이든지 예비를 갖추어놓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예진: 만일을 대비해서 비상식량 같은 것도 준비해두신단 말이죠?
마순희: 네.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며칠 전에 아는 언니네 집에 갔는데 김치냉장고에 쌀이며 식품이며 그만한 양이면 몇 달은 시장에 안 가고도 너끈히 살겠더라고요. 언제든지 나가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식품이고 물건들인데 아직도 어려울 때 모아 두던 습관을 못 버립니다. 그리고 또 버리지 못 하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식습관입니다. 저희들은 가끔씩 북한식으로 음식을 해 먹기를 좋아합니다. 명태식혜라던가 북한식 김치며 송편, 북한순대 등도 자주 해 먹는 음식이고 설날에도 떡국보다 국수를 더 좋아한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그 많은 맛좋은 국수들을 다 젖혀놓고 유독 옥수수 국수를 사서 먹는다고 하면 선생님은 믿으시겠습니까?
이예진: 북한에서 먹던 추억의 맛은 잊을 수가 없나 봐요.
마순희: 네. 아마도 12년 동안 국수 가공하는 일을 해 왔었고 배고픈 시절 언제나 배를 채워주던 고마운 옥수수국수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식사 시에도 음식을 꼭 많이 먹어야 된다면서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밥을 많이 담거나 많이 먹으라고 권하는 것도 어려운 생활에서 비롯된 안 좋은 습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더라고요.
이예진: 음식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맛있는 북한 음식이 많기도 하고요. 그런 향수를 뒤로 하고 남한 정착에 성공한 탈북자들이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만든 홍보영상에도 등장하잖아요. 선생님도 마찬가지고요. 선배로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달라져야 할 점들이 있다면 어떤 걸 꼽으시겠어요?
마순희: 2만 6천 여 명의 탈북자들이 이 땅에 오다보니 성공한 사례들도 정말 많습니다. 물론 성공이라는 말이 참 애매하기는 합니다만 어떤 면에서 볼 때 북한을 탈출하여 무사히 대한민국까지 도착했다는 것 자체가 저는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놓고 보더라도 북한에서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대학도 이달이면 졸업하게 되고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전문직으로 일하고 있고, 어찌 보면 저는 저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자부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정착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도 많고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찌 보면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필수적인 단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더욱이 체제나 생활조건 등이 서로 다른 상태에서 70년 세월을 살아온 우리들이 하루아침에 아무 문제도 없이 이 땅에 적응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실패나 시행착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나가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기자님도 말씀하시다시피 많이 부딪치고 경험하면서 적응해 나가는 것이 정착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이 땅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겠다는 의지만 확고하다면 사소한 어려움들은 극복 못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예진: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는 건 사실 탈북자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죠. 그만큼 열심히 살아왔다는 얘기이기도 한데요. 봉사활동을 하는 탈북자 분들도 많으시더라고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성공한 탈북자들의 봉사활동도 많습니다. 그러나 봉사는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오늘 이 시간에 부산에 사시는 40대의 북한이탈주민여성의 이야기를 통해서 해드리려고 합니다. 그 여성을 전화로 처음 알게 된 것은 2년 전 상담전화를 통해서였습니다. 북한에 두고 온 딸을 그리면서 속상한 마음을 터놓는 상담전화로 저와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그분은 한국에 와서 새로 가정을 꾸리고 일곱 살 아들도 있었습니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서 서로의 문화적 혹은 생활적인 습관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차이를 극복하면서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그 분과 제가 주고받은 전화나 문자가 몇 백통은 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그 분은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으로 보람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지원재단의 동포사랑이라는 잡지에도 봉사단체의 대표로 매월 정기적으로 장애인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내용이 모범사례로 소개될 정도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기사지만 그 기사가 봉사원들의 사기를 높여주었고 지금은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이 봉사에 동참하고 있다면서 행복한 문자를 보내기도 합니다. “선생님 좋은 조언에 우리 봉사단원들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다 함께 작은 마음이 큰 힘이 되는 그날까지 비오나 궂은 일 있으나 꾸준히 봉사단 팀원들을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이런 좋은 문자가 자주 와요.
도움을 받던 사람에서 도움을 주는 봉사단체의 대표로 성장한 부산의 그 여성분처럼 이 겨울 우리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더해 주는 봉사와 나눔의 마음들이 더 많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이예진: 이런 노력을 통해 탈북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과 인식이 많이 좋아지고는 있습니다만 조금 더 달라졌으면 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마순희: 바라는 것이라면 조금 부족하더라도 북한이탈주민들을 대한민국 국민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닌 이웃으로 대해줬으면 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 누구나 잘 아는 격언이 있습니다.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다’ 실제로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자신에게 차례진 두 번째 인생을 자신이 주인답게 내가 원하는 값비싼 인생이 되도록 더 열심히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예진: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마감하며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기 마련입니다. 지금은 도움을 받는 탈북자들의 숫자가 아직 더 많지만, 앞으로는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탈북자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