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심리상담] 북한주민들의 애도는 집단 히스테리?

21일 평양 시내에 구름같이 모여든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추모하며 오열하고 있다.
21일 평양 시내에 구름같이 모여든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추모하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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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에 오열하는 북한 주민들의 눈물을 두고 외신들은 엇갈린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명지병원 정신의학과 전진용 선생과 함께 북한 주민들의 감정과 심리적인 상태에 대해 얘기 나눠 보겠습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심리상담, 명지병원 정신의학과 전진용 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전진용: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네. 오늘은 김 위원장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북한 주민들의 복잡한 감정에 대해 얘기를 나눠볼 텐데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후 북한 주민들이 보이고 있는 거의 발작에 가까운 애도는 연출된 것에 가깝다'고 영국의 가디언지가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김일성 사망 당시 북한 만수대에 올라 애도했던 조선중앙방송 기자 출신 장해성 선생은 이렇게 회고합니다.

장해성: 김일성이 죽었을 때도 사람들이 울고불고 했잖아요. 저도 그 때 기자생활한지 십 수 년이 됐거든요. 알 건 다 알고 있었던 거죠. 김일성이 죽었다고 했을 때 한 사람만 더 죽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높은 급에 있는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알만큼 알았죠. 알면서 김일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란 걸 느끼고 불만을 가졌죠. 그래도 밑의 사람들은 만수대 동상에 가서 울고불고 했거든요. 네다섯 번 갔는데 안 올라갈 수가 없죠. 우는 척 하는데 눈물이 안 나와서 괴롭더라고요.

이예진: 김일성 사망 당시에도 북한의 현실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은 알았기 때문에 강요된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있었다는 얘긴데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주민들이 통곡하는 영상은 그래서 더 '강요된 슬픔'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는데요. 일부는 '가짜 통곡'일 수 있지만 대다수는 진심에서 나오는 슬픔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겁니다. 특히 옛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죽었을 때도 북한만큼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슬퍼했고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사망했을 때 일부 사람들은 대중 심리에 반하기 싫어 우는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하면서 감정표현의 진정성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보셨나요?

전진용: 네. 두 가지 다 있을 것 같고요. 일부는 슬퍼할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주변에서 다 울면 슬퍼지기 마련이고요. 이렇게 감정표현이 저절로 나왔던 연출된 것이던 카메라를 들이대면 울지 않을 순 없었을 테니까 그런 복합적인 것들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이예진: 정치, 경제적인 현실을 떠나서 북한 주민들의 감정을 정의하기에는 복잡하지 않을까요?

전진용: 아무래도 그럴 것 같고요. 주변에서 슬퍼하면 감정 자체가 전염될 수 있으니까요. 가족이 다 슬프면 나 혼자 기쁠 수는 없거든요. 그리고 북한 사회 자체가 개인의 감정을 중시하지 않잖아요. 남한에서만 해도 음악이나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도가 있고 다양하잖아요. 북한에서는 획일화되어 있고 개인의 감정보다 전체적인, 전체에 속한 개인을 더 강조하기 때문에 개인의 감정보다는 집단에서 그렇게 하니까 나도 따라할 수 밖에 없는 거죠. 그 상황에서 슬픔이나 눈물이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예진: 김 위원장을 잃은 슬픔보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온 집단적인 행동일 수도 있겠네요. 실제로 한 탈북자는 북한 주민들의 집단 오열에 대해 상가 집에 가면 그 분위기에 취해 눈물이 저절로 나오는 현상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진용: 영국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로 1989년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앤서니 대니얼은 이런 것들이 진짜 슬픈 것일 수도 있지만, 끔찍한 두려움과 공포, 미래에 대한 불안이 뒤섞이면서 집단 히스테리, 집단 신경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는데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감정이 획일화되고 그런 상황에서 한 사람이 슬퍼하면 전염되면서 상황이 슬프다기보다 남들이 우니까 따라 울게 되는 거죠. 집단적인 감정의 전염을 겪게 되는 이런 현상이 북한 내부에서는 당연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해외에서 나라 밖에서는 좀 이상하게 보이는 거죠.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연출할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예진: 탈북자들은 텔레비전에 비친 북한 주민들의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 연출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요. 조선중앙방송 기자 출신 장해성 선생과 새문화복지연합회 이수홍 대표의 말을 듣고 얘기 나누겠습니다.

장해성: 지금은 그 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김정일이 잘못된 정책을 한다는 걸 알았죠. 지금도 분위기도 김일성 죽었을 때와 비슷하게 띄우려고 애쓰는 것 같은데, 탈북을 막 한 사람들을 만나 봐도 김정일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인식이 크게 바뀌었죠. 지금도 외면적으로는 조문할 때 카메라가 앞에 있으니까 울지 않으면 안 되니까 우는 척 하겠지만 속으로는 김정일이 떠나길 원하지 않았겠는가 생각합니다.

이수홍: (김일성 사후) 그 때 당시에는 청천벽력처럼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고 경제가 안 좋다보니까 장마당에서도 말들이 많이 돌았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화면은 전체 북한 주민을 대변하는 건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탈북자들이 그 쪽과 전화연결도 많이 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에 대한 충성도가 많이 희석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제 탈북인 단체장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어요. 김정일 사망을 추모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거죠.

이예진: 세상 밖 얘기가 북한으로 많이 들어가면서 김정일 사망에 오열하는 북한 주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들을 해주셨는데요. 김정일 사망 발표 이후 당과 근로단체 조직을 통해 김일성 동상이나 벽화 주변에서 교대로 호상을 서라는 지시를 들은 일부 북한 주민들이 '이 엄동설한에 무슨 미친 짓이냐'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심리적인 상태도 많이 불안하겠죠?

전진용: 네. 당연히 사회가 변화하게 되면 불안할 수 밖에 없고요. 작은 변화에도 사람은 불안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큰 변화를 겪었잖아요. 김일성 사후에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을 겪었고, 김정일 체제가 북한 주민들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또 한 번의 변화를 겪게 되니까 슬픔보다는 나는 과연 어떻게 될까, 내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으로 막연한 걱정, 막연한 두려움으로 슬퍼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이예진: 정신적으로 공황까지는 아니어도 굉장히 불안한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마음을 좀 다잡을 수 있을까요?

전진용: 사회 자체가 불안정한데 개인이 바꿀 순 없잖아요. 사회가 불안하면 개인이 불안하게 되고 제가 생각해도 막연하게 불안할 것 같은데요. 그런 상황에서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닐 것 같거든요. 그냥 사회 분위기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고 자신을 다잡는 것들이 멀리 본다면 심리적인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예진: 북한 주민들의 눈물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을 것 같습니다. 주민들의 통곡이 꼭 3대 세습을 지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죠. 북한 사회 안정과 생계 등을 걱정하는 점도 슬픔의 또 다른 요인이겠죠?

찾아가는 심리상담. 오늘은 김 위원장 사후 북한 주민의 심리적인 상태에 대해 얘기 나눠봤습니다. 도움 말씀에 명지병원 정신의학과 전진용 선생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진용: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