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생활 속 종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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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성탄절에도 그랬지만 올해의 마지막 날, 2016년 12월 31일에도 교회나 성당, 절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올 한 해를 되돌아보고 무사히 잘 보냈음을 감사하며 기도하기 위해선데요.

여기에 함께하는 탈북자들도 아마 꽤 될 겁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들의 생활 속에서 종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지난 시간에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거쳐야 하는 정착 교육기관, 하나원에서부터 종교를 접하고 선택하게 된다는 얘기를 했는데요. 하나원을 나온 뒤에도 지역마다 교회나 성당, 절 등이 있으니까 종교 활동도 계속 하는 경우가 많죠?

마순희: 이번에 243기로 저의 먼 조카뻘 되는 친척도 왔었는데요. 제가 찾아간 날에 천주교에서 왔다갔다고 하더군요. 9살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하나원 있을 때 천주교에 가면 마음이 편해서 천주교에 다녔었는데 그분들이 친척인 저보다도 더 먼저 왔더라고요.

이예진: 지역마다 있는 성당에 연락이 닿아서 왔었나 보네요.

마순희: 네. 특히 조카는 중국 한족동네에서 오래 살다보니 애가 9살인데 한국말이 서툴러요. 그래서 그것이 걱정이었는데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공부방에서 아들애의 한국어 공부를 맡아서 지도해 주기로 해서 큰 시름을 덜었다고 고마워하더라고요. 종교단체들의 지원이나 혜택 같은 것들이 우리가 정착해 나가는데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들이기에 거의가 종교 생활을 하게 되는 것도 이유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하나원에서 생활할 때 역사문화탐방 프로그램을 주관해서 진행한 것이 ‘좋은 벗들’이라는 정토회의 단체였습니다.

이예진: 불교 단체죠.

마순희: 네. 그분들과 함께 1박 2일로 부여, 경주 등 유적지들을 돌아보았는데 그 때는 그 단체가 조계종 산하의 사단법인단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들에게서 백제의 의자왕이며 삼천 궁녀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다는 낙화암이나 백마강 등 북한에서 노래로 익히 들어왔던 유적지들을 돌아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하나원을 수료한 후 그 단체들에서 집에 찾아오기도 했고 처음 몇 년 간은 그 단체와 함께 여러 가지 문화 활동이나 봉사활동에도 참가하면서 불교의식에도 참여하기도 했지요.

이예진: 그렇게 자연스럽게 종교를 접하게 되는 군요.

마순희: 네. 그러나 역시 종교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동네에서 쉽게 접하는 기독교 쪽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예진: 얼마 전 통계청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11월 1일 기준으로 봤을 때, 한국인 중 종교를 가진 사람 수는 2,155만4,000명, 43.9%였고요.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2,749만9,000명으로 전체 한국 국민의 56.1%에 달했습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 수는 10년 사이에 9% 줄어든 수치라고 하는데요. 종교를 믿느냐, 아니냐 역시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는 거죠. 탈북자 분들은 종교를 많이 접하게 되는 것 같은데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마순희: 다른 탈북자들의 경우는 물론 다 저 같지는 않겠지만 저는 처음에는 기독교나 천주교나 불교나 다 비슷한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독교에서 예배도 참여하고 불교에서 참배하는 데에도 참여를 해보았습니다. 아직 신앙심이 깊지 못해서 교리를 다 이해하지는 못 하지만 어쨌든 사람이 착하고 선하게 살고 남한테 해를 끼치지 않고 바르게 살도록 설교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인성을 바로 가지는데서 어떤 종교를 믿든지 도움이 되면 되었지 손해날 것은 없겠다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유명한 조선예술영화 ‘최학신 일가’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종교를 믿다가 어떻게 믿음을 배반당하고 온 가족이 죽음을 당하는지 하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속의 종교인들은 사람들을 기만하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비정한 인물로 묘사되었기에 북한에 살 때에는 교회라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또 현실적으로는 전혀 접할 수도 없었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예진: 또 하나의 세뇌인 셈이네요.

마순희: 그렇죠. 그런데 중국에 가 생활하다보니 동네마다 간혹 교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흑룡강성의 농촌마을이었는데 소재지인 기본마을에는 교회건물이 있었는데 우리가 사는 작은 마을에는 교회건물이 없고 살림집인 초가집 웃방에서 주일마다 찬송가도 부르고 예배도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네에서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헛짓을 한다면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방안에 앉아서 노닥거릴 시간에 밭의 풀 한포기라도 더 뽑겠다고, 그러니 지금까지 초가집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빚을 지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종교를 믿는다는 가정들이 모두 동네에서는 제일 가난하게 살거나 아니면 장애자녀를 키우든가 하여튼 남들보다 더 어렵게 사는 사람들뿐이기도 하더라고요. 저도 그 때에는 한창 농사철에 일하지 않고 하루 종일 방안에서 노래하고 책 읽고 어떤 때는 예배 간다고 큰 동네에 다 같이 차려입고 가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점차 생각이 바뀌고 지금은 주일날에 예배를 가는 것이 거의 생활화 된 것 같습니다.

이예진: 중국에서 기독교가 환영받지 못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셨던 거죠?

마순희: 그렇죠. 그렇게 한국에 와서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이 종교생활에 많이 동참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종교단체를 통해서 한국에 입국하는데 도움을 받은 사례들도 많고 입국 후에도 여러 가지 도움을 많이 주고 있는 것도 한 가지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혼자서 생활하거나 하는 분들은 교회에서 김치를 비롯하여 밑반찬까지 해다 주고 매월 쌀이며 여러 가지 부식물들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사회생활에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을 수 있지만 교회에 나가다보면 많은 분들을 알게도 되고 하고 있는 일들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고 있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저희 교회에도 보험설계사로 근무하는 여성이 있습니다. 저도 정착 초기에 보험설계사로 몇 개월 근무해보아서 잘 아는데 보험가입을 시킨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처럼 인맥이 없는 경우에는 더 어려운 거죠. 그래도 그 여성분은 교회의 많은 분들이 기왕 보험에 가입할 거면 그 분의 고객이 되어 주었기에 영업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종교생활은 인맥이 부족한 우리 탈북자들이 이 땅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나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종교생활에 참여하는 비율이 더 놓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시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도 교회에 안 나가시는 어르신들도 있거든요.

이예진: 네. 어쨌든 종교 갖고, 안 갖고는 자기 마음이니까요. 하지만 종교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정착하는데 큰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죠. 신에 대한 믿음은 그 다음이라는 분들도 계신데요. 다음 시간에는 종교의 지원과 혜택을 받아서가 아니라 종교적 믿음으로 종교 활동을 하신다는 분들의 얘기 들어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