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최근 한국에선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학계 등 범 사회복지계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는 선언문을 냈습니다.
부양의무제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저소득층과 장애인이라도 직계가족 등 부양의무자가 일정한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나라에서 제공하는 생계비를 지원받지 못하게 되는 걸 말하는데요.
선언문을 낸 사회복지사, 사회복지학을 연구하는 학자와 학생, 사회복지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시민단체 활동가 등 범 사회복지계는 부양의무제 폐지를 촉구하며 각 대통령 선거 후보 측에 관련 내용을 전달한다고 하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부양의무제 때문에 생계비를 받지 못하게 될까 우려하는 탈북자들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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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한국에서야 장애인을 위한 복지에 대해 이제는 누구나 당연히 여기고 장애인들도 인간으로서 누릴 마땅한 권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을 안쓰럽게 보거나 하는 편견이 아직은 있는 것도 사실이죠.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탈북 장애인들에 대한 시선은 어떤 편인가요?
마순희: 탈북 장애인들이라고 특별히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는데요. 제가 장애인이 아니어서 못 느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일반 탈북자들을 대하는 거랑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아니라면 장애진단을 받았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다를 바가 없어 보이거든요. 그리고 장애인 단체들과 서로 소통하면서 지내다보면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더 잘 챙겨주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이번에 지방에 내려갔을 때 만난 장애인협회 지부장을 한다는 탈북남성의 생활을 보면서 더욱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남성은 북한에서 군사복무 중에 사고로 한 쪽 손을 잃은 분이었는데 겉으로 보았을 때에는 의수를 하고 있어서 장애인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 한 손으로 운전도 능숙하게 하고 요리도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심성도 착하고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서 한 쪽 손이 없는 장애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요. 냉장고를 열어보니 복지관에서 가져 온다는 반찬이며 각종 식자재가 들어 있었고 쌀 포대며 식용유, 김, 위생용품 상자 등이 차곡차곡 놓여 있었습니다. 물건이 떨어질세라 보살펴 준다는 것입니다.
이예진: 탈북자 분들은 사실 한국 정착을 위한 각종 지원을 받고 있는데 장애인 판정을 받은 경우, 더 지원받게 되거나 받지 못하게 되는 혜택도 있나요?
마순희: 탈북 장애인들도 다른 탈북자분들이 받고 있는 한국정착을 위한 각종 지원을 다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장애를 가지고 있다 보니 정착하는 데는 더 어려움이 많기는 하겠지요. 물론 장애인이기에 탈북자지원 외에 한국 장애인복지법에 의해 다른 한국의 장애인들과 같은 혜택을 더 받을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받는 것이 장애수당이겠지요. 장애수당은 장애급수에 따라서 지급되는데 살다보면 이미 받은 장애급수 외에 또 다른 장애판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장애급수가 높은 기준에 따라서 수당을 받게 된답니다.
이예진: 둘 다 받는 게 아니라 수당이 더 많은 쪽을 받게 된다는 거군요.
마순희: 그렇죠. 예를 든다면 강서구에 사시는 한 남성이 청각장애 5급 복지카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후에 척추수술과 무릎수술을 받아서 지체장애 4급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장애인 복지카드를 다시 지체장애 4급으로 교환하여 사용하고 있답니다. 장애수당을 받는 외에도 허락된다면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혹은 여러 회사들에 장애인 의무고용제에 따라 취직이 용이할 수도 있고 주택공급에서도 우선적으로 선정될 수 있습니다. 또 주차장마다 장애인 전용으로 표시된 주차공간이 있어 아무리 만원주차장이라도 장애인 자리는 꼭 남겨져 있습니다. 지하철에도 어르신, 임산부, 장애인을 위한 좌석은 따로 마련되어 편의를 봐주고 있습니다.
이예진: 그게 지금 사회적인 분위기죠. 탈북하신 분 중에 장애를 가진 남성분이 지원제도 때문에 장가를 못가겠다고 하셨다면서요?
마순희: 아, 네 서울에 사시는 40대 후반의 남성을 알고 있는데요. 제가 국립의료원상담실에서 근무할 때 척추 수술을 받았었습니다. 북한에서 군사복무 하다가 허리를 다쳤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던 거죠. 그 후 군관 제대로 사회에 나와 생활하다가 어렵게 한국에 왔습니다. 괜찮을 것 같아서 조금씩 일하다가 증상이 악화되어 병원에 온 거죠. 수술밖에는 방법이 없었고 워낙 큰 수술이라 수술 후에도 몇 개월 입원해서 자활치료를 받은 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회사 근무를 하기에는 무리라고 했습니다. 장애 3급 판정을 받고 지금 생계급여로 살면서 조금씩 부업도 한답니다.
이예진: 정규적인 일을 하기는 아직 어렵다는 거죠.
마순희: 네. 그런데 아직 장가를 가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인즉 가정을 이루면 부양 의무자기준 때문에 본인은 생계비를 받지 못하게 되고 아내가 모든 경제적 책임을 떠안아야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내 뿐 아니라 근로능력자인 자식이 있어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예진: 한국의 저소득층이나 탈북자들 가운데 나라에서 지원하는 생계비를 받고 있다가도 아내나 자녀 등 가족 중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생기면 생계비 지원이 중단되는데요. 부양 의무자라는 게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말하기 때문이죠.
마순희: 사실 우리 탈북자들이 몇 년 사이에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 자신이 잘 살면서 부양의무자의 의무까지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저는 늘 하고 있습니다. 지방에 있는 장애인 협회 지부장을 맡고 있는 40대 남성의 경우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 분도 역시 40대 후반인데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알고 본즉 지금 대학에 다니면서 일을 못하고 있어서 생계비가 나오는데 만일 장가를 간다면 생계비를 받을 수 없고 아내가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로능력이 없는 같은 장애인을 배우자로 맞이하기 전에는 지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장가를 왜 가겠느냐고 우스개 소리를 하시던데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예진: 요즘 남한 토박이들 속에서도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데요. 특히 장애인 분들의 경우에는 생계비가 절실하네요.
마순희: 사실 북한에서도 나라를 위해서 군사 복무하다가 몸을 상한 영예군인들이 불편한 몸이지만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나라에서 영예군인에게 시집을 가도록 장려하는 사상사업을 하거든요. 그래서 '어랑의 안해'라던가 '내고향의 처녀들'같은 영화들도 만들고 선동사업을 하여 처녀들이 몸이 불편한 영예군인에게 시집을 가도록 권장하는 겁니다. 영예군인에게 시집가면 온갖 생활편의도 다 봐주고 입당도 시키고 하면서 사회적으로 귀감이라고 내세워주기도 했답니다. 사실 몸이 불편한 사람과 평생을 같이 한다는 것이 사랑과 함께 봉사하는 마음이나 희생하는 마음도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더 관심해주고 배려해 주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탈북민들 뿐 아니라 특히 탈북 장애인들의 부양의무제 같은 문제들이 형평성에 따라서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예진: 이런 부분을 사회적으로 부담해주는 것이 바로 복지죠. 사회가 선진화될수록 이런 부분들이 제도적으로 잘 갖춰져 있는데, 사실 한국에서도 아직은 탈북자들뿐 아니라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에 대해 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급한 것부터 조금씩 처리가 되곤 하는데, 다행인 건 탈북자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지원과 혜택도 늘고 있다는 거죠. 그렇다고 탈북자들이 지원과 혜택에만 의존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탈북 장애인들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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