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세계 1위를 기록한 한 운동선수가 자신이 정말 못하는 게 하나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놀기'였는데요. 열심히 한 가지 일만 하다 보니 휴식 시간이 주어져도 뭘 하면서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죠. 이와 비슷한 심경을 고백한 탈북자들도 있었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자유롭게 쉬는 주말, 요즘 탈북자들은 뭘 하면서 보내고 있을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올해 초에 통일부와 탈북자 정착기관인 남북하나재단이 2014년 12월까지 입국한 만 15살 이상의 탈북자 2,4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탈북자의 63%가 남한생활에 만족하고 3.4%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습니다. 남한 생활에 만족하는 이유로는 46.5%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43.3%가 '북한 생활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등이 높게 나타났는데요. 사실 새로운 사회에 정착하기까지 한 5년은 먹고 사는 데 전념하는 탈북자들이 많죠. 여가나 취미 생활에 크게 할애할 시간이 많이 있을까 싶은데, 이 조사를 보면 의식주, 여가와 취미생활 등 전반적인 소비생활에 만족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는 23.8%가 만족한다고 응답해 남한의 일반 국민 13.9% 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여기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마순희: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설문조사를 많이 하죠. 설문조사의 결과가 대한민국의 일반 국민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해서 우리 탈북자들의 의식주, 여가, 취미생활 수준이 더 높다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한국에 정착한 기간이 짧을수록 북한과 중국을 비롯한 제3국에서의 생활이 워낙 어려웠었기에 그 생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만족도를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체류기간이 오래될수록 비교대상이 한국 국민들이다보니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상대적으로는 조금 낮게 나올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불법체류자로 항상 불안한 생활을 해오던 우리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받아주고 집도 주고 정착금도 주고 일자리도 알선해주고, 이렇게 많은 배려를 주었는데도 뭔가 만족하지 않다고 대답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솔직히 조금 만족하지 못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표현을 못 했을 것도 같습니다. 어쨌든 대한민국 국민보다 만족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예진: 설문조사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니까 나중에는 또 달라질 수가 있겠네요. 특히 삶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휴식하는 주말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뭔가 하고 싶어지죠. 몇 년 전부터는 가족끼리 주말에 캠핑을 가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야외에서 천막을 치고 음식도 해먹고 하루 야영을 하는 걸 말하죠.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머무는 캠핑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캠핑이 취미라는 사람들도 늘었는데요. 남한생활에 정착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좀 없어도 남들 쉬는 주말에는 탈북자 분들도 집에만 있기 아쉬울 것 같은데 보통 탈북자 분들이 주말이 되면 어떻게 보내시나요?
마순희: 우리 북한이탈주민들도 대부분 대한민국의 여느 가정이나 마찬가지로 주말을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토요일까지 일하시는 분들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주 5일 근무잖아요? 거기에 달력에 빨간 글씨로 표시된, 법정 휴식일이 끼면 연휴가 3-5일 죽 연결될 때도 드물지 않거든요. 그럴 때면 우리들 역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운답니다. 가족끼리, 혹은 이웃과 함께, 아니면 친구나 연인과 함께 즐거운 주말을 보내죠. 한국에 처음 나왔을 때에는 주로 하나원 동기생들이나 한 고향사람들이 함께 놀러갈 때가 많았습니다. 몇 년 살다보면 이웃이나 회사 동료도 추가되고 새롭게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가족도 늘어나다보니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는 것입니다.
우리 북한이탈주민들도 주말이나 연휴 기간이면 캠핑을 가거나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족끼리 가는 분들도 있지만 두세 집이 함께 가서 텐트를 쳐놓고, 북한식으로 말하면 천막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방수가 다 되고 밑에는 수분이 올라오지 못하게 만든 매트를 까는, 어찌 보면 이동식 주택 같은 거죠. 그렇게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름휴가 철이면 강이나 하천, 산림이나 바다나 더위를 피하면서 즐겁게 놀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너도 나도 다 떠나기 때문에 일찍 떠나지 않으면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국내여행 뿐 아니라 우리 탈북자들 중에는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여인지사,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에서 운영하는 여울림합창단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북한 출신인 60대 초반의 친구는 며칠 전에 9박 10일 중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친구는 10여 년 전 중국에 있는 친척집에 도움을 받으려고 국경을 넘었답니다. 그런데 중국의 친척도 별로 넉넉지 못한 살림이라 도와줄 형편이 못되고 불법으로 찾아온 친척이 반갑기도 했지만 이웃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죠.
당시는 탈북자를 색출한다고 단속이 심한 때였고 또 주위에서 신고하면 큰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고 다행히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아 무사히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간다고 해서 저희들은 은근히 걱정을 했답니다. 아시는 것처럼 얼마 전에는 중국여행을 자제하라는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로 정세가 별로 안 좋을 때였잖아요? 그런데 북경을 비롯해서 중국의 대도시들을 실컷 유람하고 돌아왔었습니다.
이예진: 탈북자 분들이 중국에서 살았던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드시는지 중국여행만은 참 주저하는 분들이 계시던데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네요.
마순희: 그럼요. 그리고 그 친구 뿐 아니라 많은 탈북자들이 중국은 물론이고 동남아나 일본,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세계 많은 나라들을 여행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느 나라라도 여행할 수 있는 여건은 다 되기에 여행을 하는 것이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이예진: 돈이 좀 있어야 하지만요.
마순희: 돈은 벌면 되잖아요. 비행기를 평생 타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못 가졌던 저도 미국에 두 번 갔었고 지난해에는 일본여행도 다녀왔거든요. 제주도 여행도 네 번 정도 다녀온 것 같습니다. 금년 여름휴가는 어디로 갈 것인지, 아마 지금부터 여행정보를 검색하면서 준비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작년 여름휴가에 저의 맏딸 네는 손주의 친구인 아래층에 사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습니다. 아들과 엄마들이 태권도와 독서모임 등에 함께 참가하면서 친해지다 보니 여름휴가도 두 집이 함께 가더군요. 맞벌이를 하는 우리 딸이 시간이 없어서 미처 준비 못하는 부분까지 아랫집에서 다 준비를 했고 두 가정은 2박 3일 여름휴가를 멋지게 보내고 왔습니다. 여름휴가를 갔다 오면서 어른은 어른들끼리, 애들은 애들끼리 더 친해지고 함께하는 일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농촌에 연고가 없는 우리 손주와 함께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도 함께 놀러갈 정도로 두 집이 친하게 지낸답니다. 어차피 우리는 사먹는 거라 판로가 어려운 농촌의 농산물들 즉 옥수수나 된장 같은 것들도 그곳에서 사 먹기도 한답니다. 정착이 별 거 있겠습니까? 이렇게 남북한 출신이 함께 이웃으로 잘 지내다보면 자연적으로 사회통합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예진: 취미나 여가는 아무래도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서 하게 되니까요. 가장 자연스러운 사회통합의 길인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구체적으로 탈북자들이 어떤 취미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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