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학생들의 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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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이맘때가 되면 한국에선 '야~방학이다'를 외치는 아이들이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가득 채우며 방학소식을 전했는데요. 요즘 아이들에겐 방학이 예전만큼 반갑지는 않아 보입니다. 방학 때 해야 할 공부, 새로 다녀야할 학원, 체험학습 등 놀 시간도 부족하다고 푸념하는 아이들도 있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 학생들의 방학은 어떨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지금 남한에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여름방학을 맞이하는 시기잖아요. 주변에서 보면 방학 때 탈북 학생들이 하는 활동들이 많더라고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7월 말일부터 8월까지는 학교마다 조금씩 날짜가 서로 다르긴 하지만 거의 방학입니다. 서울에서는 지금 방학인데 어제 제가 군포시에 갔었는데 아직 방학이 아닌 곳도 있더라고요. 알아보았더니 메르스로 한창 들끓을 때 학교가 학업을 중지한 적이 있어서 그만큼 수업을 연장했다고 하네요.

이예진: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는 전염병이라 학교들도 쉬었기 때문에 모자란 수업들을 하는 학교들은 방학을 좀 늦게 하는 학교도 있었군요.

마순희: 네. 북한에서 제가 공부할 때에는 방학이라 하면 거의 학교에 안 나가고 소집일이라고 학교의 재량으로 10일에 한 번, 아니면 보름에 한 번 정도 학교에 나가군 했습니다. 그동안 방학숙제는 제대로 하면서 놀고 있는지, 다른 제기되는 일은 없는지 알아보는 거였죠. 지금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지 상상이 잘 안 가고는 있습니다만 한국에서 손자 손녀들을 보면서 북한과는 방학도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군 합니다. 우선 방학이라도 애들이 방학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학교수업은 아니더라도 학원에 가는 것은 그대로이니 방학 같지 않더라고요.

이예진: 그렇죠. 방학이 되면 또 방학특강이라고 해서 공부들을 더 하죠.

마순희: 네. 그래서 제가 중학교 2학년인 손자에게 방학인데 놀러 라도 가면 안 되는가 하고 물어보았더니 그러면 그동안 학원의 진도가 다 나가서 따라잡기가 더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아침부터 학교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자기가 더 배워야 할 과목이나 분야에 대하여 학원에 등록하고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기에 방학동안 더 힘들다는 학생들도 있더군요. 또 한국에서는 취업을 하거나 좋은 대학에 갈 때에 성적 뿐 아니라 사회봉사활동을 한 경력도 무시할 수 없다보니 방학동안 복지관이나 요양시설 등 기관들에 가서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프로그램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정규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여러 가지 체험학습도 하고 프로그램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상담실에서 근무할 때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요. 남한 대학생들이 여름 방학기간에 탈북학생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데 탈북학생들을 어떻게 모집해야 하는지 문의전화가 왔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그런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저희 손주도 지난겨울 방학에도 겨울캠프를 갔다 왔었는데 이번 여름 방학에도 2박3일로 캠프를 간다고 하더군요.

이예진: 야외로 가서 천막을 치고 밥도 해먹고 노는 걸 캠프라고 하죠.

마순희: 네. 그래서 그동안 밀린 학원 공부는 어떻게 하는가고 물어보았더니 갔다 와서 오후 5시면 나가던 학원을 남들보다 좀 더 일찍 나가서 공부하면서 따라잡으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학교마다 그리고 학생들의 연령이나 학교의 특성에 맞게 프로그램들을 많이 하고 있고 복지관이나 하나센터에서도 부모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조직하기도 합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양천구에서도 부모와 학생들이 함께 가는 여름가족캠프도 조직하고 또 여름방학특강을 조직하기도 한답니다. 그 외에도 영어캠프, 예절교육, 농촌체험 등 여러 가지 체험활동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아파트 밑에 층에 우리 손주와 학년이 같은 아들과 동생이 있는 가족이 있는데 우리 딸네랑 두 가족이 함께 강원도로 캠핑을 간다고 합니다.

지난해 여름 방학에는 두 집의 아들들이 배낭여행처럼 그 친구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경상도에 배낭여행도 갔다 왔답니다. 사실 우리 손주처럼 탈북학생들인 경우에는 시골에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놀러가 보는 것은 거의 생각을 못하고 있으니까 갔다 와서 엄청 좋아하였고 또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이예진: 그런데 요즘 남한의 엄마들은 농담 반 진담 반처럼 방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들 말합니다. 물론 방학이 돼도 아이들은 학원 다니기에 바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신경 쓸 것도 많고 챙겨줘야 할 것도 많으니까 아무래도 더 피곤하겠죠. 탈북 학생들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마순희: 탈북자 가정의 부모와 학생들 사이도 역시 남한의 일반가정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집집마다 상황이 서로 다르기는 하겠지만 애들이 중학생이거나 하면 그래도 걱정이 덜한 편일 것 같네요. 하지만 초등학생을 둔 엄마들이 맞벌이를 하는 경우는 걱정이 더 되죠. 학교에 갈 때에는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방과 후에 학원으로 가면 그래도 애들이 거의 틀에 짜인 생활에 묶이다 보니 애들은 힘들다고 하지만 부모로서는 걱정은 덜 하겠죠. 하지만 방학동안 오전에 실컷 늦잠을 자고 차려놓은 밥을 먹고 학원에 가든가 아니면 오후에 학원에 가다보니 그 시간 동안은 스스로가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남자애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게임에 빠져서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유시간이 많아지면 그동안에 공부를 하는지, 운동을 하는지, 게임을 하는지 어떻게 단속할 방법이 없거든요. 저희 집도 마찬가지랍니다. 우리가 다 일하러 나가면 혼자 남은 손자는 차려놓은 밥도 안 먹기 일쑤고 주말마다 한다는 게임도 역시 믿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도 학원엔 꼬박꼬박 나가고 공부도 잘 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죠.

이예진: 방학동안 일하는 엄마들의 공통된 고민일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탈북과 남한 정착'은 사실 인생에 있어 큰 모험과 같죠. 엄마나 아이나 모두 힘들긴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데, 일하는 엄마를 둔 탈북 청소년들, 고민이나 스트레스 같은 게 더 많지 않을까 싶네요.

마순희: 그런 사례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을 닮아서 그런지 의외로 정신력은 강한 애들이 많습니다. 우리 동네에 아빠와 엄마가 8세, 11세 된 두 아들을 데리고 한국에 정착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두 아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서 적지 않게 속을 썩였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참 지혜로운 여성이었습니다. 친구들끼리 싸우고 들어와서 어머니에게 하소연하는 아들의 말을 들어보면 분명히 잘못한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아들을 편들 수만은 없더랍니다.

그래서 친구와는 싸우는 게 아니라고 가볍게 타이르고 그 이후부터는 일부러 친구들을 집으로 청해서 맛있는 간식도 주고 함께 놀이도 하면서 애들이 친할 수 있게 도움을 준 거죠. 그랬더니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까지 학생회장을 계속하더니 그 친구가 자라서 지금은 어엿한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이예진: 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누구나 크고 작은 갈등을 겪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지'하고 한숨만 쉴 게 아니라 말씀해주신 사례에서처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를 지혜롭게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탈북 어린이들이 남한에 정착하면서 겪는 고민들을 자세히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