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어떤 갈등이든지 그 갈등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의 입장이 다 다르고, 그래서 해결방법도 다 다르다고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탈북 가정에서 겪는 갈등도 마찬가지인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 가정에서의 갈등,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뭘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어려서 한국에 오면 적응이 좀 빠른 것 같은데, 다 큰 자녀가 특히 부모와 겪는 갈등은 해소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마순희: 어린 자녀들과는 달리 다 큰 자녀들이다보니 자기 주견과 생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지 않습니까? 그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한 단체에서 일하시던 선생님의 사례를 들어보면, 그 선생님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북한에 아들을 두고 왔었고 10여 년이 지나서야 아들을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추우나 더우나 기쁘고 슬플 때 언제나 그리던 사랑하는 아들을 만나게 된 그 선생님은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무리수를 두면서도 어렵게 면회를 신청하였습니다. 10여 년 사이에 키 넘게 자란 20대가 다 된 아들의 모습은 대견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습니다.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쁨에 넘쳤지만 그 시간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예진: 왜 그랬을까요?
마순희: 한국에서 잘 정착하고 있는 다른 또래들에 비해 볼 때 아들은 아무리 이해하고 보아도 부족하기만 했고 마음에 차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 잔소리도 하고 참견도 하였더니 아들은 자신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려보던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누구 때문에 내가 제대로 학교도 못 가고 이런 형편이 되었는지 아는가 하는 반발심에 엄마와 엇서 나갔습니다.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 생활이 계속되자 하루하루가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면서 저에게 동료 상담을 요청하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공감하고 눈물도 흘리면서 마음을 나누었고 해결점을 찾아 나갔습니다. 결론은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지켜봐주고 말없이 배려해 주는 나날이 흘렀고 지금은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예진: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10년 동안 나를 어떻게 버리고 갔을까 하는 원망도 있을 것이고요. 10년이라는 세월을 메우기 쉽지 않았을 텐데 현명하게 해결을 잘 하셨네요.
마순희: 네. 그 외에도 14살 때 두고 온 딸이 새 가정을 이룬 엄마를 찾아와서 아빠와 동생과 어울리지 못하고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는 가정도 있었습니다. 그들도 몇 차례의 상담도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시간'이었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도저히 봉합될 것 같지 않던 가족들도 화목을 되찾게 되고 각자의 생활을 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가족이기에 가능한 화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예진: 가족이니까 서로 이해하고 참을 수 있는 마음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결국은 어떤 문제든 풀 수 있는 열쇠는 자기 자신이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부모나 자녀 모두 각자 남한 적응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두려움을 해결하기도 전에 다른 환경에 놓인 가족 간에 부딪치는 일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부모자식 간에 불화도 생기고 하지 않을까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적응에서 어려움이 없다면 갈등도 훨씬 적었겠죠. 그러나 반드시 거쳐야 할 적응, 정착이라는 관문이니까 그 과정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한국에 금방 오신 분들이 가족을 데려오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럴 때마다 그 분의 사례를 잘 들어보고 조언을 해줍니다. 물론 각자의 인생에 정답이 어느 하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설명해드리는 것입니다.
한국에 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먼저 온 사람이 어느 정도 정착을 하고, 후에 오는 사람이 믿고 적응해 나갈 정도가 된 후에 데려와도 된다면, 그런 갈등을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도 적응하기 힘들고 취직도 못하고 건강도 안 좋은데, 가족을 무조건 데려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봐요. 그 가족이 당장 생사가 위험하거나 절박한 사정이 아니라면 조금 더 기다리게 하고 그동안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다소나마 준비하고 맞이하면 본인도, 후에 오는 가족도 조금은 덜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가족이 함께여서 더 든든하고, 힘이 되고, 도우면서 빨리 적응해 나갈 수 있는 조건이라면 물론 시간을 끌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각자가 모두 힘들었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자기 자신이 겪는 아픔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기가 쉽거든요. 그래서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하게 되는 거죠.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도 느끼게 되는 거죠. 힘든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구나 하구요.
아무튼 가족 문제가 복합적인 것이어서 딱 이것이다, 하고 정답을 내릴 수 있는 수학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답도 해결방법도 여러 가지일수가 있는 것이니까요.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후회를 남기는 경우도 있기에 저는 상담을 하면서 원칙을 꼭 지키려고 노력한답니다. 이런저런 방도를 설명해주지만, 선택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몫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거죠.
이예진: 네. 선택은 본인이 하는 거죠. 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에는 그래서 무엇보다 배려가 중요할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우선 서로가 현실을 인정해야죠.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는 잘 안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노력하노라면 나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식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의 마음도 이해하게 되고 부모들 역시 북한식 가부장적인 가족문화에서 벗어나 내 자식이라도 인격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고요. 서로 부족함은 채워가고 힘든 일이 생기면 대화로 풀어가면서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행복한 정착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들도 그렇게 커나가더라고요.
이예진: 사실 그건 탈북가정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죠.
마순희: 항상 이야기하다보면 집 얘기가 나오는데요. 바로 어제입니다. 둘째 딸한테 오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완전 감동을 받았다고 하네요. 웬일인가 했더니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일정대로 강원도로 떠났는데 집에 돌아 왔더니 고등학교 딸이 집안을 말끔히 쓸고 닦고 했더랍니다. 엄마 고생하시는데 뭐라도 보탬이 되어야 한다면서요. 손녀가 학원에 다니는데 학원비가 한 과목당 30만원이랍니다.
이예진: 학원비가 요즘 비싸죠. 250달러가 넘네요.
마순희: 그런데 손녀가 하는 말이 그 동안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법을 터득했으니 이제부터는 학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겠다고 하더랍니다. 엄마가 힘들게 일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고 열심인 딸이 기특하다고 전화가 온 것입니다. 처음에 그 애를 한국에 데려왔을 때에는 여섯 살이었는데 이젠 이렇게 성장했구나 싶어서 저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부부사이나 부모와 자녀사이에서 어려운 일들이 생길 수 있지만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서로 이해하고 대화로 오해를 풀어나가면서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풀어나간다면 풀리지 않을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예진: 네. 탈북자들이 일단 한국에 오고 나면 가족부터 빨리 데려오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갑니다만, 자기 자신이 불안정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아무리 가족이라도 그 마음을 헤아려주기가 쉽지 않아지죠. 그래서 탈북 가정이 안정을 찾고 화목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배려의 마음으로 서로에게 화가 나고, 다그치고 싶어져도 먼저 서로에게 시간부터 주시면 어떨까요?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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