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이 자가용을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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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한국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로망'이 하나씩 있다고 말합니다. 프랑스어의 낭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언젠가는 이루고 싶은 나만의 작은 소망'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들의 로망은 뭘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선생님, 요즘 본격적인 운전 전에 연습해보는 도로연수 중이라면서요?

마순희: 아 네, 11년 장롱면허 탈출중입니다.

이예진: 11년 전에 면허는 따놨는데 실제로 도로 위에서 운전을 해본 적은 없다는 말씀이시죠?

마순희: 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운전면허증을 따는 것은 필수라고 해서 면허증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50대 중반이라 쉽지는 않았지요. 이론은 첫 번에 합격했는데 실기가 문제더라고요. 북한에 있을 때에는 운전은 고사하고 화물차나 뜨락또르 운전석 옆에 앉아 본 기억도 몇 번 없는 제가 승용차를 몰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고 열심히 노력해서 실기와 도로주행까지 거쳐서 면허증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아마 한국에 온 다음해인 2004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제가 차를 몰 생각을 거의 잊을 정도로 살아 왔던 것 같습니다.

세 딸과 사위가 모두 차를 가지고 있고 운전하고 있는데 구태여 저까지 운전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필요하면 언제든지 가고 싶은 데로 가거나 하는데 대중교통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회사에 다닐 때에는 출퇴근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이 회사 앞까지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굳이 승용차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시는 것처럼 제가 퇴직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착한사례발굴이라고 대한민국에 잘 정착한 탈북자들을 찾아 가는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고정된 출퇴근이 아닌 이곳, 저곳에 자유자재로 다녀야 되거든요. 한국에 나와서 줄곧 서울에서만 살면서 교통이 너무 편하다보니 승용차를 이용할 생각을 못했는데 지방에 나가보니 서울이 얼마나 교통이 잘되어 있는지를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승용차 생각이 났고 나도 한 번 도전해 보게 된 것이랍니다.

이예진: 서울은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죠. 지방은 아무래도 버스도 드문드문 오고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있죠. 그래서 지금 도로연수 중이시라는 건데 어떻게 할 만 하신가요?

마순희: 사실 운전이라는 게 면허증을 따면서 시작해야 하는데 그 동안의 공백기가 너무 많다보니 새롭게 배워야 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도로망이 어느 정도 발전되고 차가 얼마나 많은지는 선생님도 잘 아시잖아요? 다른 사람들의 차를 타고 다닐 때는 전혀 신경도 안 썼던 문제들이 제가 직접 몰아보니 신경 써야 할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그렇지만 모두가 하는 운전을 나만 못하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연수하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서울에서 12년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편한지를 전혀 느끼지도 못하고 살았던 것 같기도 해요. 버스를 타려고 버스정류소에 나가면 몇 번 버스가 몇 분 후에 도착하는지 정보를 계속 알려주고 있고 지하철 역시 오고가는 시간을 항상 알려주기 때문에 불편한 줄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예진: 전광판에 다 나오죠.

마순희: 네. 더욱이 출퇴근 시간이 되면 버스전용차로가 있어서 승용차로 가는 것보다 더 빨리 출근할 수 있어서 굳이 승용차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이예진: 출퇴근 시간에는 자동차가 많아서 막히죠.

마순희: 네. 그런데 퇴직하고 지방에 나가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지방에는 서울보다 교통이 그렇게 편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무리 시골이라도 도로포장은 다 되어 있고 버스는 계속 다니고 있어서 비포장도로에서 먼지만 말아 올리던 우리 고향의 도로 사정에는 비길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승용차 생각이 나는 거예요. 아, 이제는 회사도 안 다니니까 시간도 있고 하여 그동안 못했던 운전연습이나 해볼까 하고 시작한 거죠.

이예진: 남한에서야 만 18세 이상 되면 기본적으로 운전면허자격증을 취득하죠. 생활에서나 사회적으로 운전할 일들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탈북자 분들에게 운전면허 따는 일은 어떨까 싶은데, 우선 이론 시험을 보잖아요. 용어 같은 것도 영어가 많고, 못 알아듣는 말도 많을 것 같은데 어려워들 안 하시나요?

마순희: 지금은 하나원에서 운전면허 취득을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저희 때에는 남성들만 이론 교육을 시켰고 여성들은 운전면허교육에서 제외되었었습니다. 그래도 사회에 나오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컴퓨터와 운전기술인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차를 몰고 다닙니다. 저는 항상 그게 대단해 보였습니다. 제가 직접 면허시험 준비를 해보았는데 용어가 어려울 것 같아도 생각처럼 어렵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이예진: 그래서 많은 탈북자 분들이 운전면허를 따고 있다는 거잖아요. 탈북자분들의 운전면허증 취득율, 높은 편이죠?

마순희: 그럼요. 젊은 사람들은 거의 다 운전면허가 있고 승용차를 운전하는 거죠. 제가 보기에도 젊은 층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승용차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는 한 세대에 차가 두 세대 있는 가정도 있었습니다. 화물차, 오토바이, 승용차 이런 식으로요. 오죽하면 대한민국에 와서 승용차를 몰고 다녀야 '내가 참 잘 왔구나' 하고 말한다는 이야기가 있겠습니까?

이예진: 탈북자 분들 사이에서 그렇다는 말이죠?

마순희: 네. 제가 보기에는 대학에 다니거나 하는 청년들을 제외하면 젊은 층들은 거의 모두가 운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요. 나이 드신 분들도 자가용은 거의 타고 다니더군요.

이예진: 탈북자들의 운전면허증 취득율이 높은 이유는 뭘까요?

마순희: 사실 북한에서 승용차는 권력의 상징이라고 봐야겠죠. 지금은 잘 사는 사람들은 승용차를 다 가지고 있다고 하기는 하는데 제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군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었을 것입니다. 군당책임비서, 행정위원장, 군 농촌경영위원회 위원장이나 군 안전부장 그리고 무산광산에서는 지배인, 부지배인들 정도 등 손꼽을 정도였으니까요. 그것도 개인차가 아니니 마음대로 끌고 다닐 수도 없었지요. 그러다 보니 승용차가 당연히 희망사항이 되고 너도나도 차를 몰고 다니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간혹 친구들끼리 말하군 합니다.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요. 지금의 생활수준이 군당책임비서 부럽지 않다는 말을 해요. 세상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것이고요. 더욱이 여권을 떼고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외국여행도 비행기타고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여기가 천국이 아니고 무어냐고 한답니다. 그러기에 승용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필요성에 의해서기도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한 번 실감시켜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예진: 그래서도 더 열심히 돈을 버는군요. 차도 사고 여행도 가야 하니까요.

마순희: 저도 가끔 딸이 탄 차에서 음악으로 딸이 부르는 노래가 나올 때 이게 천국이구나 싶어요.

이예진: 행복한 순간이네요.

마순희: 네. 나이 드신 분들도 승용차를 타고 바닷가나 관광지에 함께 놀러가면서 이대로 쭉 이 차를 몰고 고향으로 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큰 화물차에 라면과 생필품을 한 차 가득 싣고 가서 자기가 살던 아파트 밑에 세워놓고 '주민여러분, 00동 00호에 살던 000입니다. 모두 내려와서 라면 한 상자씩 가져가세요'하고 소리치겠다는 것입니다. 모두 웃었지만 정말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원이라고 공감하는 것입니다.

이예진: 자가용이 가장 행복한 용도로 쓰이는 순간이 아닌가 싶네요. 다음 이 시간에는 탈북자들이 운전하면서 겪는 각종 사례를 좀 더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