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or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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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기, 마음고생이 많았겠다 싶으면서도 듣다보면 웃음이 터지는 대목들이 있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적응이 안 돼 겪는 실수담과 대처법 알아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선생님은 그동안의 많은 상담 경력을 바탕으로 막 한국 사회에 나온 탈북자 후배들에게 조언을 많이 해주고 계시잖아요. 막 나온 탈북자들부터 아직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얘기들을 한 번 해보죠. 먼저 개인마다 다 다르지만 한국에 와서 이런 건 참 적응하기 힘들다, 하는 것들 꼽아볼까요?

마순희: 한국에 처음 나온 탈북자들에게는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크게 몇 가지를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네요. 언어의 장벽, 취업문제, 문화적 차이 등 70여 년을 서로 갈라져 살아왔는데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그 중에서도 언어의 장벽을 한국사회에 정착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남과 북은 한민족이고 다 같은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 70여 년을 단절되어 살아오다보니 언어에서도 차이점이 적지 않거든요. 제가 탈북자로서 남북한을 다 같이 살아보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북한은 그래도 고유한 조선어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다보니 순수한 우리말을 더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영어나 외래어가 너무 많아서 처음에는 정말 어렵더라고요. 물론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그런 영어나 외래어에 대하여 많이 배우고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단기간에 배워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더군요. 저처럼 나이를 먹고 한국에 온 사람들 경우에는 거리에 붙어있는 가게 이름이나 간판들을 보아도 뭐가 뭔지 처음에는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컴퓨터 클리닉, 아모레 퍼시픽, 아웃도어, W몰, 000가든, 웨딩홀, 슈퍼마켓, 마트 등 영어로 된 가게 이름들은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겠더군요. 거기에 북한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부동산사무실이 곳곳에 있고 변호사 사무실, 법무사 사무실, 여러 가지 상담소들도 생소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거기에 말투까지 다르다보니 모르는 것이 있어도 선뜻 물어보게 되지도 않더라고요. 물론 젊은이들 경우에는 저희들보다 좀 낫기는 하겠지만 대학 생활이나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외래어나 영어 때문에 곤란할 때가 한 두 번씩은 다 있었다고 하더군요.

제가 얼마 전에 만났던 외국어대학을 졸업한 한 여성은 탈북해서 중국에서 한 5년 정도 살았는데 오히려 중국에서 살 때보다도 한국생활이 더 힘들더라고 얘기하더라고요. 물론 그 여성분도 다 같은 조선말을 하는 대한민국이니까 그래도 중국보다는 낫겠지 생각했는데 중국에서는 몰라도 내가 중국말을 모른다는 게 너무 당연한 거라 가끔 몰라도 크게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 같은 한 가지 언어를 쓰는 대한민국에 와서 자신이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 그렇게 한심하게 느껴지고 좌절감까지 가져오더라는 거죠. 가령 펜션이나 패션, 어느 것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 혹은 콘도나 콘돔 등도 헷갈려서 말하기 전에 한참씩 속으로 생각해야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예쁜 서울말을 쓰는 것을 보면 돌아서서 남들이 안 볼 때 혼자 한 번씩 다시 외워보기도 하면서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제가 만났을 때 그 여성분은 외국어대학을 졸업하고 프리랜서로, 소속 없이 자유롭게 방송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누가 보아도 서울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말씨가 예뻤습니다. 회사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도 어려움은 역시 비슷했습니다. 미처 잘 알아듣지 못해서 카피를 해오라고 하는데 커피를 타 온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이예진: 카피는 복사를 해오라는 뜻의 영어고, 커피는 마시는 음료를 말하는데 처음 들으면 헷갈리겠네요.

마순희: 그런 말들이 참 많습니다. 저도 역시 민간단체에서 일할 때에 사무실에서 흔히 쓰는 말인 프린터, 토너, 호치키스 등도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특히 어린학생들 경우에는 남한에서 나서 자랐다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놀이문화나 사소한 물건 이름이나 캐릭터들, 등장인물이죠. 그리고 노래하는 젊은이들 집단을 아이돌 그룹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도 전혀 모르다보니 처음에는 함께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오죽하면 부모들이 자녀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간식도 사주면서 애들과 잘 지내도록 하고 여러 가지 놀이를 함께 하면서 애들에게 놀이문화에 적응하도록 하시는 부모들도 있더라고요.

저희들도 처음에 나왔을 때 식당에 갔다가 그런 어려움을 당한 적이 있거든요. 다른 식탁에는 다 식수들이 있었는데 저희는 아무리 앉아서 기다려도 물을 안 주더군요. 그래서 우리 딸이 기다리다 못해서 '물은 안 주나요?'하고 물었더니 서빙하는 사람이 '물은 셀프입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셀프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혹시 기다리라는 말인가 해서 마냥 기다렸었는데 후에 알고 보니 물이 셀프라는 것은 자신 스스로 가져다 마시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참 저도 서빙이라고 자연스럽게 말이 나갔는데 북한에서 말하면 식당에서 접대하는 것을 말하잖아요? 정말 처음에는 몰라서 겪는 웃지 못 할 이야기들도 많았습니다.

이예진: 선생님 말씀 듣다보니 남한에서 사용하는 외래어나 영어가 무척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처음에는 정말 못 알아들었을 것 같네요. 낯선 사회 적응이 어렵다, 사실 이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문제일 겁니다. 남한 사람들도 해외에 나가면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그런 건 탈북자분들도 그렇고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 많이 배운다고 하루 이틀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더군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되기도 합니다만 컴퓨터나 신형 휴대폰을 사용한다든가 하는 것은 배우지 않으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해결이 안 되는 거죠. 노력해서 배우지 않으면 저절로 알아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다보니 한 번 배워주면 까먹기가 일쑤여서 여러 번 반복하면서 숙련하지 않으면 절대로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저도 컴퓨터로 작업을 하다보면 모를 것이 있을 때에는 딸에게 항상 물어봅니다. 그런데 한 번 배워 주었는데도 다음에 그 작업을 하려면 또 깜깜인 것입니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바쁜 사람 불러놓고 매번 알려달라고 하기가 그래서 배워줄 때에 명심해 듣고 적어놓기까지 하는데도 잘 안 되더라고요.

어떤 때에는 우리 딸이 내가 물어보면 잘 안 가르쳐 준답니다. 그래서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몇 번 내 힘으로 씨름하면서 작업을 하다보면 그렇게 익힌 것은 잊어먹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그 때에야 우리 딸이 '엄마, 내가 알려주어서 얼른 작업하면 빠르기는 하겠지만 다음에 또 생각이 안 난다고할 것 같아서 시간이 걸리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안 가르쳐 주었는데, 이 딸이 많이 얄미웠죠?' 하더라고요. 사실 좀 안다고 재세하냐 하는 말이 나올 뻔도 했지만 제 손으로 터득하고 난 다음에는 오히려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 할 정도로 감사하죠. 컴퓨터를 쓰면서도 단축키를 사용하면 복사하고 붙이기하고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데 그것이 쉽게 외워지지가 않는 거예요.

이예진: 저희 아버지도 스마트폰 사용법을 매번 물어서 퉁명스럽게 가르쳐드린 적이 많은데 반성해야겠네요. 어르신들도 그런데 사회체제까지 다른 탈북자들에게는 여러 가지가 훨씬 더 풀기 어려운 문제일 것 같은데요. 그래서 남한에서도 국가적 지원과 혜택, 또 크고 작은 도움을 주는 사회복지사, 선생님 같은 상담사들이 정착에 필요한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그래도 같은 경험을 했던 선배 탈북자들에게 듣는 조언은 또 다르게 와 닿는다고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