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둘이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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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과거에는 중국을 오가던 북한 주민들 중에 한국에 대해 알게 돼 홀로 탈북하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요.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가족단위로 탈북하는 경우가 더 늘었습니다. 다 같이 남한이나 제 3국에 정착해 안정적으로 새로운 인생을 사는 탈북자들도 있지만 가족이 탈북하는 과정 중에 뿔뿔이 흩어져 가족의 생사 여부를 알지 못해 애태우는 탈북자들도 있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으로 흩어진 가족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선생님 주변에도 탈북으로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으시죠?

마순희: 제가 수 년 전 국립의료원에 있을 때 정신과 치료를 받는 젊은 여성이 있었어요. 그 여성은 어머니랑 함께 왔는데 브로커를 통해서 북한에서 가족들을 데려오게 되었답니다.

이예진: 브로커라고 하면 돈을 받고 탈북을 돕는 중개인을 말하죠.

마순희: 네. 그렇게 이모랑 조카들이랑 함께 오고 있었는데 일이 잘 안 되어 조카들이 도로 잡혀 나가게 되었답니다.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이렇게 되다보니 매일 자식들 근심하며 눈물짓는 이모나 어머니 보기도 힘들고 그러다보니 먼저 선불한 브로커비용을 받을 생각도 못하고 있답니다. 본인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정신과치료를 받게 된 거죠. 물론 몇 년 후에 조카들은 다시 한국에 오기는 했지만 그렇게 함께 떠나도 함께 도착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일이라 예상치 않은 가족 이별상황이 되더군요.

이예진: 탈북과정 자체가 일단 목숨을 건 탈출이다 보니 이렇게 가족 간의 생이별이 벌어지기도 하죠. 그렇게 생사를 알 수도 없이 탈북과 함께 헤어지게 된 가족에 대한 걱정은 아마 다시 만날 때까지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탈북으로 가족이 흩어진 분들 중에 부부가 남과 북으로 헤어지게 된 경우, 어느 한 쪽이 다른 가정을 이뤄서 문제가 되는 경우들도 가끔 있죠?

마순희: 그런 사례들이 예상외로 많습니다. 얼마 전에 지방에 있는 알고 지내는 남성의 상담 전화가 왔었는데요. 그분도 전해들은 바에 의한다면 한국에서 부부로 살던 여성이 중국에 갔다가 몇 달째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북한에 도로 잡혀갔다는 소문도 있었고요. 얼마를 더 기다리다가 돌아올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남편이 다른 여성과 만나서 동거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여성이 돌아온 거예요.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모르지만 여성은 남편을 고소했고 법정공방 끝에 남편이 위자료로 3000만원, 3만 달러를 지급하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답니다. 그런데 그 여성이 또다시 남편을 상대로 다시 고소하겠다고 회사까지 찾아오는 등 어려움이 많아서 법률상담을 받아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북하나재단에서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마다 하고 있는 무료법률상담에 예약할 수 있도록 연락처를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법원의 판결로 3000만원을 위자료로 지불했다면 같은 내용으로 다시 소송을 하더라도 중복처벌은 받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이예진: 아내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다른 여성을 만났던 탈북 남성이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아내에게 죄스러운 마음으로 위자료,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정신적 고통이나 피해를 준 경우 이를 배상해주는 금액으로 3만 달러를 주고 관계를 정리했는데, 나중에 다시 고소를 하겠다는 전 아내에 대한 법률상담을 했다는 건데요.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쪽 입장이 모두 안타까운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마순희: 네. 또 다른 사례도 있었습니다. 지방에 살고 있는 한 남성의 이야기입니다. 북한에 살 때 처가 두 여성과 함께 도강을 하게 되었는데 그 날 밤 총소리가 요란하고 셋이 모두 죽었다는 소문이 돌게 되었습니다. 1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정말 처가 죽은 줄 알고 한 마을에 살던 혼자 사는 여성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함께 한국에 나오게 되었으니 자연히 둘은 부부로 인정이 되고 지방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KBS방송의 "남북의 창"이라는 프로그램에 이 남성의 정착사례가 TV로 나가게 되었는데 중국에 살던 처가 그 것을 보게 되었답니다. 남편을 찾아서 한국에 왔더니 자기는 죽은 사람으로 되어 있고 다른 여성과 혼인신고가 되어 있었던 거죠. 그래도 후에 살던 여성은 자식까지 낳고 살던 본처가 왔는데 자기가 물러난다고 혼자 나가서 살고 다시 본처와 가족관계를 정리하고 살게 된 사연입니다. 물론 평탄하게는 살기가 힘들지만 서로가 이해하면서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예진: 부부가 북한에서 같이 살다가 혼자 나온 경우에 이렇게 새로운 가정을 이루면서 생기는 문제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 이런 문제들은 더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나마 요즘 이산가족 정례화가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죠. 전쟁 이산가족부터 최근의 탈북으로 인한 이산가족들 모두 바라는 점들, 있지 않을까 싶네요.

마순희: 전쟁 이산가족들 경우에 고령화가 심각하잖아요? 이번 이산가족상봉도 1년 8개월 만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산가족상봉의 정례화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만나자고 손가락을 걸고 맹세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구급차를 타고 가야 하는 분들의 영상도 보면서 '그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하고 함께 마음이 아픕니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이산가족 66,488명 가운데 80대가 53.9%, 90대 이상도 11.7%라고 하고 해마다 4,000여명의 이산가족들이 사망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는데요. 정말 그 분들의 절박한 사정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 이산가족들뿐 아니라 우리 탈북자들도 하루 빨리 통일이 되기를 고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가슴 아픈 사연들을 안고 어쩔 수 없이 편지 한 장 남기지 못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인데, 한 해 두 해 세월만 흘러가고 언제면 만날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한국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다가도 문득문득 고향생각만 하면 먹던 밥도 목이 메는 것이 우리 탈북자들입니다. 통일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이산가족상봉, 화상상봉이라도 정례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그리고 서로 생사확인이라도 할 수 있게 전화 통화나 서신서래라도 허용되어 분단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우리 이산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을 빌어봅니다.

이예진: 사회주의 경제 실패로 노동자가 한 달간 버는 돈이 31달러에 불과한 쿠바에서는 탈출 행렬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한두 집 걸러 한 명이 쿠바를 떠났을 정도라는데요. 그렇게 미국에 정착한 200만 명의 쿠바인은 연간 30억 달러를 본국의 가족에게 송금하고 있고,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로 공식적인 송금은 더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쿠바 국민들은 주말에 미국에 정착한 가족을 만나러 미국에 놀러갔다 오는 상상을 한답니다. 하지만 남과 북에 헤어져 사는 한반도의 이산가족들은 서로의 소식만이라도 알기를 바랍니다. 잘 살고 있는지 종종 안부만이라도 전할 수 있다면 6. 25 전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이나 탈북으로 인해 헤어진 가족들 모두의 슬픔은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요?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