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대한민국, 그러니까 남조선에 정착한 탈북자 숫자가 3만 명이 넘어가면서 북한 주민들에게도 한국이 어떤 곳인지, 살 만한지, 어떻게 가는지 등에 대해 전보다 더 많이 알려졌을 텐데요. 낯선 사회에 발을 내디딘 탈북자들에게 정보는 참 중요합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남한살이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처음 들을 수 있는 곳, 하나원에서의 이야기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탈북자 수는 2005년 이후 증가 추세를 유지하다 2012년을 기점으로 다소 감소하더니 올해 들어 다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선생님 때와 지금 하나원 퇴소하는 동기생들 수가 많이 달라졌나요?
마순희: 그럼요. 저희들 때에는 기껏해야 한 기수가 본원과 분원 합하여 60-70명이었는데 여 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200명-300명씩 들어오거든요. 요즘은 제가 하나원에 들어가지 못 하지만 우리 탈북자출신 중에서 전문상담사로 일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매 기수마다 하나원에 들어가서 취업상담을 해주고 있는데 그 선생님들을 통하여 알게 되는 거죠.
이예진: 북한을 탈출해서 한국에 와야겠다고 마음먹는 분들 중에 하나원에 대해 들어서 알고 계신 분들도 있나요?
마순희: 지금 한국에 오시는 분들은 거의가 한국에 대해서 알고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먼저 한국에 도착한 가족들이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다보니 한국에 나오면 얼마동안 조사를 받고, 어디서 얼마나 어떤 교육을 받고 나오는지, 탈북자 지원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비교적 상세하게 알고 나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오래 살아왔더라도 직접적으로 듣지는 못하고 소문만 듣고 온다던가 하는 경우에는 브로커가 일일이 다 알려주지는 않지요. 저희들이 올 때는 물론 13년 전이기는 하지만 TV로 스페인 대사관에 탈북자 20여 명이 달려 들어가는 영상만 보고 오다보니 전혀 정보를 모르고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영사관에만 들어가면 인차 한국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목숨 걸고 뛰어들었더니 영사관 안에 70여 명이 생활하고 있더라고요. 2-3개월은 있어야 한국에 갈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우리 딸들은 너무 기가 막혀서 엄청 울었답니다. 젖먹이 자식들을 두고 떠났는데 한시가 급하지 않았겠어요?
이예진: 그렇군요. 고향을 떠난 일도, 낯선 땅에 발을 들일 일도 모두 두려운 일이었을 텐데, 한국사회에 바로 안 나가고 하나원에 몇 달 있어야 한다니 석 달 가량 되는 기간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순희: 사람 사는 곳은 다 같잖아요? 하나원 생활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리가 조금하건 말건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가는 것이니까 그냥 체념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원에서 하고 있는 일정에 맞추어서 기왕 있는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거죠. 우리 호실에는 식구들만 지냈는데 호실마다 텔레비죤도 다 있고 컴퓨터도 있었죠. 딸 셋이랑 함께 살다보니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한 사람만 컴퓨터를 할 수 있으니까 하다가 짬이 나면 하고 그러다가 안 되면 시간을 정해놓고 연습하는 겁니다. 저는 애들이 다 자는 밤에 할 때도 있었고요. 그렇게 조급한 마음을 무언가에 열중하면서 조금씩 완화시켰다고 봐야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우리 식구들은 맏딸은 하나원 사회 적응교육 기간 중에 하나원에서 시행한 기초소양, 외래어, 한자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우리 막내딸은 컴퓨터 수업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 자랑 같아서 좀 쑥스럽긴 해도 저도 하나원 생활기간 생활에서 가장 모범적인 한 명에게 주는 안성문화원 원장의 상장을 제가 받았거든요. 그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대한민국은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평가를 받는 나라라는 것을 이론이 아니라 현실로 깨닫게 되었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이 하나원 교육이 필요하다, 불필요하다 말을 할 때에도 저는 이런 말을 합니다. 만일 하나원 교육기간이 없었다면 우리는 정말 땅에 발을 붙이지 못 하고 현실 착오적인 꿈속에 빠져 구름위에 떠있는 것 같은 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나오면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줄 알고 있었기에 그 마음이 일정한 정도라도 차분하게 정화가 되지 않고 나간다면 어려움에 닥쳤을 때 좌절하는 마음도 더 크리라고 생각합니다.
실례로 우리가 국정원에서 조사를 마치고 대기상태로 있을 때 아마도 우리 호실이 3-4층 정도가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 때 창밖으로 큰 도로가 내려다보였는데 하도 할 일이 없으니 1분 동안에 차가 몇 대나 지나가는지 헤어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너는 어떤 차를 가지고 싶니? 나는 저 차, 나는 저기 하얀 색깔, 나는 빨간 차가 더 예쁜데'라고 하면서 마치 나가기만 하면 그 차가 금방 내 차가 되는 것으로 착각을 했던 거죠. 집도 '너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나는 아파트 나는 저기 보이는 외곽의 단독주택, 우리 둘째딸은 복층인 주택에서 살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허황한 무지개 꿈들이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하나하나 수정되어갔고 특히 탈북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정착해야 할 대한민국이 결코 쉽게 정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예진: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거잖아요. 누구나에게 2층짜리 집을 산다는 건 쉽지 않죠. 그런데 또 중국에 나와 숨어 살던 분이 하나원에 대해 전화로 문의한 경우도 있었다면서요?
마순희: 네 그렇습니다. 제가 남북하나재단 종합상담센터에서 근무할 때 상담센터로 국제전화가 온 적이 있습니다. 어느 프로그램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라디오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저와 상담을 해보고 싶다고 하더랍니다. 전화하신 여성분은 나이가 저처럼 60대라고 하더군요. 궁금한 것이 있어서 같은 나이라고 하니 저하고 통화하고 싶었다면서 이야기를 하더군요. 탈북한지는 10년이 넘었고 지금 중국의 어느 한 도시에서 딸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합니다. 딸은 중국말도 잘 하고, 애들도 있고, 이제는 중국에서 걱정 없이 살고 있는데, 자기는 아무리해도 중국에 마음을 못 붙이겠다고 한국에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중국에 오래 있던 사람들은 한국에 가면 아무 지원도 없다고 하는데 정말인지, 나처럼 나이 먹은 사람도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등등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았습니다.
아마도 그 분이 비보호 탈북자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자세히 설명해드렸습니다. 원래는 체류국에서 10년 이상 체류한 사람들은 생활기반이 그 나라에 있다고 생각하여 비보호 탈북자가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10년 이상이 되었더라도 생활기반이 없거나 하면 조사를 통하여 보호대상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해드렸습니다.
이예진: 중국에서 10년 이상 살면서 어느 정도 재산도 있고 하면 비보호 탈북자가 될 수 있다는 거군요.
마순희: 네. 물론 비보호탈북자들 중에는 마약을 비롯해서 중대한 범죄사실이 인정되거나 한국에 위장신분으로 입국하여 1년 이상 체류하다가 탈북자라고 신고한 경우 등에도 다양한 경우에 비보호 탈북자가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리고 60대 이상인 분들에게는 정착금을 줄 때 노령 가산금을 주고 또 생활보호대상자로 생계비와 주거지원금 등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분에게 잘 설명해드렸습니다.
이예진: 미리 알고 시작하는 것과 모르는 채 시작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죠. 그래서 정보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원도 한국 땅에서 살면서 꼭 필요한 정보들을 미리 배워두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요. 미리 꼭 알아두어야 할 정보들은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다음 시간에 알아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