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며 키우는 환상 중 하나가 한국에 가면 누구나 이층짜리 단독주택에 자가용을 끌고 다니며 배우처럼 멋있고, 예쁘고, 자상한 사람과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한국에 온 탈북자들, 대부분 그 환상부터 깨지고 맙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얻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자들의 경쟁에 임하는 자세를 알아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북한에서 한국을, 그러니까 남조선을 흔히 비난하는 것 중 하나가 체제에 대한 거죠. 북한에선 한국, 그러니까 남조선을 자본주의 경쟁사회라며 굉장히 살기 어려운 것처럼 말하잖아요. 선생님께서 10년 넘게 살아보시니 어떠신가요?
마순희: 저도 역시 그랬거든요. 북한에 있을 때에는 남조선은 썩고 병든 자본주의 사회라고 사람 못살 곳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거리에서 구두닦이 통을 들고 구두를 닦고, 거리에서 껌을 팔면서 빌어먹고 사는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처음 중국에 넘어갔을 때 브로커들이 딸들에게 남조선으로 보내준다고 하자 펄쩍 뛰었던 거죠. 아무리 피치 못할 사정으로 중국으로 두만강을 건너긴 했어도 남조선에까지 갈 수는 없다고 말이죠. 그러나 대한민국에 첫 발을 들여 놓은 순간부터 그 생각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중국에서 한국이 그런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 한 번도 이렇게까지 발전된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말 그대로 꿈같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예진: 사실 자본주의 사회가 자유와 경쟁을 통해 발전하는 사회라 경쟁이 치열할 때가 많은 건 맞는 말인데요. 그래서 탈북자들이 힘들어할 때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마순희: 물론 대한민국이 북한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발전하고 부강한 나라라는 것은 부인할 여지도 없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다 보니 모든 것이 국가의 소유로 하나의 체계로 움직이는 북한과는 전혀 다른 경쟁 사회라는 것 역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에 따라 기회의 평등도 있는 것이더라고요. 북한에도 출신성분에 따라서 본인이 노력하지 않아도 승승장구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유행하는 말인 '금수저'가 있습니다.
이예진: 부모 잘 만나서 잘 사는 사람들을 말하죠.
마순희: 그렇죠. 북한에서도 노력하지 않더라도 당에서 다 알아서 키워주고 배워주고 등용해 주고, 일사천리인 거죠. 반면에 출신 성분이 나쁘면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능력이 있어도 절대로 발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내가 노력한 만큼 모든 것이 평등하게 평가되더라고요. 가장 처음 그것을 체험한 것이 하나원 교육이 끝난 후 수료식을 할 때였습니다. 그 어떤 편견이나 사심도 없이 오로지 성적순으로 최우수상, 우수상 그리고 문화상까지 받게 되면서 저희들은 오히려 기회의 평등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감동했으니까요. 저뿐 아니라 저의 맏딸도 전혀 상상을 못하다가 사회적응교육 기초소양, 외래어 한자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데 갑자기 자기 이름을 부르니까 너무 당황해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단상에서 내려오기도 했답니다.
물론 대한민국과는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왔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우리 탈북자들이 이 땅에 정착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취직만 해도 의무적으로 누구를 고용해야 할 것도 아닌데, 기왕이면 능력 있고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채용하려는 것은 어느 회사나 다 같은 입장이겠지요. 그러다보니 우리 북한이탈주민들이 채용 현장에서는 밀리게 될 때가 많은데 그것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더군요. 한 번 떨어지면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그 부분을 더 보충하고 능력을 키워서 다시 도전하게 만들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저도 역시 처음에 남북하나재단의 직원을 모집하는 공채에 지원했다가 서류심사에서 떨어졌었습니다. 그리고 저뿐 아니라 떨어진 사람들은 많이 실망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얼마나 기준에 못 미치는지를 알게 되고 결과에 승복하게 되더군요. 그 다음 남북하나재단에서 전문상담사를 모집하는 공지가 또 났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공지사항을 자세히 읽어 보고 한 번 도전해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서류심사 합격, 필기시험과 면접시험까지 합격하고 어렵게 지원재단에 상담사로 입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 수험번호가 800번이 훨씬 넘었는데 11명이 취직했으니 어지간히 높은 경쟁률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거죠.
이예진: 몇 십대 1을 통과하신 거네요. 물론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룰 수는 없죠. 경쟁을 통해 실패하는 일도 많이 생기고요. 선생님은 긍정적이고 도전적이시니까 '다시 해보자'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은 그럴 때 많이 좌절하는 것 같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업무평가에 따라 대우도 차이가 있는데 이런 것들은 '차별'이 아니라 업무능력 평가에 따른 '차이'인거죠. 처음에는 그런 것들도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아서 회사생활에서 혼란스러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런 경험을 했더라고요. 제가 이번에 지방에서 만났던 한 여성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일하다가 계약만료가 되어 직장을 사직하게 되어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게 되었답니다. 한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한다기에 찾아갔더니 말투가 이상한지 고향이 어디냐고 묻더래요. 그래서 탈북자라고 했더니 대뜸 '우리 회사는 탈북자를 받지 않는다'고 하더래요. 반드시 그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사장에게 물어보았답니다.
'나를 채용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는데 왜 탈북자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지는 알고 싶다'고 했더니 사장이 하는 말이 이미 전에 몇 명의 탈북자들을 받았었는데 회사의 일이 힘들고 까다롭기도 해서인지 몇 개월 못 버티고 모두 나가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성이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3년 근무한 근무증명서를 꺼내 보이면서 '나는 계약기간 만료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 두었다. 사장님이 나를 믿고 써주신다면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사장님이 나가라고 하기 전에 내가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 결국 그 여성은 회사에 취직하여 지금까지 4년째 근속하고 있었고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본인이 그들을 견습시킬 정도로 회사에 든든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탈북자를 받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면 오늘의 자신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라던 그 여성의 말은 저에게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습니다.
이예진: 이층짜리 단독주택에 자가용을 끌고 다니며 배우처럼 멋있고, 예쁘고, 자상한 사람과의 사랑, 탈북자들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누가 얼마나 더 노력하느냐, 자신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거기에 달려있죠. 다음 시간에는 그 경쟁의 신선함에 대해 얘기해 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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