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올해 상반기, 위조한 서류로 금융권에 돈을 빌린 뒤 대한민국 국적을 숨기고 북한을 막 벗어난 것처럼 꾸며 해외 망명을 시도하는 탈북자들이 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해외로 망명해 국적을 취득하면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며 이를 조장한 브로커들이 잡히기도 했는데요. 그들은 지금 해외에 잘 정착했을까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한국을 떠난 탈북자들의 고민거리를 들어봅니다.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유럽과 북미국가 등으로 이주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얘기를 저희도 한 적이 있는데, 최근에는 해외로 망명했던 탈북자들이 다시 한국에 돌아오는 사례가 많다고요?
마순희: 우리 주변에도 노르웨이나 영국을 비롯해서 유럽 국가들과 캐나다 등 여러 나라들에 간 북한이탈주민들이 많고 또 되돌아 온 분들도 많습니다. 금년 6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지원재단과 북한이탈주민학회의 공동 학술회의가 있었는데요. 학술회의에서 동아일보의 주성하 기자의 얘기로는 2004년 7월 태국에서 468명이 한꺼번에 한국으로 오면서 화제가 되었는데 그 때 들어왔던 탈북자들 중에서 어렵게 200명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중 20명이 해외로 나갔다고 합니다.
이예진: 그 인원만 보면 10명 중 1명이 해외로 나갔다는 얘기네요. 선생님이 상담한 구체적인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마순희: 저희들도 상담하다 보면 외국에서 전화하는 사례들도 있고 또 한국에 돌아와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들도 있습니다. 지난여름 늦은 밤에 저의 휴대전화로 국제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몇 달 전에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캐나다에 가면 복지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한국보다 훨씬 살기 좋다고 선전하는 바람에 캐나다로 갔답니다. 주택을 반납한 돈과 그동안 모았던 돈을 모두 가지고 떠났지만 현실은 소문과 너무 달랐답니다.
두 딸과 남편까지 네 식구가 움직이다보니 브로커 비용을 제외하고도 많은 돈을 쓰게 되었는데 실제로 현지에 가보니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딴판이었고 우선 말이 통하지 않아서 살아가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와 보니 외국에 나온 것을 하루에도 몇 십번씩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이 제일 힘든가고 물었더니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려고 해도 가장 걱정되는 것이 돌아갈 집이 없다고 하면서 울먹이더라고요.
그러면서 한국에 되돌아가고 싶은데 이미 집을 반납한 뒤라 갑자기 네 식구가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에게 제가 해드릴 말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캐나다에서 일단 한국에 돌아오시면 재단에 전화를 하라고 종합상담센터의 전화번호도 알려 드렸습니다. 사정이 어려우면 지원재단에서 운영하는 쉼터나 시설들이 있으니 임시로 거주하다가 주택을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 드렸더니 그렇게라도 임시 거처할 곳이 있다고 하면 돌아갈 용기가 난다고 했습니다.
이예진: 다시 돌아오신 분들도 신청을 해서 차근차근 기다려보면 다시 주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거죠?
마순희: 있기는 하지만 쉽지는 않죠.
이예진: 그렇군요. 한국을 떠나 해외로 떠나려고 했던 탈북자들도 다 나름의 사연이 있었을 텐데요. 어떤 이유들이 있었나요?
마순희: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전화 왔던 분들은 더 나은 생활을 바라고 브로커의 꾐에 빠진 것이 이유였고 노원구에서 상담 받았던 여성의 어머니는 안정된 노후를 위해서였습니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불법대출을 받고 외국으로 나가는 사례들도 있었고요. 브로커의 꾐에 빠져서 외국에 간 사람들 중에 자신이 브로커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꾀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북한이탈주민들 중 나이 드신 분들 경우 더 힘든 것만은 사실입니다. 일할 곳을 찾기도 힘들고 또 거주지 보호기간이 끝나면 자식이 있으면 부양의무자 기준이 있어서 그나마 나오던 생계비도 자식들이 부양하도록 감소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는 싫고 안정된 노후가 보장되었다는 유럽이나 캐나다 같은 쪽으로 많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북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탈북하는 것에 비하면 외국에 나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이예진: 네. 그러니까 어려운 탈북 과정을 거친 분들이 해외쯤이야 하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는 건데요. 일단 더 나은 생활을 보장한다는 얘기가 솔깃할 수 있겠네요.
마순희: 그렇죠. 노원구에서 상담 받은 여성의 어머니도 그런 사유에서 외국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가서 2년 넘게 살다보니 사람이 먹고 쓰고 사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 힘든 북한에서 살다가 딸과 함께 한국에 오게 되었고 귀여운 손자 손녀도 생겼는데 외국에 가서 혼자 살자니 외로워서 못 살겠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자식들 얼굴이나 보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주택을 반납한 상태라 딸네 집에서 살기가 쉽지만은 않았던 것입니다. 하루속히 주택을 받아서 안정을 되찾아야 되겠다는 어머니의 마음을 딸이 대신 상담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금년 초에 상담 받은 사례인데요. 부산에서 산다는 40대의 여성의 전화였습니다. 10년 연하인 탈북자 남성과 사귀었고 동거를 했다고 합니다. 몇 달 전에 하나원 동기인 지인의 소개로 경기도에 일자리를 찾아서 간다고 했답니다. 호주에 가면 한 달에 몇 백 만원은 쉽게 번다고 하면서 두 남자가 출국했다는 것인데 몇 달이 지나도록 한 푼도 돈은 보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여성은 자기 남편은 마음도 착하고 자기를 떠나서 갈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브로커의 나쁜 꾐에 넘어갔을 거라면서 남편을 찾아 올 방법이 없는지 문의하는 것입니다.
이예진: 그렇게 해외로 나가는 경우 중에 주로 영국으로 나가는 사례가 많더라고요.
마순희: 네. 아무래도 복지가 좋다고 소문이 나서 많은 탈북자들이 몰리는 건데요. 작년에 모 방송국에서 외국에 나가있는 탈북자들을 집중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요. 얼굴이 안 보이게 모자이크 처리했지만 사연을 듣고 그 친구인줄 금방 알겠더라고요. 아들 내외와 손녀를 데리고 와서 서울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요. 몇 년 전 영국에 가면 노후대책도 잘 되어 있고 손녀의 영어교육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브로커의 말만 믿고 갈아입을 옷 몇 가지만 챙겨가지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브로커가 시키는 대로 한국에 와 있었다는 것을 속이고 금방 넘어온 탈북자로 중국에서 영국으로 간 것으로 진술을 했답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묻다보니 거짓말이 탄로가 되고 한국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말에 도망을 쳐서 아들 친구네 집에 숨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생계가 급하니 도우미 일을 한다고 하면서 엄청 후회하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참 안 되었다고 생각되더라고요.
이예진: 영국에서는 한국 국적이 아닌 북한에서 온 이들로 생각해 망명을 받아주는 거라 한국 국적인 것이 밝혀지면 불법 체류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잖아요.
마순희: 그렇죠. 심지어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들 중에는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창업을 미끼로 혹은 다른 불법대출을 받고 의식적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사기범죄들도 있었습니다. 법률상담을 의뢰한 적이 있는데요. 아는 지인이 불법으로 대출을 받고 외국으로 나갔답니다. 브로커가 불법대출을 알선해 주었는데 외국에 나가서 3년간 지나면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사례비로 거의 절반이 되는 돈을 요구했었답니다.
이예진: 돈을 떼먹고 가는 거잖아요.
마순희: 그렇죠. 브로커의 말만 믿고 공짜 돈이라고 속아서 대출을 받아 가지고 외국에 나갔는데 돌아오고 싶어도 한국에 오면 사기죄로 처벌을 받을게 두려워서 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탈북자들이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고 탈북자들 스스로가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있어서 극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열심히 정착하는 대부분의 탈북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탈북자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주는 사례들도 있어서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예진: 다양한 이유로 제3의 나라를 찾았던 탈북자들, 다음 이 시간에는 다시 한국에 돌아온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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