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청춘 만세> 저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먼저 이 시간을 함께 꾸며갈 세 청년을 소개할게요.
클레이튼 : 안녕하십니까. 미국에서 온 클레이튼인데 남한에 온 지 6년 됐습니다. 지금 한국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예은 :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일곱 살이고, 남한에서 태어나 자란 강예은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어를 전공했고, 북한과 통일에 관심이 있어 이렇게 함께 하게 됐습니다.
광성 : 안녕하세요, 정광성입니다. 저는 2006년까지 북한에서 살다 탈북해서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북한전략센터라는 곳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추석 잘 보내셨나요? 남한에서는 사흘간의 추석 연휴에 토요일, 일요일까지 길게는 닷새를 쉰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느라 상당히 피곤했던 한 주였는데요. <청춘 만세>에서는 지난주부터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남한의 명절 모습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죠? 우리 청년들의 생각, 계속해서 들어보시죠.
진행자 : 예은 씨 집에서는 명절에도 음식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결혼을 했더니 그 집은 가부장적으로 여자들만 많은 제사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예은 : 명절에 (시댁) 안 가고 해외로 도피할까(웃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아요. 왜냐면 명절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인데 저만 일을 하고 남편은 도와주지도 않고 놀고 있다면 화가 나겠죠.
광성 : 그래서 명절 뒤에 부부싸움도 많아지고 이혼율도 높아진대요.
진행자 : 백화점이나 홈쇼핑 등에서 각종 소비도 늘어납니다. 여성들이 무언가를 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죠(웃음).
그럼 요즘 광성 씨 부모님 댁에서는 추석을 어떻게 보내나요? 북한에서처럼 보내시나요, 아니면 '남한화' 됐나요?
광성 : 바뀌어가고 있어요. 일단 저희가 제사를 안 지내죠. 왜냐면 북한에서 삼촌들이 제사를 지내니까. 두 곳에서 제사를 지내면 안 된다는 얘기가 있어서. 그래서 그냥 저희가 먹을 음식만 만들어서 함께 보내요.
진행자 : 결혼했는데 '이런 일 못하겠다'는 예은 씨 같은 아내를 만나면 어떻게 하죠(웃음)?
광성 : 저는 장손이라 제사를 모셔야 해요. 그래서 할 건 하고 다른 걸로 보상을 해야겠죠(웃음)?
진행자 : 같이 하면 안 돼요?
광성 : 같이 해야죠.
예은 : 안 될 것 같은데요(웃음).
진행자 : 같이 하려는데 부모님이 '어디 부엌에 들어오느냐'고 하시면?
광성 : 요즘 어머니는 안 그러세요. 그래서 저도 마늘도 손질하고 준비과정을 도와드리죠.
예은 : 탈북자들 중에 여성들은 좀 편해지셨을 것 같아요.
광성 : 그렇기도 한데, 남자들은 남한에 와서도 안 하는 사람은 안 해요.
진행자 : 예전에는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한다고 보고 자랐잖아요. 그래서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요즘은 어렸을 때부터 남녀가 평등하게 자라다 보니까 '왜 내가 결혼해서 갑자기 집안일을 해야 하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예은 씨 친구들은 어때요?
예은 : 대부분 명절에 어머니가 음식을 하시면 도와드리기는 하지만 나만 일하는 그런 집으로 시집가고 싶지는 않죠.
진행자 : 그럼 여러분이 생각했을 때 사라져 가는 추석의 전통문화는 어떤 게 있을까요? 제사도 잘 안 지내고, 한복도 안 입고, 강강술래도 안 하고(웃음).
예은 : 강강술래는 한국민속촌에서 한 것 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저도 책으로는 많이 배웠어요. 지역마다 추석 때 하는 민속놀이가 있거든요. 윷놀이는 가정마다 하고, 강강술래, 달맞이, 널뛰기, 그네타기...그런데 그런 놀이는 지금은 거의 할 수가 없어요. 강강술래를 어디서 하겠어요. 보통 윷놀이 정도는 가족끼리 하고 아니면 화투를 치죠.
진행자 : 클레이튼이 오히려 한국의 전통놀이는 더 많이 접해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클레이튼 : 한국어 배우고 있을 때는 다 배웠는데 윷놀이 빼고는 아예 못 봤어요.
진행자 : 외국인들이 명절 되면 가장 많이 가는 곳 중의 하나가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이나 경복궁 같은 궁궐인데 그런 곳에 가면 전통의 모습을 다 재현해 놨거든요. 널뛰기, 그네타기, 강강술래 다 하고, 한복 입고 송편도 나눠줘요. 그래서 외국인들이 많이 가고, 남한 사람들도 아이들 데리고 가서 '제사는 이렇게 지내는 거야, 윷놀이가 이런 거야' 보여주더라고요.
예은 : 집에서 그런 전통이 많이 사라지다 보니까 저도 예전에 민속촌이나 경복궁 등에서 배웠던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래도 북한은 남한보다 전통놀이를 좀 더 하는 편이죠?
광성 : 많이 하죠, 평양은 윷놀이 대회도 있고 씨름 대회도 있고, 그네도 타고 널도 뛰고. 그런데 지방은 많이 하지 않는 편이에요.
예은 : 그리고 한복도 더 이상 안 입잖아요.
진행자 : 저도 지금은 한복 없습니다.
예은 : 그래도 저희 부모님 세대는 어른들은 한복을 차려 입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예 안 입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도 안 입으시던데요.
진행자 : 사라져 가는 전통 대신에 이런 문화들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어떤 게 있을까요?
예은 : 명절 연휴가 올해는 더 길잖아요, 주말까지 껴서. 시댁이나 부모님 댁에 안 가면 즐겁게 명절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여행이에요. 국내여행은 교통체증 때문에 가기 힘드니까 해외로 많이 가요. 인천국제공항이 북적북적할 거예요.
클레이튼 : 올해 한국 추석 때 미국가려고 했는데 비행기 표가 너무 비싸서 포기했어요. 보통 때보다 20~30% 더 비싸더라고요. 엄마, 아빠 미안하지만 다음에 봐요(웃음).
진행자 : 해외여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심에서 좀 쉬고 싶다' 이런 사람들이 있대요. 사흘 정도는 가족들과 보내지만 한 이틀은 호텔이나 좋은 곳에 가서 편하게 보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스테이케이션족'이라고 한대요. '머물다'와 '방학'의 합성어라는데 실제로 명절 연휴 때 호텔이나 도시 외곽의 펜션 같은 숙박시설의 예매율이 높아졌다고 해요.
미국은 어때요?
클레이튼 : 추석 때는 대부분 부모님이나 시부모님 댁에서 보내요. 그런데 성탄절에는 해외여행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예은 : 미국에서도 명절이면 친척들이 다 모여요?
클레이튼 : 우리 가족은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 다 모여요. 그런데 가정마다 다르죠.
광성 : 아버지 가족, 어머니 가족 한 번씩 만나나요?
클레이튼 : 저희 가족 같은 경우는 계속 바뀌어요. 예를 들어 추석 때 아버지 가족과 보냈다면 성탄절에는 어머니 가족과 보내요.
진행자 : 북한은 어때요?
광성 : 북한은 남자 가족 중심으로 모이고 외가에는 끝나고 가요.
진행자 : 한민족이네요(웃음). 남한도 비슷해요. 추석 당일에는 시댁에서 있고, 그날 오후부터 이동하죠.
예은 : 명절에 성형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연휴가 기니까 수술을 하고 회복기를 보낼 수 있는 거죠. 병원 측에서 그렇게 홍보를 많이 하더라고요.
진행자 : 중국에서도 춘절 연휴 기간이 좀 길잖아요. 그때 남한에 와서 성형수술 하고 가는 사람들이 있죠(웃음).
예은 : 명절에 가족과 하루를 보내고 남는 시간은 따로 자기가 할 일을 하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명절 때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재밌게 놀아요.
클레이튼 : 미국도 많이 비슷해요. 미국에서 추석 당일은 꼭 가족과 같이 보내야 하는데 그 전날은 친구들끼리 재밌게 보내요.
진행자 : 다음날 쉬니까(웃음).
클레이튼 : 그렇죠. 그리고 다들 오랜만에 고향에 오니까 정말 재밌는 밤이에요. 지난 설에도 전주에 갔는데 비슷했어요. 설날 다음날 젊은 사람들 다 나와서 재밌는 밤 보냈습니다(웃음).
진행자 : 서울도 평소에는 길도 막히고 사람도 많은데 명절 연휴 때는 고향에 많이들 가니까 한산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서울 태생들은 서울의 곳곳을 누비며 영화도 보고 식당에도 가고 그러죠.
예은 : 제 친구도 이번 추석 명절 때는 호텔을 잡고 서울 곳곳을 누비며 편하게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진행자 : 스테이케이션족이네요(웃음).
세상이 너무 많이 달라졌는데 명절이라고 꼭 예전처럼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전통이니까 지켜야한다는 생각도 드는데 여러분, 청년의 눈으로 봤을 때는 어떤가요?
광성 : 저 같은 경우는 전통을 지켜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물론 변형은 되겠지만. 다른 나라를 보면 전통을 지키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남한은 너무 빨리 바뀌어서 좀 아쉽더라고요.
진행자 : 그럼 추석 명절에서는 어느 정도 전통을 지킬까요?
광성 : 어려운데, 성묘는 해야 하지 않나.
진행자 : 성묘하려면 고향에 가야 하고, 결국 민족대이동이 있는 거네요(웃음).
예은 : 저는 융통성 있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가족끼리 보내는 건 좋은데 여자만 음식을 한다든가 이런 건 보완이 돼야 하고, 윷놀이는 계속 했으면 해요. 윷놀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속놀이가 휴대용으로 나와서 즐길 수 있도록. 그리고 한복은 꼭 입었으면 좋겠어요. 한복을 입을 일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명절에는 입으면 좋지 않나.
진행자 : 그런데 아이들이 빨리빨리 크잖아요. 한복을 계속 사야 할 텐데.
클레이튼 : 대여할 수 있어요.
광성 : 한 시간 빌리는데 만5천 원인가 그래요. 곳곳에 대여하는 곳이 많더라고요.
진행자 : 그러면 명절 기간에 한복 대여점이 또 바빠지겠는데요. 저도 명절에 음식은...
광성 : 같이 하자?
진행자 : 아니요, 잘 하는 사람이 했으면 좋겠고요(웃음). 그렇게 많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밖에 있던 식구들이 오니까 엄마들 마음에서는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많이들 하시는데 그렇게 많이 먹지는 못하잖아요. 적당히 하고 대신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게 낫지 않나.
클레이튼이 봤을 때는 한국의 명절 어때요?
클레이튼 : 윷놀이, 송편 만들기는 좋았어요. 전통 지키는 모습은 좋은데 여자만 일하는 건... 다 같이 고생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예은 : 그리고 명절에 모이면 가족들이 수험생이나 취업준비생, 결혼 안 한 사람들한테 꼭 한 번씩 물어봐요. 공부는 잘 하니, 취업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하니... 그래서 고향에 안 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클레이튼 : 미국에서도 물어보기는 하지만 남한 사람들처럼 왜 못 했느냐는 식으로 물어보지는 않아요.
진행자 :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죠. 그래서 고향 안 가고 호텔에서 노는 겁니다(웃음).
클레이튼 : 뉴스 봤는데 중국에서는 남자친구 대여 서비스가 있더라고요. 명절 때 고향 가면 그런 질문 계속 받으니까 배우 같은 사람 데려가서 남자친구라고 말하는 거예요.
예은 : 잘생길수록 가격이 높아요(웃음).
광성 : 저도 명절에 좀 괴로워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저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더 심하시거든요. 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 입장에서는 산소에 못 간다는 것 자체가. 저희 아버지는 무척 강인한 편인데 명절 때는 기분이 가라앉아 계세요. 물론 저도 친척들 보고 싶고 고향에 가고 싶지만 부모님은 저보다 더 그리움이 크니까 부모님 그런 모습 보면 제가 더 힘들더라고요. 요즘은 여행도 다니시고 많이 나아졌는데 처음 남한에 왔을 때는 너무 심했어요.
예은 : 가족을 두고 온 탈북자들은 진짜 그립겠어요.
광성 : 저는 부모님과 같이 와서 좀 나은데 혼자 온 분들은 마음이 찢어지죠.
진행자 : 그럼 보통 탈북하신 분들은 명절에 어떻게 보내나요?
광성 : 그래서 탈북자들끼리 잘 모여요. 친구들 집에 모이거나 여행을 가거나. 아, 빨리 통일이 돼야 하는데...
진행자 : 남한이든 북한이든 똑같은 보름달은 떠 있겠죠? 보름달 보면서 소원 비는 전통 놀이는 우리가 지금 할 수 있잖아요. 자, 한 가지씩 말해 볼까요?
예은 : 저는 빨리 직장을 갖고 싶습니다. 취업하는 게 저의 소원입니다.
광성 : 일단 저는 가족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하루 빨리 부모님과 함께 고향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클레이튼 : 전 비밀이라서 달님한테만 얘기하겠습니다.
진행자 : 아마도 클레이튼의 소원과 저의 소원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대변하자면...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세요(웃음)!
클레이튼 : 어떻게 아셨죠(웃음)?
진행자 : 달 보면서 청취자 여러분도 행복한 소원 비시고, 그 소원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네요. 다 함께 인사드리면서 마무리할게요.
다 함께 :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진행자 :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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