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2) 달라진 남한의 명절 모습

추석인 이번달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에서 열린 '운현궁 한가위 잔치'를 찾은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강강술래를 하고 있다.
추석인 이번달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에서 열린 '운현궁 한가위 잔치'를 찾은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강강술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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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청춘 만세> 저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먼저 이 시간을 함께 꾸며갈 세 청년을 소개할게요.

클레이튼 : 안녕하십니까. 미국에서 온 클레이튼인데 남한에 온 지 6년 됐습니다. 지금 한국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예은 :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일곱 살이고, 남한에서 태어나 자란 강예은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어를 전공했고, 북한과 통일에 관심이 있어 이렇게 함께 하게 됐습니다.

광성 : 안녕하세요, 정광성입니다. 저는 2006년까지 북한에서 살다 탈북해서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북한전략센터라는 곳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추석 잘 보내셨나요? 남한에서는 사흘간의 추석 연휴에 토요일, 일요일까지 길게는 닷새를 쉰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느라 상당히 피곤했던 한 주였는데요. <청춘 만세>에서는 지난주부터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남한의 명절 모습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죠? 우리 청년들의 생각, 계속해서 들어보시죠.

진행자 : 예은 씨 집에서는 명절에도 음식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결혼을 했더니 그 집은 가부장적으로 여자들만 많은 제사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예은 : 명절에 (시댁) 안 가고 해외로 도피할까(웃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아요. 왜냐면 명절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인데 저만 일을 하고 남편은 도와주지도 않고 놀고 있다면 화가 나겠죠.

광성 : 그래서 명절 뒤에 부부싸움도 많아지고 이혼율도 높아진대요.

진행자 : 백화점이나 홈쇼핑 등에서 각종 소비도 늘어납니다. 여성들이 무언가를 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죠(웃음).

그럼 요즘 광성 씨 부모님 댁에서는 추석을 어떻게 보내나요? 북한에서처럼 보내시나요, 아니면 '남한화' 됐나요?

광성 : 바뀌어가고 있어요. 일단 저희가 제사를 안 지내죠. 왜냐면 북한에서 삼촌들이 제사를 지내니까. 두 곳에서 제사를 지내면 안 된다는 얘기가 있어서. 그래서 그냥 저희가 먹을 음식만 만들어서 함께 보내요.

진행자 : 결혼했는데 '이런 일 못하겠다'는 예은 씨 같은 아내를 만나면 어떻게 하죠(웃음)?

광성 : 저는 장손이라 제사를 모셔야 해요. 그래서 할 건 하고 다른 걸로 보상을 해야겠죠(웃음)?

진행자 : 같이 하면 안 돼요?

광성 : 같이 해야죠.

예은 : 안 될 것 같은데요(웃음).

진행자 : 같이 하려는데 부모님이 '어디 부엌에 들어오느냐'고 하시면?

광성 : 요즘 어머니는 안 그러세요. 그래서 저도 마늘도 손질하고 준비과정을 도와드리죠.

예은 : 탈북자들 중에 여성들은 좀 편해지셨을 것 같아요.

광성 : 그렇기도 한데, 남자들은 남한에 와서도 안 하는 사람은 안 해요.

진행자 : 예전에는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한다고 보고 자랐잖아요. 그래서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요즘은 어렸을 때부터 남녀가 평등하게 자라다 보니까 '왜 내가 결혼해서 갑자기 집안일을 해야 하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예은 씨 친구들은 어때요?

예은 : 대부분 명절에 어머니가 음식을 하시면 도와드리기는 하지만 나만 일하는 그런 집으로 시집가고 싶지는 않죠.

진행자 : 그럼 여러분이 생각했을 때 사라져 가는 추석의 전통문화는 어떤 게 있을까요? 제사도 잘 안 지내고, 한복도 안 입고, 강강술래도 안 하고(웃음).

예은 : 강강술래는 한국민속촌에서 한 것 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저도 책으로는 많이 배웠어요. 지역마다 추석 때 하는 민속놀이가 있거든요. 윷놀이는 가정마다 하고, 강강술래, 달맞이, 널뛰기, 그네타기...그런데 그런 놀이는 지금은 거의 할 수가 없어요. 강강술래를 어디서 하겠어요. 보통 윷놀이 정도는 가족끼리 하고 아니면 화투를 치죠.

진행자 : 클레이튼이 오히려 한국의 전통놀이는 더 많이 접해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클레이튼 : 한국어 배우고 있을 때는 다 배웠는데 윷놀이 빼고는 아예 못 봤어요.

진행자 : 외국인들이 명절 되면 가장 많이 가는 곳 중의 하나가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이나 경복궁 같은 궁궐인데 그런 곳에 가면 전통의 모습을 다 재현해 놨거든요. 널뛰기, 그네타기, 강강술래 다 하고, 한복 입고 송편도 나눠줘요. 그래서 외국인들이 많이 가고, 남한 사람들도 아이들 데리고 가서 '제사는 이렇게 지내는 거야, 윷놀이가 이런 거야' 보여주더라고요.

예은 : 집에서 그런 전통이 많이 사라지다 보니까 저도 예전에 민속촌이나 경복궁 등에서 배웠던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래도 북한은 남한보다 전통놀이를 좀 더 하는 편이죠?

광성 : 많이 하죠, 평양은 윷놀이 대회도 있고 씨름 대회도 있고, 그네도 타고 널도 뛰고. 그런데 지방은 많이 하지 않는 편이에요.

예은 : 그리고 한복도 더 이상 안 입잖아요.

진행자 : 저도 지금은 한복 없습니다.

예은 : 그래도 저희 부모님 세대는 어른들은 한복을 차려 입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예 안 입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도 안 입으시던데요.

진행자 : 사라져 가는 전통 대신에 이런 문화들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어떤 게 있을까요?

예은 : 명절 연휴가 올해는 더 길잖아요, 주말까지 껴서. 시댁이나 부모님 댁에 안 가면 즐겁게 명절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여행이에요. 국내여행은 교통체증 때문에 가기 힘드니까 해외로 많이 가요. 인천국제공항이 북적북적할 거예요.

클레이튼 : 올해 한국 추석 때 미국가려고 했는데 비행기 표가 너무 비싸서 포기했어요. 보통 때보다 20~30% 더 비싸더라고요. 엄마, 아빠 미안하지만 다음에 봐요(웃음).

진행자 : 해외여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심에서 좀 쉬고 싶다' 이런 사람들이 있대요. 사흘 정도는 가족들과 보내지만 한 이틀은 호텔이나 좋은 곳에 가서 편하게 보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스테이케이션족'이라고 한대요. '머물다'와 '방학'의 합성어라는데 실제로 명절 연휴 때 호텔이나 도시 외곽의 펜션 같은 숙박시설의 예매율이 높아졌다고 해요.

미국은 어때요?

클레이튼 : 추석 때는 대부분 부모님이나 시부모님 댁에서 보내요. 그런데 성탄절에는 해외여행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예은 : 미국에서도 명절이면 친척들이 다 모여요?

클레이튼 : 우리 가족은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 다 모여요. 그런데 가정마다 다르죠.

광성 : 아버지 가족, 어머니 가족 한 번씩 만나나요?

클레이튼 : 저희 가족 같은 경우는 계속 바뀌어요. 예를 들어 추석 때 아버지 가족과 보냈다면 성탄절에는 어머니 가족과 보내요.

진행자 : 북한은 어때요?

광성 : 북한은 남자 가족 중심으로 모이고 외가에는 끝나고 가요.

진행자 : 한민족이네요(웃음). 남한도 비슷해요. 추석 당일에는 시댁에서 있고, 그날 오후부터 이동하죠.

예은 : 명절에 성형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연휴가 기니까 수술을 하고 회복기를 보낼 수 있는 거죠. 병원 측에서 그렇게 홍보를 많이 하더라고요.

진행자 : 중국에서도 춘절 연휴 기간이 좀 길잖아요. 그때 남한에 와서 성형수술 하고 가는 사람들이 있죠(웃음).

예은 : 명절에 가족과 하루를 보내고 남는 시간은 따로 자기가 할 일을 하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명절 때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재밌게 놀아요.

클레이튼 : 미국도 많이 비슷해요. 미국에서 추석 당일은 꼭 가족과 같이 보내야 하는데 그 전날은 친구들끼리 재밌게 보내요.

진행자 : 다음날 쉬니까(웃음).

클레이튼 : 그렇죠. 그리고 다들 오랜만에 고향에 오니까 정말 재밌는 밤이에요. 지난 설에도 전주에 갔는데 비슷했어요. 설날 다음날 젊은 사람들 다 나와서 재밌는 밤 보냈습니다(웃음).

진행자 : 서울도 평소에는 길도 막히고 사람도 많은데 명절 연휴 때는 고향에 많이들 가니까 한산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서울 태생들은 서울의 곳곳을 누비며 영화도 보고 식당에도 가고 그러죠.

예은 : 제 친구도 이번 추석 명절 때는 호텔을 잡고 서울 곳곳을 누비며 편하게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진행자 : 스테이케이션족이네요(웃음).

세상이 너무 많이 달라졌는데 명절이라고 꼭 예전처럼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전통이니까 지켜야한다는 생각도 드는데 여러분, 청년의 눈으로 봤을 때는 어떤가요?

광성 : 저 같은 경우는 전통을 지켜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물론 변형은 되겠지만. 다른 나라를 보면 전통을 지키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남한은 너무 빨리 바뀌어서 좀 아쉽더라고요.

진행자 : 그럼 추석 명절에서는 어느 정도 전통을 지킬까요?

광성 : 어려운데, 성묘는 해야 하지 않나.

진행자 : 성묘하려면 고향에 가야 하고, 결국 민족대이동이 있는 거네요(웃음).

예은 : 저는 융통성 있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가족끼리 보내는 건 좋은데 여자만 음식을 한다든가 이런 건 보완이 돼야 하고, 윷놀이는 계속 했으면 해요. 윷놀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속놀이가 휴대용으로 나와서 즐길 수 있도록. 그리고 한복은 꼭 입었으면 좋겠어요. 한복을 입을 일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명절에는 입으면 좋지 않나.

진행자 : 그런데 아이들이 빨리빨리 크잖아요. 한복을 계속 사야 할 텐데.

클레이튼 : 대여할 수 있어요.

광성 : 한 시간 빌리는데 만5천 원인가 그래요. 곳곳에 대여하는 곳이 많더라고요.

진행자 : 그러면 명절 기간에 한복 대여점이 또 바빠지겠는데요. 저도 명절에 음식은...

광성 : 같이 하자?

진행자 : 아니요, 잘 하는 사람이 했으면 좋겠고요(웃음). 그렇게 많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밖에 있던 식구들이 오니까 엄마들 마음에서는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많이들 하시는데 그렇게 많이 먹지는 못하잖아요. 적당히 하고 대신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게 낫지 않나.

클레이튼이 봤을 때는 한국의 명절 어때요?

클레이튼 : 윷놀이, 송편 만들기는 좋았어요. 전통 지키는 모습은 좋은데 여자만 일하는 건... 다 같이 고생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예은 : 그리고 명절에 모이면 가족들이 수험생이나 취업준비생, 결혼 안 한 사람들한테 꼭 한 번씩 물어봐요. 공부는 잘 하니, 취업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하니... 그래서 고향에 안 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클레이튼 : 미국에서도 물어보기는 하지만 남한 사람들처럼 왜 못 했느냐는 식으로 물어보지는 않아요.

진행자 :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죠. 그래서 고향 안 가고 호텔에서 노는 겁니다(웃음).

클레이튼 : 뉴스 봤는데 중국에서는 남자친구 대여 서비스가 있더라고요. 명절 때 고향 가면 그런 질문 계속 받으니까 배우 같은 사람 데려가서 남자친구라고 말하는 거예요.

예은 : 잘생길수록 가격이 높아요(웃음).

광성 : 저도 명절에 좀 괴로워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저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더 심하시거든요. 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 입장에서는 산소에 못 간다는 것 자체가. 저희 아버지는 무척 강인한 편인데 명절 때는 기분이 가라앉아 계세요. 물론 저도 친척들 보고 싶고 고향에 가고 싶지만 부모님은 저보다 더 그리움이 크니까 부모님 그런 모습 보면 제가 더 힘들더라고요. 요즘은 여행도 다니시고 많이 나아졌는데 처음 남한에 왔을 때는 너무 심했어요.

예은 : 가족을 두고 온 탈북자들은 진짜 그립겠어요.

광성 : 저는 부모님과 같이 와서 좀 나은데 혼자 온 분들은 마음이 찢어지죠.

진행자 : 그럼 보통 탈북하신 분들은 명절에 어떻게 보내나요?

광성 : 그래서 탈북자들끼리 잘 모여요. 친구들 집에 모이거나 여행을 가거나. 아, 빨리 통일이 돼야 하는데...

진행자 : 남한이든 북한이든 똑같은 보름달은 떠 있겠죠? 보름달 보면서 소원 비는 전통 놀이는 우리가 지금 할 수 있잖아요. 자, 한 가지씩 말해 볼까요?

예은 : 저는 빨리 직장을 갖고 싶습니다. 취업하는 게 저의 소원입니다.

광성 : 일단 저는 가족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하루 빨리 부모님과 함께 고향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클레이튼 : 전 비밀이라서 달님한테만 얘기하겠습니다.

진행자 : 아마도 클레이튼의 소원과 저의 소원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대변하자면...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세요(웃음)!

클레이튼 : 어떻게 아셨죠(웃음)?

진행자 : 달 보면서 청취자 여러분도 행복한 소원 비시고, 그 소원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네요. 다 함께 인사드리면서 마무리할게요.

다 함께 :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진행자 :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