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청춘만세의 김인선입니다. 지난해 말 대한민국의 오준 UN대사는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UN안보리 회의장에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북한 주민은 그저 아무나가 아닙니다’, ‘우리가 북한주민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는데요, 이처럼 좋은 인사말은 인터넷을 통한 소통의 장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됩니다. 최근 남한에서는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신년사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데요, 신년사를 바라보는 남북청년들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 남북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이정민, 김재동, 김강남 씨와 함께 합니다.
진행자 : 겨울이야기를 연이어서 이야기하다보니까 새해 인사를 제대로 못 나눴어요. 늦었지만,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인사 한마디는 하고 갔으면 좋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정민 : 네. 새해 축하합니다. / 김강남, 김재동 : 감사합니다.
이정민 : 북한에는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은 별로 없고요, ‘새해를 축하합니다’가 많죠.
김재동 : 약간 생소한 것 같아요.
김강남 : 어떻게 되냐면 인사가 그런 게 있어요. 밑에 사람들은 ‘새해를 축하합니다’라고 하면 어른들이 ‘그래, 새해 복 많이 받아’ 이렇게 이야기하는 원칙이 있어요. 어린사람이 윗사람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렇게 말하면 조금 버릇없는 그런 게 있어요. 그래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그래, 올해도 새해 복 많이 받아’ 이렇게 말하면 조금 어른스러운 말로 인식되고 있어요.
김재동 : 남한에서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건강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요, 제가 나이가 올라가다보니까 ‘좋은 직장 찾아서 들어가길 바란다’ 이 말씀을 해주세요. 작년부터는 이 말이 조금 무겁게 느껴져요.
이정민 : 저도 한국에 처음 와서 ‘올해는 취직해라’ ‘수능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거라’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생소했어요. 북한에는 그런 덕담이나 인사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한국에서 7~8년 살아보니까 이해할 것 같아요.
진행자 : 새해인사 중에 정말 싫은 인사도 있나요?
이정민 : 그렇죠. 북한에서는 제가 어렸을 때라 그런 것을 못 느꼈는데 한국에 와서 주변에 있는 한국인분들이나 아니면 탈북자 친구들이라도 제일 싫어하는 게 혼자 있는 친구에게 ‘이번에는 결혼해라’ 하는 게 제일 싫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더하다고 오히려 상처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은 제가 북한에서 겪어보지 못한 거예요. 북한에도 있을 수는 있어요. 그런데 제가 스무 살에 나왔고, 그때는 어렸으니까 그런 얘기를 안 하는 편이라서 그냥 ‘건강하게 앓지 말고 자라라’ 이런 게 덕담이었어요.
진행자 : 제가 서른다섯에 결혼을 했어요. 저도 스물아홉부터 새해인사가 ‘결혼해야지’ ‘결혼 안 해도 좋으니까 연애해야지’ ‘갔다가 와도 좋으니까 한번은 가봐야지’ 이러면서 자꾸 그런 새해인사를 받는데 서른다섯 살까지 무려 6년 동안 결혼에 대한 듣기 싫은 잔소리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피했죠. 새해에 가족이 모이면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 나가거나 결혼 안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여행을 가거나 했는데, 재동 씨는 어떤 새해인사가 제일 싫었고 듣기 싫은 새해인사를 피하기 위해서 뭘 했나요?
김재동 : (멋쩍은 웃음 뒤) 찔리네요. ‘어른들이 말씀하시니까 당연히 받아들여야지’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올해만큼은 ‘좋은 자리 들어가야지’라고 어른들이 한결같이 말씀하시는데 묵직하면서도 가슴 시리게 다가오더라고요.
진행자 : 이 땅의 청춘들에게는 지금 제일 듣기 싫은 덕담이 취업이군요.
김재동 : 네. 결혼 아니면 취업, 취업 아니면 결혼인 것 같아요.
김강남 : 한국에 와서는 기분 나쁘고 그런 것은 없었는데 북한에 있었을 때는 ‘많이 커야지’ 하면서 키에 대한 덕담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솔직히 제가 작아지고 싶어서 작아진 것도 아니고 성장기에 잘 먹지 못해서 못 큰 건데, 그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싫었어요. 그래도 싫었지만 그 말 때문에 상처받거나 그러지는 않고 ‘어쩌라고?’ 이렇게 지나쳤어요.
내레이션 :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해가 바뀌고 첫 만남을 하면 새해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새해인사와 더불어 덕담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눠봤는데요, 남한에서는 지도자뿐만 아니라 기업의 총수나 단체장 등이 새해인사로 신년사를 합니다. 하지만 북한의 실정은 많이 다르죠.
이정민 : 신년사는 북한 사람들은 거의 기억에 남죠. 왜냐하면 전문을 다 외워요. 외워서 경연대회가 나가서 입상도 있고 그런 것을 잘하느냐에 따라서 충성심도가 높아지기 때문에요. 안 그래도 이번에 김정은의 신년사가 나온 다음에 ‘북한 사람들은 또 고생하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것을 외워야하니까요. 적어도 그 신년사에서 몇 번째 줄에는 어떤 내용이 있고 어떤 내용이 들어갔고 이런 정도는 모든 주민들이 다 알 정도에요. 학교 학생들은 더 심하게 시키기 때문에 신년사에 대해서 몇 년도에 김일성이 어떤 신년사를 했는지 묻는다면 탈북자 중에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그 정도로 신년사는 한해를 시작하는 초기에 꼭 해야 되는 것으로 북한사람들은 인식하고 있어요.
진행자 : 그럼 혹시 습관이 돼서 탈북 이후에 대한민국 현 대통령의 신년사를 무의식적으로 외우거나 그렇게 하나요?
이정민 : 그거는 아니죠. 북한에서도 그게 하기 좋아서 했던 일이 아니고 강압적으로 했던 것이기 때문에 남한에 와서는 거기에 대해서는 자기 스스로 외면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있어도 박근혜 대통령이 뭘 말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한국의 언론이나 뉴스, 신문 모든 매체가 김정은의 신년사만 다루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볼 때는 부족한 부분이다 싶어요. ‘우리가 살려면 우리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 중요한데, 북한에 더 관심을 쏟아야하나?’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진행자 :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사를 기억하나요? (질문이 끝나자마자 세 사람 모두 멋쩍은 웃음)
김재동 : ‘안녕하십니까?’ 말고는 생각이 안 나는데요.
진행자 : 남한의 청년으로써 김정은의 신년사를 듣고, 봤을 때 어땠어요?
김재동 : 저는 처음에 언론에서 김정은의 신년사를 많이 떠들어대서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거지?’ 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뉴스를 보고 들어보니까 정치색을 떠나서 전달하고자 하는 말은 분명했던 것 같아요. 꽤 공격적이면서 자부심이 넘치는 북한의 한 지도자가 할 만한 선언문이었던 것 같아요.
이정민 :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지도자가 지금 20대 라는 거예요. 일단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 큰 것 같아요.
김재동 : 보면서 약간 궁금증도 생겼었거든요. ‘저걸 직접 작성을 했나? 누가 도와준 건 아닌가?’ 싶더라고요.
이정민 : 다 도와주죠. 본인은 그냥 읽는다고 보시면 돼요. 읽는데도 자질이 들어가잖아요. 확실히 지난번보다는 달라진 것 같고, 그런 것들이 저도 느껴져요.
김재동 : 그냥 간단히 정치색을 떠나고 봐도 ‘오, 제법인데?’ 제가 이렇게 느낄 정도인데 북한 주민들은 오죽하겠어요?
진행자 :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고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사도 김정은의 신년사처럼 충분한 보도가 됐고 충분히 전문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는 새해가 돼서 의례적으로 하는 인사로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남한에서는 북한처럼 신년사를 외워야한다는 게 없기 때문에 그냥 쓱 지나가는 인사말로 인식된 건 아닌가 싶네요.
이정민 : 그런데 북한 사람이었던 제 입장으로는 북한도 언젠가는 김정은이 신년사를 하든 혹은 그 어떤 누군가가 신년사를 하던 대한민국처럼 모르고 지나가는 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지금은 더 많을 거예요. 이런 게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사는 우리가 누리는 복일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분들은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인사말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고 그래도 자기 삶을 잘 영위해 가는 반면에 너희는 전문을 외웠어도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그 진실만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내용도 전해주고 싶어요.
김강남 : 저는 높은 지도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아요. 지도자라는 게 어떻게 보면 부모잖아요. 말로 하는 것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자식들한테 ‘요거하고 이렇게 할 거야’ 한다고 해서 애들이 그것을 기억하고 따르나요? 그냥 부모가 행동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뭘 사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게 부모의 몫이 아닐까요? 말로만 한다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시대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아요. 과거도 그렇듯이 북한의 지도자가 창창한 소리를 했다 하더라도 과거가 증명하고 있으니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지금도 탈북 하는 사람이 많고 자유를 찾아서 중국에서 치욕을 받으며 사는 여성들이 많습니까? 그거는 말을 하면서도 어이없는 것 같아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진행자 : 방송에서 김정은의 신년사가 자꾸 노출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게 되잖아요. 남한의 청년들은 주로 어떤 얘기를 하죠?
이정민 : 저는 아무래도 탈북자니까 ‘저거 전문을 다 외워야 할 텐데 힘들겠다’ ‘나는 탈북하기를 잘했어. 안했으면 지금 신년사를 외우고 있을 거야’ 이런 얘기를 하죠. 그런데 남한 분들은 왜 남한의 현실도 많은데 김정은의 신년사 전문을 내가 신문에서까지 봐야하냐? 이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더라고요.
김재동 : 네 맞아요. 저도 조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좀 짜증도 났는데 신년사 자체를 보니까 화술이나 문장구성 그런 것들이 되게 잘 짜인 한편의 극본이랄까요? 그런 느낌도 들었어요. 그 박수소리는 좀 거슬렸지만요.
진행자 : 인위적인 박수소리?
이정민 : 네. 저게 과연 무슨 소리냐고 많이 묻더라고요. 보면 1~2분 정도도 말을 안 해요. 그러고는 그 박수소리가 나오고 또 1~2분 정도 말하고 박수소리 나오고. 그런데 그 박수소리가 집중력을 높여준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다 이용을 한다고 그래요. 저는 왠지 공화국 선전에 넘어가지 않나 우려돼요.
진행자 : 오히려 남한에서 지나치게 부각을 시키니까 좋지는 않을 것이다?
이정민 : 그렇죠. 한두 번 보는 거랑 자주 보는 거랑은 나쁘게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그런가? 이렇게 받아들이는 면도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제가 볼 때는 북한에 대해서 전부 나쁘게 생각하고 보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잦은 노출이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남한 분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강남 : 너무 헷갈려요. 저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북한의 신년사 주제를 논의하는 자체가 정체성도 흔들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탈북자 입장에서도 신년사를 자꾸 노출시키는 게 이상해요. 정민 누나 말처럼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가 달라요. 그런데 전체적인 면을 볼 때 언론이 국민을 바보로 만든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물론 듣고 안 듣고는 선택의 자유겠지만 언론이라는 게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해서 보도를 하는 거잖아요. 국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 헷갈려요. 너무 헷갈려요.
이정민 : 북한에 대해서 알 건 알아야 돼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도자 중심으로 파내서 보도되는 것을 인지해야 하나 싶어요.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그런 뉴스에 나도 끌리니까 다른 사람도 끌린다는 거죠. 탈북자의 저의 입장으로서는 북한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제가 더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거짓에 대해서 저는 거기서 느껴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어서 ‘아~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을 거짓이라고 받아들일 그만한 정신 상태는 갖추고 있다는 거죠. 하지만 한국의 청년들, 자라는 친구들에게는 단 한명이라도 관심을 갖고 봤을 때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판단을 한다는 확률이 낮아질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방송을 통해서 말하고 싶고 어쨌든 제가 볼 때 넘쳐도 안 되지만 모자라도 안 되니까요.
김강남 : 신년사가 아무리 화제가 되더라도 북한은 북한입니다. 같은 신년사에 주제는 똑같은데 사람들은 그것을 암기하고 부담스럽고 이런 게 계속된다면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요. 변화라는 것은 새로운 도전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 김정은의 신년사는 북한 주민들에게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아요.
김재동 : 국민들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의도하지 않은 부분까지 찾아서 보려는 그런 경향까지 생긴 것 같아요. 신년사 전문을 공개해 준 것은 저는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받아들이는 것은 국민 개개인의 몫이니까요.
이정민 : 판단은 스스로 한다는 거죠.
진행자 : 그렇죠.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라고 남한은 그래요. 그게 가장 큰 남북의 차이인 것 같아요.
이정민 : 남한이니까 우리가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레이션 : 남한 사람들에게 신년사는, 으레 하는 인사정도 이기 때문에 폐쇄적인 사회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여겨졌다면 탈북자에게는 불편함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방송을 듣고 있는 여러분에게 신년사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 지금까지 청춘만세 김인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