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 이라는 시입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준다는 건 하나의 관심입니다. 그냥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닐 의미 없는 것들도 의미를 부여해주고 사랑을 주게 되면 특별한 존재가 되죠. 지금 혹시 불러보고 싶은 이름이 있으신가요? 아마도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여러분은 그 사람과 좀 더 친밀해질 겁니다.
안녕하세요. <청춘만세> 진행에 권지연입니다. 남북 청년들이 함께하는 인권모임 '나우'의 이주영, 최철남 씨와 함께 이름에 대한 얘기 나눠봅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이주영, 최철남 : 안녕하세요.
진행자 : 며칠 전이 벌써 입춘이었습니다. 봄이 오고 있구나! 느끼나요?
이주영 : 글쎄요. 아직 추워서요.
진행자 : 그래도 오고 있겠죠?
오늘은 우리가 이름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마 부모님이 철남 씨나 주영 씨의 이름을 지을 때 많은 고민을 하고 지었을 것 같은데 본인들 이름 뜻을 알고 있죠? 저는 뜻 지에 아름다울 연입니다.
주영 씨 이름은 누가 지어 주셨나요?
이주영 : 엄마가 지어 주셨어요. 저희 집안도 돌림자가 있는데 끝 자가 '범' 자 예요.
진행자 : '범' 자가 들어가는 이름은 남자 이름 같잖아요.
이주영 : 네, 그렇죠. 큰 집의 장녀인 사촌 언니 이름은 그래서 '숙범' 이에요. (웃음) 그런데 저는 그런 돌림자를 쓰지 않고 '주인 주'에 '영화로울 영'을 써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라는 뜻으로 지어 주셨습니다.
진행자 : 그러니까 '하나님을 주인으로 생각하고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라' 라는 뜻인 거죠?
이주영 : 그렇죠.
주영 씨의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으며 인간의 죄를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데요. 주영 씨의 이름은 주영 씨의 종교, 신앙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진행자 : 철남 씨, 이름은요?
최철남 : 저는 '밝을 철'에 '사내 남' 자를 써서 철남입니다. 밝은 남자가 되라는 뜻으로 그렇게 지어 주신 것 같습니다.
밝은 남자, 철남! 이름의 뜻을 알고 나니 왠지 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진행자 : 시대별로 많이 지어지는 이름들이 있잖아요. 제 이름도 좀 흔한 이름입니다. 그리고 지현, 지영같이 비슷한 이름들이 많아서 학창 시절에 누가 제 이름을 부르면 다섯 명이 뒤를 돌아보던 때도 있었습니다.
최철남 : 북한에서는 '철' 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많습니다. '밝은 철' 이라는 뜻 보다는 '철'은 쇠라는 의미가 있잖아요. 전쟁 후에 철광 생산을 하면서 '철' 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많이 지어졌고 여자 이름 중에서도 '철' 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많습니다.
진행자 : 주영씨도 비슷할 것 같아요. 주영이라는 이름도 많죠?
이주영 : 네, 그런데 저는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많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제 이름이 중성적이라서 마음에 들어요.
진행자 : 제가 전에 작명소에 취재를 하러 갔었는데 중성적인 이름을 가진 분들이 잘 된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주영 : 그래요? 저는 예쁜 이름보다는 이런 이름이 좋아요.
진행자 : 본인 이름에 무척 만족을 하는 거네요.
이주영 : 네, 그리고 제 이름의 의미가 있으니까 '내 이름에 감사하고 이름대로 살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진행자 : 그래도 이런 생각은 한 번 해보지 않나요? 지금 갖고 있는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이 하나 더 있다면?
이주영 : 해보죠. 저는 '서'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좋더라고요. 왠지 슬픈 느낌이 드는데 좋아요. 그래서 제가 만약 작가가 되거나 해서 필명을 사용할 일이 있다면 '서'자를 넣은 다른 이름을 하나 짓고 싶습니다.
진행자 : 철남 씨도 본인의 이름에 만족하나요?
최철남 : 아니요. 저는 불만족하고 있습니다. 워낙에 제 이름이 북한 이름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서요. 남한 분위기에 맞는 이름으로 바꿔 보고 싶어요. '지원'같은 이름으로 바꿔보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웃음)
어떤 이름이 좋은 이름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름의 뜻과 의미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듣기 좋고 부르기 좋은 이름을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하죠. 자신의 이름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그래서 이런 경우 사람들은 개명, 이름을 바꾸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진행자 : 요즘은 개명하는 것이 쉬워졌습니다. 전에는 여자들의 이름을 '막녀', '끝순이'. 이런 식으로 지어서 그런 분들이 개명하는 경우는 이해가 가는데 우리가 듣기에 그리 이상한 이름이 아니어도 바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름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건데요. 그런 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철남 : 이름에 따라 운명이 변한다는 건 별로 믿기지 않는데요? 중성적인 이름이 잘 된다는 얘기는 맞는 것 같아요. 정치인들 중에서도 박정희 대통령도 보면 살짝 여자 같은 이름이잖아요.
이주영 : 저는 이름에 따라 바뀐다기보다는 부모님의 철학이 이름에 담겨서 평생 아이들을 기르는 철학이 자녀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나중에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고요. 평생 본인이 그 이름을 가지고 살아 왔고 정체성의 하나가 되잖아요. 그래서 그걸 쉽게 바꾼다는 것이 좋게 보이지는 않아요. 친구들이 바꾸거나 그러면 이해는 하는데 저는 바꾸고 싶지는 않아요.
최철남 : 누나는 이름이 좋잖아요.
이주영 : 그런가? (웃음)
이름을 바꿀 생각이 없는 주영 씨와 개명을 생각해 본 철남 씨의 견해가 조금 차이가 있네요.
북쪽에서는 개명에 대해 남쪽보다 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조카를 보기 위해 북한에서 개명 신청을 했었다는 한 탈북 여성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이런걸 보면 북한에서도 이름을 운명을 연관 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참동안 이름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우리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름을 짓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이름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죠.
진행자 :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니까요. 그 뜻을 잘 생각하면서 살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겁니다. 그 뜻대로 살고 있나요?
이주영 : 노력은 계속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가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 노력의 하나인 것 같아요. 이걸 한다고 해서 저한테 이득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힘들게 사는 분들에게 관심을 갖고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진행자 : 그러니까 주영 씨가 믿고 있는 종교,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북한 인권에도 관심을 갖는다는 얘기지요?
이주영 : 그렇죠.
진행자 : 철남 씨는 어때요?
최철남 : 저도 이름의 뜻대로 밝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밝고 친근하게 노력하려고 합니다.
진행자 : 정말 철남 씨가 오면 참 환해져요. 항상 웃고 있잖아요. 반대로 내가 이름값을 참 못했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 않나요?
이주영 : 많죠. 친구랑 있을 때 서로 기분이 상할 때도 있는데 감정이 상하면 티가 나고요. 제가 좀 더 누리고 싶은 것들을 희생하고 봉사나 기부 같은 것을 많이 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고요.
최철남 : 저도 사람이라는 게 만날 웃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화를 주체 못할 때 이름에 상반되는 표정을 짓게 되고 화를 내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주로 동생이나 친구들한테 그런 경우들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 두 분의 이름 뜻을 알고 나니까 더 귀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영 씨와 철남 씨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한 번씩 그 뜻을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름값하며 사는 2014년도가 되기를 바라겠고요. 이름값 하며 사는 인생을 위해 다짐을 해보죠.
이주영 : 저는 취직을 준비하고 있잖아요. 저의 소신은 통일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지만 막상 그런 일을 하는 곳도 별로 없어요. 저의 현실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하잖아요. 어디를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넣을 곳도 별로 없고요. 그런데 그 꿈을 놓지 않고 계속 가겠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 같아요.
진행자 : 이름대로 살기 위해서요?
이주영 : 네, 그리고 저도 이제 결혼을 생각해야 할 때인데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제게 큰 영향을 주더라고요. 좋은 분을 만나 제 가치관대로 사는 것이 제 인생에서 중요할 것 같고요.
최철남 : 저는 제 이름에 맞게 항상 웃는 것을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시험 준비를 해야 하니까 실패도 할 수 있는데 그 때마다 우울해 하는 것이 아니라 밝게 이겨 나갔으면 좋겠고요. 항상 저의 밝은 모습을 보고 제 주변 사람들이 밝은 기운을 얻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진행자 : 우리들이 가진 이름의 깊은 뜻을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사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주영, 최철남 : 감사합니다.
짐승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자고 결심하는 <청춘만세> 가족들을 응원하면서 지금까지 진행에 권지연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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