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2) 봉사를 왜 하나요?

북한을 이탈해 강원 동해시에 정착한 새터민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이 동해시 노인요양원을 방문, 자원봉사와 함께 민요와 춤을 선사했다.
북한을 이탈해 강원 동해시에 정착한 새터민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이 동해시 노인요양원을 방문, 자원봉사와 함께 민요와 춤을 선사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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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의 모습과 생각을 전해드리는 <청춘만세> 시간입니다. 먼저 이 시간을 함께 하는 세 청년을 소개합니다!

클레이튼 : 안녕하십니까, 클레이튼이라고 하는데 미국 켄터키 주에서 왔습니다. 한국 온 지 6년 됐고, 해외 이사 전문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현화 : 네, 안녕하세요. 북한 평안남도 개천시에서 온 현화입니다. 남한에 온 지 10년 됐고, 어르신들 치아가 없으면 틀니를 하잖아요. 그런 걸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민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지민이고, 국제경영을 전공했고, 곧 졸업을 앞두고 있는 평범한 취업준비생입니다. 반갑습니다.

진행자 : 이지민 씨는 남한에서 나고 잘랐고, 현화 씨와 마찬가지로 25살 동갑이에요. 그리고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는 진행자 윤하정입니다.

지난 시간부터 '봉사' 그러니까 국가나 사회, 또 다른 사람을 위해 애쓰는 것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는데요. 이 시간 함께 하는 세 청년들도 봉사활동의 경험이 꽤 많습니다.

클레이튼은 미국에서는 물론이고 남한에서도 서울의 전쟁기념관이라는 곳에서 6.25전쟁에 대해 궁금해 하는 외국인들에게 6.25전쟁의 배경과 과정, 과거의 전쟁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해 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요. 지민 씨는 형편이 어려워서 학원에 가기 힘든 어린 학생들의 공부를 도와줬던 경험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온 현화 씨도 봉사활동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여러 복지시설을 방문해서 몸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 특히 북한에서는 무섭게만 생각했던 장애인들을 도왔다고 하는데요. 이런 봉사활동에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하지만 금전적으로, 물질적으로 돌아오는 대가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친구들은 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걸까요?

<청춘만세> 오늘은 이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진행자 : 아무래도 봉사활동이라는 게 몸이 불편하거나 형편이 어려운 분들에게 하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북한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부정적이라고 들었거든요. (현화 씨 같은 경우는) 놀랐을 것 같아요.

현화 : 많이 놀랐죠. 다른 아이들은 북한에서 왔는데도 비위 좋게 밥도 먹여주고 씻겨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계속 선생님 뒤에 숨어서.

진행자 : 무서웠어요?

현화 : 네, 무서웠어요. 저한테 해코지할까봐. 그런데 선생님이 '저 아이들은 이미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자원봉사 온 사람이 무서워하면 마음을 안 열고 더 상처를 받는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선생님 말씀을 생각하면서 무섭다는 생각을 조금씩 없앴던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런데 장애인을 왜 무서워하는 거예요?

현화 : 북한에서는 못 보다가 남한에 와서 보니까. 우리랑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잖아요.

진행자 : 클레이튼은 어떻게 생각해요? 장애인이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클레이튼 : 장애인은 어려운 사람이라서 당연히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미국은 어떤 시설이든 장애인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특별한 장치가 있어요. 예를 들면 대중교통의 경우 거의 다 휠체어를 옮길 수 있는 기계들이 있습니다. 장애인을 보면 마음이 약간 아프지만 무섭다기보다는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진행자 : 남한은 장애인 시설이 잘 돼 있는 편이고 장애를 가진 음악가 등이 활동을 꽤 하는 편이죠. 그래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장애에 대한 차별이 있고, 복지가 덜 돼 있다고 하는데 탈북자의 눈으로 봤을 때는 차이가 많이 나나요?

현화 : 어마어마하게 차이나죠.

진행자 : 남한에 손가락이 네 개인 피아노 연주자가 있어요. 예전에 북한에서 연주한 적이 있는데 북한에서는 장애인이 길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하게 한다고 하더라고요.

현화 : 정말 다니는 걸 보지 못했어요. 시설에 있고, 집에 있어도 밖에 나오지 못하게 해요.

진행자 : 나오지 못하게 해요?

현화 : 네, 부모님들이 나오지 못하게 해요.

진행자 : 지민 씨는 이런 얘기 들으면 어때요?

지민 : 한편으로 이해되는 게 저도 어렸을 때는 낯설었거든요. 많이 만나보지 못했을 때는 왠지 저와 다르고, 저한테 달려들 것 같아서 현화 씨 말처럼 무서웠는데 크면서 생각이 바뀐 게 그냥 저와 조금 다른 모습이구나. 예를 들면 저도 시력이 안 좋거든요. 그런 것처럼 다른 특징이 있는 것뿐이다.

저는 해외에서 10개월 정도 봉사활동을 하고 왔어요, 봉사비자라는 게 있거든요. 주로 하는 건 현지에 있는 지체, 지적 장애인과 마을 공동체를 이뤄서 사는 거예요. 남한보다 복지가 잘 돼 있다 보니까 교육적인 부분이 강화가 돼서 연기로 교육을 하기도 하고 같이 수영도 하고 미술도 하고. 남한의 복지시설은 봉사하는 사람들이 다 한국 사람이지만, 거기는 모두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어요.

외출을 자주 했는데, 일단 영화관이 무료고 동행자도 무료예요. 웬만한 미술관과 박물관도 마찬가지예요. 가장 큰 건 시선의 차이인 것 같아요. 남한에서는 장애인과 같이, 특히 무리를 지어서 다니면 어쩔 수 없이 시선을 받게 되는데 해외에서는 그런 시선을 받은 적이 없어요. 불쌍하게 보는 것도 없고, 그냥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가장 달랐어요.

진행자 : 그래서 교육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지민 씨가 말한 것처럼 나와 겉모습이나 그런 것이 다를 뿐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 접하지 못하면 괜히 무섭기도 하고 피하게 되고, 아니면 놀린다거나 또 너무 불쌍하게 여긴다거나 그렇게 되죠.

남한 같은 경우는 장애인학교가 따로 있기도 하지만 일반 학교에 장애인 특수반이 따로 있어서 '우리와 똑같은 친구들이야' 이렇게 교육하기도 하거든요. 어떻게 배웠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겠죠.

현화 씨는 북한에서 생활하다 남한에 와서 장애인도 만나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우리가 문화충격이라고 하죠? 생각의 변화가 많았을 것 같아요.

현화 : 일단 봉사를 하면서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충격이었어요. 어른들은 정말 내 자식처럼 씻기고 먹이는데, 쉽지 않은 일인데 참 대단하다! 감동받았어요.

북한에서는 남한 사람들 다 잘 사는 줄 알잖아요. 그래서 남한에 오면 잘 살 줄 알았는데, 노력한 만큼 사는 거니까 남한에 와서도 북한보다 살기 힘들다고 '나도 살기 힘든데 누굴 도와?' 이렇게 말한 분이 계셨는데, 제가 봉사를 하고 나서 '그래도 같이 어려운 사람끼리 도울 수 있는 게 얼마나 좋냐?'고 했더니 '사람 됐다고,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사람을 배려했냐?'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진행자 : 북한에는 봉사 단체가...

현화 : 없어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진행자 : 북한은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하는 봉사도 없고... 봉사의 개념이 잘 잡히지 않는 이유는 어디 있다고 생각해요? 왜 북한에는 봉사가 없을까요?

클레이튼 : 사람들이 너무 어렵게 살고 있으니까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인 자유도 없으니까 봉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민 :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까. 남한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봉사를 하는 건 아니거든요. 저는 그게 마음의 여유 차이라고 생각해요.

진행자 : 왜 학교에서도 봉사라는 걸 가르치지 않을까요? 가르칠 수는 있잖아요.

현화 : 마음의 여유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인 것 같아요. 하루 벌어 한 끼 먹고살기가 힘들어요. 북한에서는 밥 먹을 때 옆집에서 오면 조금이라도 맛있는 게 있으면 밑으로 숨겨요. 그 정도로 힘들기 때문에 아마 봉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진행자 : 혹시 '지금 생각해보니 이게 북한에서 봉사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되는 게 있나요?

현화 : 저는 엄마가 먼저 남한에 와서 큰아빠 집에서 살다 동네 반장 댁에서 지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집도 어려웠어요. 옥수수 국수를 거의 매일 먹었는데, 면은 오래 두면 불잖아요. 그래서 처음 삶을 때는 1인분인데 나중에는 3인분이 돼요.

그 정도로 어려운 집이었는데 거기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남한에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 집에서도 나한테 봉사를 했구나!' 생각이 들어요.

진행자 :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편인가요?

현화 :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은 하는 편이에요. 저희는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잖아요. 그래서 '아, 나도 누군가를 도와야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진행자 : 봉사를 하는 것이 어떤 즐거움이 있어서 하게 되는 걸까요? 여러분이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요?

지민 : 그 순간 행복해서? 누군가에게 내가 이렇게 쓸모가 있구나!

클레이튼 : 제가 부자는 아니지만 충분히 잘 살고 있으니까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원래 함께 살아가는 거니까 당연히 옆에 있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지금까지 봉사에 대해 쭉 얘기를 했는데 기회가 있다면 청취자 여러분에게 '이런 봉사를 해보면 좋겠다!' 또 이제 갓 탈북한 친구들은 봉사라는 개념을 잘 모르잖아요. 그 친구들에게 추천해줄 만한 봉사활동 있을까요?

현화 : 요양원이요. 아프고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많은데 그런 곳에서 봉사를 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그 분들은 몸이 많이 굳어 있어요. 안마도 좋고, 말동무가 돼 드리는 것도 좋아요.

지민 : 시각장애인을 도왔던 개가 있어요. 훈련을 받아서 시각장애인의 눈이 됐던 개들도 은퇴시기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개들은 훈련을 심하게 받아서 다른 개들보다 몸이 안 좋다고 해요. 그걸 도와주는 봉사활동이 있더라고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런 식으로도 봉사를 할 수 있어요.

클레이튼 : 미국에 '큰 형, 큰 언니'라는 뜻의 단체가 있어요. 고아원에 가서 부모님 없는 아이에게 형이나 누나 역할을 해주는 거죠.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육, 조언을 해줄 수도 있습니다.

진행자 : 북한에 계신 분들도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된다면 봉사를 통해 새로 깨닫게 되는 즐거움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고요.

저희는 다함께 인사드리면서 이 시간 마무리하겠습니다.

다함께 :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진행자 :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